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의 축구파노라마]한국축구 흔든 김종부 쟁탈전⑤

[김덕기의 축구파노라마]한국축구 흔든 김종부 쟁탈전⑤

 

김종부의 ‘현대 가계약 무효’의 공개적 계약 파기 선언은 86년 멕시코월드컵 출전을 앞둔 월드컵대표팀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김종부의 진로 변경사건에 우선 현대측이 발끈하고 나섰다.

어렵게 김종부의 도장을 받아 낸 현대는 졸지에 변을 당하게 되자 ‘법정투쟁 불사’를 선언하고 나섰다.

축구계나 사회적 분위기는 현대측에 유리하게 전개됐고, 김종부 측은 각계각층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김종부의 소속학교인 고려대체육위원회(위원장 김시중)도 의외로 파장이 커지자 1986년 4월 22일 오후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회의장은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2시간여의 마라톤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은 김종부를 축구부에서 제명키로 했다.

이 사건의 파장이 얼마나 컸나를 입증하는 회의 결과였다.

고려대는 4월23일 이범준 총장의 재가를 받아 대한축구협회에 김종부 선수등록 취소 통보서를 발송했다.

고려대는 제명 결정에 이어 김종부에게 “또다시 물의를 빚을 경우 아예 출교처분을 내리겠다”고 엄중경고 하며 수업에 충실하도록 조언했다.

상황은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이른바 무적 대표선수가 된 김종부는 운신의 폭이 점점 좁아졌다.

김종부는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월드컵 대표팀의 훈련 참여나 월드컵에 참가할 경우 대회 기간동안 무단결석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김종부는 학업과 대표선수 생활의 이중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진 것이다.

차범근이 1977년 서울신탁은행과 자동차보험의 스카우트 싸움에 휘말려 무적선수로 태극마크를 단 적이 있기는 해도 차범근은 졸업한 이후였기에 김종부의 경우와는 사뭇 달랐다.

‘김종부 파동’은 4월24일 대한축구협회가 “고려대에서 선수등록 취소를 요청한 김종부는 선수 자격이 없으며 따라서 월드컵 대표 팀에서도 제외시킨다”고 결정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6편에 계속>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chooggu@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