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민지 기자] "15억원이 기준선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하 가격의 아파트는 상승세가 뚜렷하고, 그 이상 가격 매물은 약세를 보이고 있으니까요."
서울 아파트 시장이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15억원' 선을 경계로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다는 시장의 목소리가 나온다. 규제와 세금 부담에 직면한 강남3구에선 수억원 낮은 거래 등 조정 신호가 감지되는 반면, LTV 범위 내 대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강북권에선 '15억원 마지노선'을 두고 가격 메우기 흐름이 뚜렷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3월 첫째 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전체 매매가격 상승률은 0.09%로 5주 연속 둔화됐다. 그런데 지표를 뜯어보면 특이점이 보인다. 송파(-0.09%), 강남(-0.07%) 등 강남권이 약세를 보인 반면 성북(0.19%), 강북(0.17%) 등 외곽 지역은 서울 평균의 두 배 수준 상승률을 기록하며 역주행 중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길음동에 위치한 대단지 아파트 '래미안센터피스'가 전용 84㎡는 17억~19억 원 수준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찍고있다. [사진=김민지 기자]](https://image.inews24.com/v1/c5a2623357ffb7.jpg)
실거래가는 더 명료하게 이런 현상을 보여준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전용 84㎡는 지난 1월 60억8000만원에 거래되며 지난해 고가 대비 11억원 넘게 증발했다. 압구정 신현대 역시 고점 대비 최근 18억원 이상 낮은 매물이 나오며 "강남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10일 직접 찾은 성북구 길음동과 강북구 미아동 일대 공인중개업소 분위기는 강남발 침체 소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현장에서는 오히려 대출이 가능한 15억원 미만 단지를 중심으로 실수요 문의가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성북구 길음동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 A씨는 "최근 상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실거주 목적"이라며 "강남 집값이 조정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이 근방에서도 집값 흐름을 점검해보려는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성북구 대표 단지로 꼽히는 래미안길음센터피스 전용 59㎡는 지난달 말 12억8000만 원에 거래되며 신고가에 근접했다. 현재 시장에 나온 매물 호가는 15억2000만원~15억7000만원 수준이다. 인근 월곡두산위브 또한 전용 84㎡가 지난 1월 8억원 선에 거래됐으나 현재 9억50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강북구 미아동의 상황도 비슷하다. 꿈의숲롯데캐슬 전용 84㎡는 지난달 11억7000만 원에 거래된 이후 현재 호가가 12억원 선을 넘보고 있다. 강남권에서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가격을 낮춘 매물이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지역은 실거주 비중이 높아 가격 하락 압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인근 번동주공1단지 전용 41㎡ 역시 지난달 신고가(4억4500만원)보다 높은 4억8000만원 수준에 매물이 나오며 가격 우상향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강북권의 이러한 흐름은 실제 거래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 3219건 가운데 15억원 이하 거래는 2714건으로 전체의 84.3%를 차지했다.
사실상 서울 아파트 거래의 대부분이 대출 규제선(15억원) 아래 가격대에서 이뤄진 셈이다. 이 가운데 성북·노원·강북 등 강북 14개 구 거래 비중은 61.2%로 나타났다.
특히 강북권인 △노원(100%) △은평(97.7%) △성북(97.1%) 등지에서는 거래 10건 중 9건 이상이 15억원 미만 가격대에서 형성됐다.
그 중 소형 아파트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강북 14개 구의 전용 60㎡ 이하 평균 매매가격은 8억1459만원으로 집계되며 처음으로 8억원 선을 넘어섰다. 이는 1년 전(6억9854만원)보다 16.6% 상승한 수치다. 같은 기간 전용 84㎡ 상승률(11.4%)을 크게 웃돈다.
왜 '15억원'인가?… 대출 규제가 가른 서울의 남북
강남이 얼어붙을 때 강북의 소형 아파트 가격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대출 규제선인 '15억원'이 유리천장으로 작동하고 있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10·15 대책에 따른 대출 차등화 정책을 보면, 1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원까지 주택담보대출(LTV)을 활용할 수 있다. 소위 '영끌'을 통해서라도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시도할 수 있는 가격 구간이라는 의미다. 반면 25억원을 초과하는 초고가 주택은 대출 한도가 2억원으로 제한된다. 강남권 주요 단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현금 동원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초고가 지역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고금리 환경에서 자금 조달이 막힌 강남권에서는 가격을 낮춘 매물이 늘어나는 반면, 대출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을 수 있는 가격대의 성북·강북권으로 실수요가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다.
전문가들도 이런 흐름의 배경으로 대출 규제 강화와 전세사기 여파로 인한 매매 전환 수요, 강북권의 상대적인 가격 매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강남권은 세금과 대출 규제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단기적인 가격 조정 압력이 커진 상황"이라며 "반면 강북권은 전셋값 상승에 따른 매매 전환 수요가 받쳐주면서 가격 하방이 비교적 단단한 구조"라고 분석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고금리와 대출 규제 압박 속에서 내 집 마련을 고민하는 실수요자들이 자금 조달이 가능한 15억원 이하 중저가 단지로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며 "강남권은 대출 한도 축소로 거래 절벽과 가격 조정이 일어나는 반면, 강북권 소형 평형은 상대적으로 대출 가능금액이 많아 실수요층이 꾸준히 유입되며 하락세를 방어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장선영 부동산R114 책임연구원도 "분양가 상승으로 자금 부담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강북권 소형 아파트로 30~40대 실수요가 몰리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장기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양지영 신한프리미어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오는 5월 9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종료되면 강남권에서 그동안 누적됐던 매물들이 상당 부분 소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후에는 거시경제 상황에 따라 강남에서 시작된 가격 조정 흐름이 시차를 두고 외곽 지역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최근 강북권에서 나타나는 상승 흐름은 '안전자산 선호'라기보다 대출이 가능한 가격대에서 서울에 진입하려는 수요가 만들어낸 현상에 가깝다는 분석인 셈이다.
정책과 금융 규제가 만든 이 '가격 경계선'이 언제까지 시장 흐름을 지탱할 수 있을지가 서울 부동산 시장을 가를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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