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효정 기자] 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업계 공시제도를 콕 집어 손질하겠다 나서자 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공시 기준이 엄격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새 방안이 투자 위축을 불러 가뜩이나 어려운 업계를 더욱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는 반응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30일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제약·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 전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정확성, 비교 가능성 및 이해도를 높여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하도록 공시 전반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뒀다.

공모가 산정 가정을 △예상 시장규모 △임상시험 성공 확률 △허가 및 심사 리스크 △개발기간 및 소요비용 4가지로 분류해 기재하도록 바꾼다. 정기 공시에는 파이프라인별 '연구개발 이력관리 총괄표'를 신설해 현재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뿐 아니라 개발 완료, 개발 중단, 품목허가 등 주요 진행 경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기술이전 계약은 계약금, 개발 마일스톤, 허가·판매 마일스톤, 로열티로 구분해 기재하고, 각 금액의 지급 조건과 성격도 함께 안내하도록 개선한다.
아울러 금감원은 '제약·바이오 언론보도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투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 정보는 반드시 공시를 통해 먼저 공개해야 하고, 언론 보도는 공시 내용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주관적 표현을 지양하고 객관적인 사실과 수치에 근거해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모든 투자자가 동일한 시점에 동일한 양의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특정 투자자에게만 정보를 우선 제공해서는 안 된다.
이에 제약·바이오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한 편에서는 이미 과거에 비해 공시 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에 새로운 규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부분의 제약·바이오기업은 주요 파이프라인 이력을 각 회사의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다. 또한 기업공개(IPO) 시 증권신고서를 통해 기술이전 계약도 대부분 총 규모와 상세 내용을 공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견도 있다. 대부분의 제약·바이오기업은 공정공시를 해오고 있는데, 일부 사례 때문에 업계 전체가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적용받게 된 처지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삼천당제약은 영업실적 등에 관한 전망과 관련한 공정공시를 이행하지 않아 한국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올해 삼천당제약은 대주주의 블록딜(대규모 지분 매각) 논란과 함께 기술 실체 및 계약 구조 의혹 등이 잇따라 이슈가 발생하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에 대한 제네릭 허가신청(ANDA)의 사전 단계라 할 수 있는 Pre-ANDA 답변서를 수령했다. 답변서 수령 직후 삼천당제약은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Pre-ANDA 내용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다음 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Pre-ANDA는 내용을 공개한 선례가 없어 주가가 크게 출렁인 것이다. 이날 삼천당제약의 주가는 15만6900원으로, 지난 3월 장중 최고가 123만3000원에 비해 87%가량 낮아졌다.
세마글루타이드는 GLP-1 계열 성분으로 혈당을 낮추고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당뇨병과 비만 치료에 활용된다. Pre-ANDA 답변서는 허가 신청에 앞서 진행되는 공식 협의 절차로, FDA가 회사의 개발 전략을 검토한 뒤 허가 여부와 상관없이 회신한 문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일부 사례로 제약·바이오산업 전반에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쉽다"며 "취지는 공감하지만 실제 가이드라인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되면 투자자와 시장에 전달되는 정보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데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번 방안이 엄격하게 시행되면 신약 개발을 위해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내야 하는 제약·바이오 기업으로서는 공격적인 투자 유치보다 보수적인 접근을 택하게 돼 투자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임상시험 성공 확률이다.
최근 코오롱티슈진만 봐도 'TG-C(옛 인보사)'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3상 톱라인 1차 분석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코오롱티슈진뿐 아니라 TG-C의 국내 판권을 보유한 코오롱생명과학 주가도 동반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는 애초 시장의 기대감과는 다른 결과다. 특히 위약과 효능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 탓이다. 이런 변수를 모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상시험 성공 확률을 추정해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제약·바이오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방안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임상시험의 성공 확률 등은 기업 소속의 실무자도 예측하기 어려운데, 이를 공시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과 거리가 있다"며 "제약·바이오 기업의 IR 실무자들이 공시를 게재할 때 겪는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효정 기자(hyoj@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