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입니다. IT네트워크성능관리솔루션(APM)라는 독특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있는 넷크루즈 홍성각 사장의 벤처사업이야기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최악의 경기침체와 바짝 말라버린 벤처산업계의 휑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국내 벤처산업계에는 여전히 파워풀하고,역동적인 CEO들이 곳곳에서 놀랄만한 성과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듯합니다.
이런 CEO와 벤처기업들이야말로 ‘옥중의 옥’으로, 한국의 신성장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역들입니다. 홍 사장이 추천한 박우진 아이크래프트 사장 역시 이런 범주에 들어갈만큼 역동적인 CEO 입니다. 홍 사장은 박 사장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정말 뚝심있게 사업을 하시는 CEO입니다.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주위엔 늘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홍 사장과 박 사장은 각각 예전 직장인 쌍용정보통신과 KT에 있을 때 비즈니스관계로 만났다고 합니다. 벤처기업 CEO로 변신해있는 두 사람은 이젠 아주 절친한 선후배사이라고 합니다.
아이크래프트 박우진 사장의 뚝심이 어느 정도인지, 그의 5년여에 걸친 벤처창업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외국계 다국적 기업이 휩쓸고 있는 네트워크 솔루션분야에서만 연 500억원대의 매출에 100억원대의 흑자를 내는 알짜 토종 벤처기업이 등장,소프트웨어업계의 부러움을 사고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통신인프라 핵심솔루션 구축 전문 SI업체인 아이크래프트. 2000년 창업후 매년 두 배가 넘는 성장세에 내리 5년간 흑자를 기록중이다.
비즈니스의 맥점에 터를 잡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기술력 중심의 유망벤처기업이다. 아이크래프트는 IPO를 신청,조만간 상장될 예정이다. 서울 청담동 아이크래프트 사무실에서 만난 박우진(44)사장은 매우 여유있는 모습이다.
박 사장은 상대방을 매우 편안하게 해주는 스타일이다. 약간 쑥쓰러워하는 듯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모습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몸을 낮추는 자세때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박 사장은 도회적인 분위기와는 조금 거리가 먼 투박한 인상을 주는 CEO다.부드러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부리부리한 눈에서 느낄수 있는 강인한 모습,그리고 넘치는 자신감이 눈길을 끈다. 박 사장은 한 눈에도 영업적인 측면의 전투력이 매우 뛰어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오랜 경험탓인지,노련하다. 그리고 매우 낙천적이다. 박 사장은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그리고 원칙과 나름의 독특한 경영스타일을 고집하는 CEO로 이 바닥에선 꽤나 입소문이 나있다.
소문대로 비즈니스의 흐름을 짚어내는 맥점짚기는 확실히 남다르다. 시장을 훤히 뚫어보는 감각과 고객사보다 더 앞서 생각하는 노하우는 가히 유명세가 허튼게 아님을 짐작케한다.
| ||||||||
◆ 통신, 운명의 만남
“야,직장생활 할거면 큰 데서 해. 대기업에서 한번 일해봐.” 88년초,한국통신(현 KT) 다니던 친구의 제안에 박우진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며칠후 박우진은 KT 공채시험에 응시한다.
박우진은 88년 KT에 입사한다. 그는 친구의 강력한 권유에 자신의 인생이 새롭게 펼쳐질 것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박우진은 대학졸업후 D무역에 입사,산업용모터 제어컨트롤러 회로설계 및 영업을 하고 있었다.
평소 엔지니어보다는 기획쪽 일을 하고 싶었던 박우진은 친구의 제안에 용기를 얻어 과감히 전직을 결심한 것. 박우진의 인생은 KT입사후 통신전문가의 길로 빠르게 빨려든다.
입사후 맡은 일은 ‘통신선로’업무. 용인전화국에 근무하면서 통신선로 설계 및 시공업무를 맡았다.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설 때,통신시설을 어떻게 공급할 건지, 설계하고 시공하는 업무였다.
