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경환 기자] 취임 첫 한 달은 새로운 시장에게 가장 어려운 시간이다. 화려한 비전을 내세우기보다 당장 눈앞의 현실을 마주해야 하고, 시민은 말보다 행동을 지켜본다.
민선9기 광양시는 출범 한 달 동안 선택의 기로에 섰다. 하나는 650억 원에 달하는 재정 부족이라는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철강산업 둔화와 글로벌 산업구조 변화라는 도시의 미래였다.

박성현 광양시장이 내놓은 해법은 예상보다 정면돌파에 가까웠다. 재정위기를 숨기지 않았고, 동시에 산업 대전환이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시했다.
취임 한 달의 행보를 종합하면 민선9기 광양시정은 '긴축'과 '투자', '혁신'과 '민생'을 동시에 추진하는 이중 전략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 "위기를 감추지 않는다"…행정의 신뢰부터 세우다
민선9기 첫 번째 메시지는 의외로 '성과'가 아니라 '위기'였다.
광양시는 시민보고회를 통해 내년도 650억 원의 재정 부족 전망을 공개했다.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재정 악화를 내부적으로 관리하거나 후임 과제로 넘기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공개가 아니다.
앞으로 진행될 세출 구조조정과 예산 개혁의 필요성을 시민과 공유하고, 행정의 신뢰를 먼저 확보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실제로 광양시는 모든 예산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행사성 예산과 중복사업을 줄이고, AI 기반 예산심사까지 도입하는 것은 단순한 긴축이 아니라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디에 돈을 쓸 것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쓰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민선9기의 첫 번째 변화는 바로 이 선택의 기준을 세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 "긴축만으로는 미래가 없다"…산업 대전환이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재정 개혁만으로 도시는 성장하지 않는다.
광양시가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 '광양 5대 대전환'이다.
경제와 산업, 행정, 생활SOC, AI 첨단도시라는 다섯 개의 축은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모인다.
광양의 산업 경쟁력을 다시 높이겠다는 것이다.
특히 한 달 동안 가장 큰 성과는 국가계획 반영이다.
3,456억 원 규모의 광양항 율촌산단 연결도로가 국가계획에 포함됐고, 정부의 피지컬 AI 항만 전략에는 광양항을 첨단항만기술 실증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안이 담겼다.
여기에 북극항로 물류허브 구축까지 연결되면서 광양은 단순한 철강도시를 넘어 미래 물류도시로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이는 각각의 사업이 따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생태계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항만이 경쟁력을 갖추면 물류가 살아나고, 물류가 살아나면 제조업이 성장하며, 제조업의 경쟁력은 다시 일자리와 지역경제로 이어진다.
△ 제조업 AX…광양 산업의 미래를 바꾸는 실험
이번 한 달 동안 눈에 띄는 또 하나의 변화는 AI 정책이다.
최근 지방정부들이 AI를 행정 서비스에 활용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반면, 광양시는 제조업 자체를 AI로 전환하는 'AX(AI Transformation)'를 전면에 내세웠다.
포스코DX와 국립순천대학교, 전남테크노파크 등이 참여한 실증 생태계 구축은 단순한 협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철강과 항만, 첨단소재 산업은 광양 경제의 핵심이다.
이 산업에 AI를 접목한다는 것은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급 기술인력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AI를 산업정책으로 활용하는 전국에서도 드문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 기업의 복지비가 지역경제를 살린다
민생경제 정책도 기존과 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기업이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격려금을 광양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단순한 지역화폐 확대와는 성격이 다르다.
기업의 복지비가 곧바로 지역 음식점과 전통시장, 소상공인 점포의 매출로 연결되는 소비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까지 참여 기업은 두 곳에 불과하지만, 정책이 확산될 경우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의 성장과 소상공인의 매출을 하나의 경제 흐름으로 연결하려는 점에서 새로운 지역경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시민 중심 행정…정책보다 중요한 변화
민선9기 출범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행정의 방식이다.
취임 첫 일정부터 전통시장을 찾았고, 시민공감토크와 시민소통폰, 열린시장실 운영 등을 통해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 폭염 대응과 안전점검, 취약계층 보호를 직접 챙기는 현장행정을 병행하면서 행정의 무게중심을 시민 생활로 옮기고 있다.
행정의 성과는 결국 정책보다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에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민선9기 시정 운영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힌다.
△ 이제 시작…100일이 진짜 시험대
출범 한 달은 방향을 정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민은 방향보다 결과를 평가한다.
광양시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재정 정상화는 예산 구조조정이라는 현실적인 성과로 이어져야 하고, 산업 대전환은 국가사업과 기업 투자 유치,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증명돼야 한다.
광양사랑상품권 정책 역시 참여 기업 확대와 소상공인 매출 증가라는 구체적인 지표가 뒤따라야 한다.
박성현 시장이 "취임 100일에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결과로 보고드리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다.
민선9기 광양시정은 출범 첫 달 동안 재정개혁과 미래산업이라는 두 개의 큰 축을 세웠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실행이다.
재정위기를 성장의 계기로 바꾸고, 광양항과 철강, 이차전지, AI 산업을 하나의 미래 성장축으로 연결해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민선9기의 진정한 평가는 앞으로 100일, 그리고 그 이후의 성과가 답하게 될 것이다.
/광주=이경환 기자(khlee@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