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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쪼개기 상장·불공정 합병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아이뉴스24 고정삼 기자] 지난달 초 동원그룹은 한바탕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합병가액을 최대주주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산정하는 악수(惡手)를 둔 탓이다. 동원산업은 저평가, 동원엔터는 고평가된 상황에서 추진하는 불공정한 합병이란 비판이 빗발쳤다.

소액주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기관투자가들은 긴급 기자간담회를 개최해 이번 합병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면서 동원그룹은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이 같은 기류에 못이긴 동원그룹은 최근 동원산업과 동원엔터의 합병비율을 기존 1대 3.84에서 1대 2.70으로 재산정하며 진화에 나섰다. 합병 발표 이후 41일 만이었다.

기자수첩 [사진=조은수 기자]
기자수첩 [사진=조은수 기자]

동원그룹이 합병비율 재산정에 나선 것은 소액투자자들이 이뤄낸 소기의 성과라 할 만하다. 여기에 더해 일명 '동원산업 방지법'까지 발의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미들이 승리했다며 축포를 터뜨리기엔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의 자본시장에는 개인투자자들의 권리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기업들이 핵심 사업부를 떼내 신설법인을 만든 뒤 상장시키는 '쪼개기 상장'으로 개미들이 분통을 터뜨린 게 불과 얼마 전이다. 합병도 마찬가지다. 시너지 효과라는 추상적 명분을 앞세워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 삼광글라스·이테크건설·군장에너지의 3사 합병 등에서도 같은 논란이 불거졌다. 동원그룹 합병에서 기시감이 드는 이유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합병 논란에서 문제시 된 이사회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합병비율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 만큼이나 이사회가 최대주주에 종속돼 편향적인 결정을 묵인했다는 비판도 많았다.

현행 상법에서는 이사가 회사를 위해 충실히 직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주주의 이익까지는 고려하지 않아도 문제 삼지 않는다. 주주들이 주주총회를 통해 임명한 이사가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정을 내려도 이렇다 할 제재 방법이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에 법을 개정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법안도 발의돼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제382조의3)'이다. 법이 개정되면 이사가 주주의 비례적 이익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의 일방적 결정으로 일반주주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한국보다 경제가 역동적이고, 생산성이 높은 미국에서도 판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립하고 있는 기준이다.

후진적 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이사가 전체 주주를 위해 일하게 되면, 주주권이 보호되고, 주주가치가 제고돼 자연스럽게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더불어 지배구조 문제로 촉발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일정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코스피200의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각각 9.8배, 1.0배로, 선진국(PER 18.4배·PBR 2.8배)은 물론 신흥국(PER 12.3배·PBR 1.6배)보다도 크게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대만(12.9배)과 중국(11.9배)보다 저평가돼 있는 실정이다.

상장사의 이익은 크게 증가했는데, 주가는 오히려 감소했다. 실적은 주가의 함수라는데, 국내 증시에서는 실적과 주가가 따로 놀고 있다. 다수의 투자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한국의 후진적인 지배구조에서 찾는다.

동원그룹이 이번 합병 계획에서 일보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는 수면 위로 떠오른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 가운데 한 사례일 뿐이다. 한 층 성숙한 자본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법 규제 재정비가 시급하다.

/고정삼 기자(js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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