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장윤기 사건 수사 무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과 경찰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강력범죄수사과를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강간 등 살인'이 아닌 단순 살인 혐의를 적용하는 과정에 국수본 지휘가 있었다는 초동 수사 경찰관들의 폭로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강제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초동 수사 당시 국수본 차원에서 수사팀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정황을 검·경이 모두 확보하면서 수사가 경찰 지휘부로 옮겨 붙고 있다.
경찰청 '장윤기 사건 관련 진상규명 특별수사단'(단장 오동욱)은 21일 "장윤기 사건 수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보고 및 지휘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오늘 오전 7시 30분부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강력범죄수사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 중"이라고 밝혔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다.광주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봉진)도 공무상비밀누설과 증거인멸 등 혐의로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장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초동 수사팀 "사건 초기부터 국수본이 구체적 의견 제시"

검찰과 경찰 수사 상황을 종합하면, 초동 수사팀원들은 사건 초기부터 국수본이 구체적 의견을 제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과 여청수사팀에서 장윤기의 범죄 목적을 '성범죄 목적'으로 판단했지만 국수본이 '신중하게 처리하라'는 지침을 내리면서 강간 등 살인 혐의 적용을 검토했던 광주광산경찰서 지휘부도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수사 지원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장윤기 살인사건'이 국가적 주목을 받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장윤기 아버지 장 모 경감이나 초동 수사팀장 선에서 무마나 은폐할 사건이 아니었다는 폭로도 나왔다고 한다.
초동 수사팀원들의 진술은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광주광산경찰서 강력팀장 박 모 경감이 구속되는 동시에 수사팀원들이 입건되면서 터져나왔다. 박 경감은 지난 8일 장윤기가 범행에 사용하려 했던 케이블타이를 압수하지 않고, 이를 촬영한 채증 영상을 검찰에 제출하는 것을 막은 혐의(증거인멸) 등으로 구속됐다.
현재 검경은 초동 수사팀에 이어 광주광산서 형사과장 등 수사지휘라인을 각각 소환조사한 뒤 광주경찰청을 넘어 국수본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날 경찰 특수단과 광주지검 특별수사팀이 압수수색한 곳은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 등이다.
'장윤기 수사무마 의혹' 초기 일선 비리에 초점

수사가 국수본으로 확대되면서 '장윤기 사건 수사무마 의혹'은 시작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뻗어가고 있다. 사건 초기, 의혹은 광주광산경찰서가 성범죄 목적의 '장윤기 살인사건'을 단순 살인사건으로 광주지검으로 송치하고, 장윤기 아버지가 광주지역에서 근무 중인 현직 경감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면서 장 경감과 현장 수사팀간 비리 가능성에 초점이 모였다.
이 때문에 장윤기의 범죄증거를 은닉·훼손한 장 경감을 현행법상 '친족특례'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친족특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2일 형법상 범인은닉죄·증거인멸죄의 친족 특례를 전면 폐지하는 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14일 검사·경찰관·특별사법경찰관 등이 직무상 지위·권한·정보·전문지식을 이용해 친족의 범죄를 숨기거나 증거를 없앤 경우에는 특례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의 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경찰 특수단도 장 경감과 현장 수사팀간의 비리 의혹에 주목했다. 특수단은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강력팀장 및 팀원들과 장윤기 부친 간에 12차례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이 확인되고, 수사상 비밀을 전달받았지만 법률적용 등을 부탁했는지, 금전적인 대가가 오갔는지 여부는 계속 확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초동 수사팀장 "윗선, 스토킹과 살인사건 분리 지시"

그러나 경찰 특수단이 지난 15일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박 경감이 '윗선에서 스토킹과 살인사건을 연결시키지 못하도록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사실을 밝히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특수단은 구체적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장윤기는 고 이채원양을 살해하기 2일 전인 5월 3일, 이미 아르바이트 중 알게 된 20대 베트남 국적 여성 A씨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했다. 장윤기는 A씨가 자신을 스토킹 혐의로 경찰에 신고하고 신변보호 조치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A씨를 찾아 광주 광산구 일대를 배회하다가 이 양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조사됐다. A씨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장윤기에게 "스토킹은 범죄"라고 경고 문자메시지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 경감 진술이 나온 이후 검경 안팎에서는 장윤기의 스토킹범죄를 부실 처리한 문책을 피하기 위해 윗선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됐다. 이런 가운데 올해 3월 김훈(44)이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던 20대 여성을 스토킹하다가 살해한 사건이 재조명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달 19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남양주에서도 피해자의 긴급 요청에도 불구하고 안이한 대응 때문에 끔찍한 범죄를 막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경찰을 공개 질타했다.
경찰 '셀프수사' 우려...수사 독립성 확보 '난제'

검찰과 함께 경찰 특수단이 국수본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섰지만 공정성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경찰청은 '장윤기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한 감찰에 이어 지난 6일 수사 착수했으나 수사팀이 소속된 광주경찰청에 맡겼다. 이후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비판이 빗발치자 당일 전담수사팀을 특별수사팀으로 확대하고 홍장득 경찰청 수사인권담당관(총경)을 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2일 뒤 특별수사팀을 특별수사단으로 확대·격상, 오동욱 대전경찰청 수사부장(경무관)을 단장으로 임명하고 홍 팀장은 부단장에 배치했다. 오 단장과 홍 부단장은 국가수사본부장 직속이다. 국수본 소속 단장이 국수본의 사건 지휘·개입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것이다. 41명 규모의 특수단 수사관들도 상당수가 국수본 소속이다. 특수단은 광주경찰청에서 독립돼 수사하고 있지만, 수사 결과는 국수본에 보고하게 돼 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결과에 따라 경찰 자체의 공정성이나 신뢰성이 전면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 검찰의 경우 특임검사제가 가동돼 독립적으로 수사했지만 현재 계급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광주지검 특별수사팀을 증원하는 방안도 나온다. 그러나 국수본을 수사할만 한 수사역량이 검찰에 남아 있을 것이냐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검사장 출신의 또다른 변호사는 "검사장급 이상을 책임자로 현재 수사 중인 광주지검 특별수사팀을 증원하는 대응방안이 있겠지만 현재 특검 운영 상황과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특검도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같은 이유에서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최기철 기자(lawch@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