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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삼성家 며느리' 홍라희 리더십 눈길 [유미의 시선들]


이병철·이건희·이재용 삼성일가 3代 걸쳐 묵묵히 조력…조용한 내조로 삼성 기틀 잡아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우리나라 재벌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막내 며느리,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의 아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어머니이자 삼성전자 최대 주주. 국내 최고 부자로 평가받는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의 조용한 리더십이 최근 재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삼성가의 안주인으로서 50여년간 자리를 지켜오며 위기가 있을 때마다 시아버지, 남편, 아들의 그림자 역할로 조용한 내조로 힘을 실어주고 있어서다.

지난 19일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열린 안내견 3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모습. [사진=삼성]
지난 19일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열린 안내견 3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모습. [사진=삼성]

23일 재계에 따르면 홍 여사가 삼성일가와 인연을 맺은 것은 아버지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과 시아버지인 이병철 창업주의 친분 덕분이다. 홍 전 회장은 법무부장관과 내무부장관을 역임한 인물. 이병철 창업주와는 1951년 6·25 전쟁이 한창일 당시 삼성의 비료공장 건설 과정에서 알고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창업주는 홍 전 회장이 4.19 혁명때 이승만 정부가 무너져 감옥에 갇히고 징역형을 받게 됐음에도 홍씨 일가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홍 전 회장이 3년 넘게 옥살이를 한 후 특별사면이 된 후에도 직접 집에 방문하며 안부를 살폈다고 한다. 이후에는 홍 전 회장을 라디오 방송사 사장으로 데려오면서 삼성 미디어 사업을 맡겼다. 홍 전 회장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이다.

이는 이 창업주 자서전인 '호암자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홍진기 사장은 나의 사돈이면서 고락을 같이한 동지라고 생각한다"며 "홍 사장만큼 나를 이해해주고 협력해주는 사람도 드물다"라고 회고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병철 창업주는 삼성그룹 전체 방향과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항상 홍 전 회장의 의견을 구했다"며 "1970년대 반도체 사업 구상이나 삼성중공업 설립에 대해 상의를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1980년 삼성 본관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1980년 삼성 본관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홍 전 회장은 사위인 이건희 선대회장을 많이 아꼈다. 이 선대회장이 1968년 경영수업을 시작한 곳도 홍 전 회장이 사장으로 있던 중앙일보·동양방송(TBC)이다.

이 선대회장이 반도체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역시 홍 전 회장 덕분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 창업주와 고위 임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선대회장이 1974년 4억원의 개인재산을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하게 된 계기가 됐다.

3년만에 흑백TV용 트랜지스터를 만든 이 회사는 다시 3년 만에 칼라TV용 집적 회로를 만들었다. 이어 다시 3년 후인 1983년 11월엔 64KD램 개발에 성공해 삼성의 반도체 사업의 밑거름이 됐다.

이 결정으로 이 선대회장은 1983년 반도체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아버지(이병철 창업주)로부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결국 이 창업주가 타계한 지 13일 만인 1987년 12월 1일에는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 올라섰다.

홍 여사는 "남편은 기업인으로서 행운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며 "아버지인 이병철 창업주로부터는 천부적인 직관력과 동물적인 경영 감각을 물려받았고, 장인인 우리 아버지(홍 전 회장)로부터는 행정 경험, 법에 대한 개념, 사회에 대한 총괄적인 개념을 듣고 배웠다"고 회고했다.

◇이병철이 사랑한 막내 며느리…韓 미술계 '큰 손'으로 등극

홍 전 회장은 슬하에 4남 2녀를 뒀다. 그는 첫째 딸인 홍 여사를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아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 역시 '전라도의 기쁨'이란 뜻을 담아 '라희'라고 지었다.

이 창업주도 홍 여사가 대학생 때부터 눈여겨 봤다고 전해진다. 일각에선 홍 여사가 대학교 3학년때인 1965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입선을 했을 때부터 삼성가 며느리로 낙점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홍 전 회장이 홍 여사에게 미술애호가였던 이 창업주를 직접 안내하라고 얘기했고, 홍 여사가 거절 끝에 결국 관람 안내에 나서면서 두 가문의 인연이 본격화됐다는 후문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진=아이뉴스24 DB]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사진=아이뉴스24 DB]

이 때를 계기로 이 창업주는 홍 전 회장에게 자신의 삼남인 이 선대회장과 홍 여사를 한 번 만나게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홍 여사는 어머니 김윤남 여사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었던 이 선대회장, 이 창업주와 만났다.

홍 여사와 이 선대회장의 인연은 그 해 9월 15일 이른바 '한비 사건'이 터지면서 더 깊어졌다. 이 창업주가 이 선대회장에게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도우라고 지시했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귀국한 후 10월부터 동양방송 이사로 합류했다. 이 때부터 두 사람은 서울에서 데이트를 시작했고, 결국 1967년 1월 약혼한 후 4개월 뒤인 5월에 결혼했다.

