[아이뉴스24 문영수 기자] 글로벌 게임 산업의 지형을 뒤흔드는 역대급 딜이 마침표를 찍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미국 게임사 일렉트로닉아츠(EA)를 550억달러(약 78조원)에 인수하고 나스닥에서 상장 폐지하는 절차를 지난 4일(현지시간) 완료해서다.
이번 빅딜은 2023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인수 규모인 690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그동안 숱한 게임사들을 먹어 치워 '잇 올(Eat All)'로 불리던 EA가 종국에는 먹혀버린 형국이다. 과거 우량 게임사의 지분을 매입하며 존재감을 키우던 사우디가 이제는 EA의 사례처럼 경영권까지 직접 확보하며 영향력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EA의 향후 추이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번 인수는 단순히 국부펀드의 현금만으로 이뤄진 거래가 아니다. 국부펀드(93.4%), 실버레이크(5.5%), 어피니티 파트너스(1.1%)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이번 딜을 위해 전체 자금 중 약 200억달러를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차입매수(LBO) 방식을 택했다. 상장사로서의 압박은 사라졌지만 높은 이자 비용과 대규모 부채 상환이 EA를 압박하게 됐다.
EA는 앤드루 윌슨 현 CEO 체제가 유지되고 캘리포니아 본사도 그대로 남지만, 이러한 대규모 차입금은 필연적으로 타이트한 비용 통제를 수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A 산하 개발 스튜디오 통폐합이나 비핵심 부서의 인력 재편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앤드루 윌슨 CEO는 "비전을 공유하는 파트너들과 함께 새로운 장을 열게 됐다"면서 "보다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통해 차세대 게임과 경험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사우디 '비전 2030' 핵심 전략과 맞닿은 게임
사우디의 이번 EA 인수는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국가 개조 프로젝트 '비전 2030'의 핵심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비전 2030은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국가 이미지 변화를 위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하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특히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게임과 e스포츠가 자리잡고 있다.
게임과 e스포츠는 엄격한 종교적 규율로 인해 즐길 거리가 부족한 사우디 청년층이 즐길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사우디 내 활성화된 게이머의 수는 이미 수천만명에 이르며 1인당결제액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내부적으로는 결속을 다지고 외부로는 사우디의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다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년 여름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대규모로 열리는 'e스포츠 월드컵(EWC)' 역시 전 세계 수천만명의 게이머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빅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처음으로 사우디가 아닌 프랑스 파리에서 7월 개막한 e스포츠 월드컵은 전 세계 100개 이상 국가에서 모인 2000명 이상의 최정상급 선수와 주요 e스포츠 클럽 200개가 참가했으며 글로벌 인기 게임 24종 기반 25개 토너먼트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총상금 7500만달러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한편 사우디 국부펀드는 한국 게임산업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우디 국부펀드의 100% 자회사인 아야르 퍼스트 인베스트먼트 컴퍼니는 넥슨 일본법인의 지분 11.16%를, 또 다른 100% 자회사인 사우디 일렉트로닉 게이밍 홀딩 컴퍼니는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 지분 9.43%를 보유 중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오일머니'가 향후 국내 주요 게임사에 대한 영향력을 추가로 확대할지 촉각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문영수 기자(mj@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