5년이 지난 즈음, 박우진은 통신인프라를 완벽하게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박우진의 감춰진 잠재력은 91년, 데이터통신이란 새로운 세상을 접하면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그는 하이텔전신인 ‘KETEL’업무를 맡으며 데이터통신에 눈을 뜬다. “컴퓨터로 통신을 한다는게 정말 획기적이더라구요. 정말 맡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92년,박우진은 공중기업통신망사업부에 자원했다. 기업을 상대로 음성과 데이터통신을 동시에 제공해주는 기업통신서비스였다. 통신네트워크의 근간이 되는 전국망관리업무를 맡았다.
이를 통해 박우진은 2년간 하이텔에 심취하게 된다. 채팅도 하고,하이텔을 통해 알게된 젊은 친구들과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는 이미 통신망을 기반으로 데이통신이란 새로운 세상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이를 통해 그는 훗날 창업에 필요한 감각들을 하나씩 키워가고 있었다.
그는 한 술 더 떠 94년, KT가 국내 최초로 선보인 학술망인터넷인 ‘코넷’사업을 담당하는 행운을 거머쥔다. 그는 99년 퇴사때까지 코넷사업을 맡으며 국내 인터넷역사와 호흡을 같이한다.
코넷사업부 부서원은 모두 5명. 기획부터 모든 것을 다해야 했다. 코넷은 사업개시 3개월만인 94년 6월께 상용서비스에 들어가는 등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코넷서비스는 매년 2,3배 이용자가 늘어나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당시는 모뎀이 9.6kbps급일 때입니다. 그런데 코넷 등장후 이용자수나 이용량,속도 등이 매년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죠. 5~6년만에 9.6kbps급에서 ADSL 8메가bps급까지 속도가 빨라진 것은 세계적으로 정말 엄청난 거죠.”
숨가쁜 정보화 속도전의 중심부에서 일했던 박우진은 자연스레 인터넷관련 다양한 경험을 하게된다. 코넷서비스의 시설설계부터 시스템평가,마케팅및 요금제도기획까지 알파와 오메가를 몽땅 담당했던 것.
신사업이다 보니,이것저것 ‘리베로’로 일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잡식성 업무는 그의 사업적 감각을 키우는 동시에 훗날 창업에 필요한 다채로운 경험들을 한껏 제공하는 계기가 된 것.
이를 통해 박우진은 국내 인터넷의 발전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내 최첨단 데이터통신산업과 통신인프라를 한 눈에 훤히 꿰차는 IT 전문가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 ||||||||||||||||||||
◆ 탄탄대로, 그만의 행운
박우진은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해야하는 과중한 업무탓에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든 것을 가장 빠른 시간내에 동시다발적으로 파악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나중에는 박스 모양만 봐도,저 제품 성능이 어느 정도일지, 잘될 것인지, 안될 것인지를 판단할수 있을 정도가 되더라구요.” 그랬다. 박우진은 인프라구축에 필요한 각종 시스템과 솔루션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업무도 담당했다.
당연히 제품규격에서부터 분석,성능테스트,구매,유지관리 등을 담당,제품박스만 봐도 대충 수준을 짐작할 정도가 됐던 것. 코넷과 같은 신규서비스의 경우 늘 국내 최초의 일이다보니, 항상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박우진의 내공은 94년 이후 5년여간 집중적으로 연마된다. 혼자 끙끙대며 하얗게 밤을 샌게 부지기수다. 어쩔수 없이 시장과 새로운 사업에 대한 기획과 계획을 세우기 위해 BT,NTT 등 선진 통신회사를 분석하고 동향을 관심있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중에 나와있는 제품은 철저히 분석했고, 새로운 거다 하면 누구보다 먼저 파악했다. 그는 이런 업무성격 때문에 시장과 기술동향을 자세히 들여다볼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당시 KT가 사업성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시장과 기술 두가지였습니다. 헌데 인터넷쪽은 전례가 없다보니,도움을 받을 데가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외부 업체와 사람,신제품을 통해 그 두가지를 수시로 접하게 됐죠”
박우진의 기획서는 늘 새롭고 앞서나갔다. 기획서는 항상 만들기가 무섭게 결재가 났다. 승승장구했다. 윗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박우진은 물불안가리고 일했다.