이 창업주는 홍 여사를 며느리로 삼은 후 미술 수집가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그는 고미술품 애호가였는데, 갓 결혼한 홍 여사에게 일정 금액을 쥐어주며 매일 인사동에서 골동품을 골라오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덕분에 홍 여사는 국내 미술계의 큰 손이 됐다. 삼성가가 2021년 4월 이건희 선대회장이 소장했던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국가에 기증할 수 있었던 것도 홍 여사가 조력자로 역할을 했던 덕분이다.

이 선대회장과도 미술에 대한 애정으로 공감대를 많이 이뤘다. 미디어 작가 고(故) 백남준이 삼성전자가 후원한 TV 1003대로 대표작 '다다익선'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들의 지원으로 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홍 여사의 심미안이 시아버지로부터 길러진 것이라면 재정적 뒷받침은 이건희 선대회장이 책임졌다"며 "이병철 창업주는 예술작품이 자신의 예상보다 비싸면 값을 치르지 않았지만, 이건희 선대회장은 명작이라고 판단하면 값을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여사가 이끈 리움미술과는 대중과 현대미술의 가교 역할을 했다"며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데도 홍 여사가 적극 나선 덕분에 국내 미술계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삼성家 핵심' 홍라희, 남편 이어 아들 조력자로 존재감 과시

홍 여사는 결혼 후 1968년 이재용 회장, 1970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1973년 이부진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1979년 막내딸인 고 이윤형 씨를 낳았다. 1975년 7월에는 중앙일보 출판문화부 부장으로 합류하며 삼성일가의 일을 본격적으로 맡았다. 1993년부터는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로 활동하며 미술·문화계에 많은 업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호암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했고, 1996년 10월부터 1998년 8월까지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2004년 10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하면서 '리움' 관장직을 맡았으나, 2017년에 관장직을 사퇴했다.

홍 여사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삼성가의 안주인으로서 조용한 내조로 주목받고 있다. 이 선대회장과 함께 공식 석상에 참석해도 곁을 묵묵히 지키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2010년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한 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5년이나 10년 후 삼성의 1등 제품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갖고 조기 출근할 때의 일화도 유명하다. 이 선대회장이 너무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누구도 말리지 못하자, 홍 여사가 이 선대회장의 옷을 코디 해준다는 핑계를 들어 출근 시간을 늦춰 삼성 임원들을 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 여사는 이 선대회장 생일인 1월 9일 하루 전에는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에 위치한 천주교의 대표적인 한센병 환자 시설인 성라자로 마을을 찾아 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봉사는 1970년대 말부터 40년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홍 여사는 이건희 선대회장과 함께 할 때는 항상 옆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등 54년 평생 반려자로서 조용한 내조를 해왔다"며 "간혹 이건희 선대회장이 서두를 때는 다른 방식으로 그의 속도를 조절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모습. [사진=통도사]
경남 양산 통도사에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모습. [사진=통도사]

홍 여사의 이같은 움직임은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재용 회장이나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 등 자식들을 항상 걱정하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머리 숙여 당부의 말을 전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재용 회장과 함께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며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고 있다.

지난 2021년 11월 이 회장과 경남 합천군 해인사와 양산 통도사를 찾아 이 선대회장의 1주기를 기리고 해인사에 '디지털 반야심경'을 선물하며 이 회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이 회장은 그 해 8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돼 있다가 가석방된 직후였다.

최근 삼성의 '안내견 사업 30주년 기념식'에 이 회장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도 재계의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이 안내견 행사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선대회장이 애정을 갖고 벌였던 사업이었다는 점을 직접 알리기 위해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 자리에서 홍 여사는 "이 선대회장이 굉장히 노력했던 사업"이라며 "30주년 기념식을 보면 감동하고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대회장이 남긴 삼성생명 지분에서 자신의 몫을 포기하고 이 회장이 갖도록 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2021년 공개된 삼성가의 지분 상속 내용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 선대회장이 보유했던 삼성생명 지분(20.76%)의 절반을 상속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로,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다.

이 회장은 이전까지 삼성전자 대주주인 삼성물산 최대주주로서 삼성전자 경영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상속을 계기로 삼성생명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축을 손에 넣었다. 그 과정에서 홍 여사는 아들의 경영권이 더 탄탄해질 수 있도록 자신이 받을 삼성생명 지분을 포기했다.

재계 관계자는 "홍 여사는 이병철 창업주부터 이건희 선대회장, 이재용 회장까지 삼성일가의 소위 '안주인'으로서 그들의 곁을 지키며 그룹내 입지를 탄탄히 다질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며 "삼성일가가 다른 재계 그룹들과 달리 별다른 상속 분쟁 없이 이재용 회장 중심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가족간의 화합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홍 여사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조은수 기자]
[그래픽=조은수 기자]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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