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권서아·박지은 기자] 이재명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권 투자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는 29일 이재명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들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앞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기업들은 지역균형발전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투자 분야와 규모는 기업별 중장기 전략과 산업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권 투자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광주 인근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신설할 수 있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호남권의 풍부한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전남은 국내 최대 수준의 태양광·풍력 발전단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해상풍력 사업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업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다.
지역사회에서는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RE100 산업벨트' 구축을 통해 첨단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호남권이 반도체와 AI 산업의 새로운 거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는 배경이다.
반도체 업계 분위기는 신중하다. 반도체 공장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전력과 용수뿐 아니라 물류, 인력, 협력사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호남권 투자 자체보다 투자 분야를 놓고 다양한 검토가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에 국한하지 않고 공조(냉난방공조) 사업 확대 방안도 검토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미 광주사업장에서 에어컨 등 생활가전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존 생산 인프라를 활용해 공조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이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선택지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거론되는 패키징 공장 역시 물류 측면에서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반도체는 웨이퍼 생산 이후 패키징 공정을 거쳐 최종 제품으로 완성된다. 패키징은 고객이 실제 사용하는 반도체 제품을 만드는 마지막 공정이다. 완성된 제품은 곧바로 글로벌 고객사로 출하되는 만큼 생산시설인 동시에 물류 거점 역할도 수행한다.
삼성전자는 현재 화성·평택에서 생산한 웨이퍼를 충남 온양으로 보내 패키징한 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전 세계 고객사에 공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광주나 전남 지역에 패키징 공장이 들어설 경우 물류 동선이 지금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주요 변수로 보고 있다. 웨이퍼는 충격과 진동에 민감해 특수 차량으로 운송되는데 이동 거리가 길어질수록 시간과 비용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패키징을 마친 반도체 역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해외 고객사로 배송된다. 화성·평택에서 생산한 웨이퍼를 호남권으로 보내고, 완성품을 다시 인천국제공항으로 운송해야 하는 구조가 될 경우 생산 효율성과 물류 경쟁력 측면에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온양 패키징 라인 증설을 꾸준히 검토해온 것도 전공정과 후공정 사이 물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측면이 있다"며 "패키징은 단순 생산시설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닛케이포럼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차기 반도체 공장 입지와 관련해 "전력과 땅, 인력, 물 등이 모두 갖춰진 곳에 짓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에서 안 되면 해외라도 갈 수 있다"며 입지 선정 과정에서 산업 인프라를 우선 고려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이미 청주와 용인을 중심으로 후공정 투자 확대를 검토하고 있는 만큼 호남권 신규 투자에는 상대적으로 신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미국 인디애나주 HBM 패키징 기지 구축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지역균형발전과 산업 경쟁력 확보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대에는 패키징이 반도체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로 떠올랐다"며 "공장만 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협력사와 전문 인력, 연구개발 역량까지 함께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대규모 제조시설은 산업 인프라가 갖춰진 배후 거점에 배치하되 연구개발과 기획, 영업, 본사 기능은 권역 중심도시에 결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생산시설 유치만으로는 지역 산업 생태계 구축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취지다.
재계 관계자는 "지역균형발전은 중요한 과제지만 반도체는 국가 전략산업인 만큼 입지 결정 과정에서 경제성과 효율성, 공급망 안정성을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기업들은 산업 경쟁력과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서아 기자(seoahkwon@inews24.com),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