하지만 급격한 기술발전을 지켜보던 박우진은 직장생활을 계속한다는게 더 이상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99년초의 일이다.
◆ 또다른 착점, 창업의 길
“직원은 저랑 CFO 달랑 둘입니다.하지만 투자하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2000년초,직원이 둘밖에 없는데 뭘 믿고 투자를 하냐는 기관투자자의 질문에 박우진은 연신 ‘믿어달라’를 연발하고 있었다.
KT내에서 탄탄대로를 걷던 박우진이 퇴사를 결심한 것은 나름의 확고한 철학 때문이다. 코넷사업을 2002년까지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정도면 인터넷에 대해 왠만한 경험은 다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그의 기대는 눈부신 인터넷 발전속도앞에 무참하게 깨졌다.
“2002년쯤 올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 빨리와 버리더라구요. 제가 애초 생각한 것들이 99년쯤 와버린 거죠” 박우진은 고민에 빠졌다. 이런 추세라면 5년후 모든 통신서비스가 완전 보편화돼고, 본인 역시 지속적으로 남들보다 우위의 위치에 있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설 때 뭔가 결심을 해야겠다는 나름의 생각도 크게 작용했다. 99년 9월 사표를 던졌다. IMF를 겪으면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IT산업의 붐은 박우진에게도 더 이상 코넷에 묻혀살수 없음을 강력하게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박우진은 이미 준비된 CEO였다.
놀라운 것은 비즈니스모델. 그가 정한 사업아이템은 통신인프라의 핵심솔루션. 그가 사업적 파트너로 미국 주니퍼네트웍스를 꼽은 배경 또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대목이다.
주니퍼는 시스코 경쟁사. “우리의 솔루션과 주니퍼 시스템을 합치면 코어솔루션시장을 평정할 수 있을거라 확신했습니다” 핵심솔루션을 택한 것은 인터넷을 신봉했기 때문.
“인터넷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이며, 인프라 역시 투자가 계속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핵심솔루션 수요 또한 계속해 생길 거라 확신했죠”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었다.
“단말기는 사업성이 없었습니다. 수명이 너무 짧고 순식간에 지나가죠. 하이텔단말기,ISDN단말기,모뎀 모두 같았습니다. ADSL도 그렇고, VDSL도 그렇습니다”
박우진의 예측은 정확했다. 모뎀,ADSL단말기 등 단말기업체가 대부분 문닫고 사라질 거란 것을 그는 이미 99년께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던 것.
비즈니스파트너로 주니퍼를 택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그만의 사업적 감각이다. “시스코와의 사업파트너쉽은 돈벌기 어려운 상황이라 판단했습니다.파트너가 수십개사에 이르고,뚫고 들어가기도 힘들고,들어가도 돈벌 구멍이 별로 없다고 봤습니다”
반대로 거의 실적이 없는 주니퍼의 경우 확실하게 윈윈할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인프라 핵심솔루션쪽에 적합한 주니퍼 제품의 뛰어난 성능 또한 박우진은 간파하고 있었다.
주니퍼의 경우 국내에 2개 파트너사가 있었지만, 아직 KT에는 납품조차 못하고 있는 점을 박우진은 비즈니스의 기회로 삼은 것. 네트워크장비하면 너도나도 시스코만을 외치고 있는 와중에 그는 시스코를 피해 주니퍼란 카드를 택했던 것.
