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세포에도 ‘성장 스위치’가 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아미노산 등 영양분이 충분할 때 이 스위치를 켜 성장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팀은 정상세포와 암세포에서 영양 신호가 이 성장 스위치를 켜는 원리를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암세포의 비정상적 성장 신호를 차단하는 차세대 항암 치료법 개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KAIST(총장 배충식) 화학과 박희성·강진영 교수 연구팀이 연세대(총장 윤동섭) 김성훈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세포가 영양 상태를 감지해 성장 신호를 활성화하는 핵심 원리를 규명했다고 26일 발표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주변에 아미노산(단백질을 만드는 기본 재료)과 같은 영양분이 충분한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성장과 단백질 합성, 에너지 사용을 조절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게 세포의 ‘성장 스위치' 역할을 하는 단백질 복합체 mTORC1(mammalian Target of Rapamycin Complex 1)이다.

mTORC1은 영양분과 에너지가 충분할 때 세포의 성장과 단백질 합성, 대사를 촉진한다. mTORC1이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세포가 필요 이상으로 성장하고 증식할 수 있다. 여러 암에서 이러한 비정상적 활성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mTORC1은 오랫동안 항암제 개발의 주요 표적으로 주목받아 왔다. 세포가 외부의 영양 신호를 어떻게 감지하고 이를 mTORC1 활성화로 연결하는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여러 효소가 모여 있는 복합체인 MSC(다중 아미노아실-tRNA 합성효소 복합체, Multi-tRNA Synthetase Complex)에 주목했다. 그동안 MSC는 단백질 합성을 돕는 역할만 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세포 안의 영양 상태를 감지해 성장 신호를 전달하는 핵심 허브 역할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핵심은 MSC 안에 있는 LARS1이라는 단백질이었다. LARS1은 류신이라는 아미노산을 인식하는 효소이다. 세포에 영양분이 충분하다는 신호를 받으면‘인산화'라는 변화를 겪는다. 인산화는 단백질에 작은 화학 표지가 붙어 기능이나 결합 상태가 달라지는 과정이다.
MSC는 여러 단백질이 모여 대기하는‘관제센터'이고 LARS1은 성장 스위치를 켜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신호 전달 요원'과 같다. 세포에 영양분이 충분해지면 LARS1에 인산화라는 ‘출동 신호'가 전달되고 이를 받은 LARS1은 함께 붙어 있던 IARS1(아이소류신을 인식하는 단백질 합성 효소)과 분리돼 MSC 밖으로 이동한다. 이후 세포의 성장 스위치인 mTORC1을 활성화한다.
영양분이 부족할 때는 LARS1이 MSC 안에 묶여 있어 성장 신호가 켜지지 않는데 영양분이 충분해지면 LARS1이 MSC에서 빠져나와 mTORC1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LARS1이 인산화된 상태와 비슷하게 만든 변이 단백질도 제작했다. 그 결과 mTORC1의 활성이 크게 증가했다. 이를 통해 LARS1의 인산화가 영양 신호를 세포 성장 신호로 바꾸는 핵심‘분자 스위치'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세포가 아미노산 같은 영양분을 감지한 뒤 성장 스위치를 켜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데 있다.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MSC가 영양 신호를 받으면 구성 단백질인 LARS1을 방출하고 이 단백질이 세포의 성장 신호를 활성화하는 원리를 규명했다.
현재 일부 항암제는 세포의 성장 스위치인 mTORC1을 직접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mTORC1은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 세포의 성장과 대사에도 필요해 직접 억제할 경우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LARS1을 인산화시키는 효소와 그 조절 과정을 추가로 밝혀내면 mTORC1 자체를 직접 막는 대신 성장 신호가 시작되는 앞단을 보다 정밀하게 차단하는 새로운 항암 치료 전략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진영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영양 신호가 세포의 성장 신호로 전환되는 과정을 구조적으로 확인했다”며 "앞으로 암세포에서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 성장 신호를 보다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치료 전략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희성 교수는 "세포가 영양 상태를 감지해 성장 신호를 활성화하는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한 연구”라며 "MSC를 통해 성장 신호를 조절하는 새로운 분자 스위치를 밝혀냄으로써 차세대 항암제 개발을 위한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KAIST 화학과 김유진 박사가 제 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논문명: Cryo-EM structure of the LARS1:IARS1 complex reveals a nutrient-response switch controlling mTORC1 signaling)는 국제학술지 ‘네이쳐 커뮤니케이션즈 (Nature Communications)’에 6월 11일 온라인으로 실렸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