99년 11월말,서울 도곡동에 20평짜리 오피스텔을 얻었다. 직원은 본인 한 명. 혼자 출근,하루종일 오피스텔을 지켰다. “혼자있으니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되더라구요. 조용히 사업구상에 집중할수 있었습니다”
2000년 1월,회사를 설립하고 인터넷,인포메이션쪽의 전문가(크래프트)란 뜻으로 아이크래프트를 사명으로 정했다. 그는 창업후 곧바로 투자자금유치부터 시작했다. 어차피 자금이 필요한 사업이고,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투자유치는 낙관했다. 3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박우진은 충원인력을 손꼽히는 선수급으로 한정했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선수급이라고 평소 생각했던 사람들을 접촉,장기간에 걸쳐 영입하는 스타일을 고집했다.
학연도,혈연도,지연도 전혀 고려치 않은 박우진만의 철학이다. 6개월간 선수급 인력을 체크,10여명으로 압축한뒤 본격적인 접촉에 들어갔다. 이들 10여명은 그가 KT에 있을 때 눈여겨본 명망있는 전문가들이었다.
대부분 유명한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프로급 인력이었다. 1년여의 작업끝에 2명의 영업전문가와 2명의 기술전문가를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그 뒤 아이크래프트에는 인력충원이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박우진의 영업력이었다.
| ||||||||||||||||||
◆ 박우진의 무서운 질주
주니퍼사 경영진들은 요즘 틈만 나면 아이크래프트 칭찬에 열을 올린다. “아이크래프트는 주니퍼의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파트너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니퍼가 개발한 640기가급 라우터 등 대용량 제품을 아이크래프트가 전세계에서 최초로 KT에 납품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만든 최고 수준의 제품을 최고의 고객에서 척척 팔아 레퍼런스를 만들어내니,주니퍼 입장에선 아이크래프트가 예뻐 미칠 지경인 셈.아이크래프트의 놀라운 영업력은 뛰어난 핵심솔루션 기술에 있다.
“저희는 항상 뉴서비스에 들어가는 새로운 개념의 핵심솔루션을 제안합니다. 기존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뺏어오기도 힘들고,사업적 기회도 적기 때문입니다. 고객보다 먼저 생각해 늘 새로운 것이라야 승산이 있습니다”
그의 놀라운 접근방식은 철저히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출발한다. 사업첫해부터 괄목할만한 실적을 보인다. 첫 해인 2000년 30억원의 매출과 1억원의 순익을 남긴 것.
2001년 봄,직원수를 30명까지 늘린 아이크래프트는 사업개시 2차년도인 2001년에는 매출 104억원,3억원의 흑자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한다. 이어 2002년에는 220억원,2003년에는 419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창업후 내리 4년째 흑자다. 하지만 박우진의 생각은 다르다. “직원이 60명조금 넘는 수준인데,이제 어느 정도 위치를 다지고 있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박 사장은 최근 IPO를 신청했다. 대규모 공모자금으로 다가올 또다른 5년을 준비할 생각이다.
기존 인프라가 점점 지능화하고,또 그런 측면에서 더욱더 관리를 해줘야하는 추세라는게 통신인프라에 대한 그의 진단. 보안쪽에 관심을 두는 것도 이런 SI사업의 특성 때문이란다.
박 사장은 요즘 두가지 사안을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첫번째는 기존 인프라에서 어떤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해낼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 두번째 고민은 향후 각 가정의 PC가 뭘 필요로 할까하는 PC진화론에 대한 전망.
“앞으로 가정의 PC는 용도가 다양화할 것입니다.당연히 PC와 TV는 통합될 것이며,그런 의미에서 통신과 방송이 합쳐지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우진의 욕심은 끝없어 보인다.그는 올해 500억원대의 매출에 20% 수준의 영업이익을 자신한다. 그리고 기업공개후 대규모 공모자금을 통해 더욱 역동적인 회사로 키워나가겠다는 포부다. 박우진의 거칠것없는 행보다.
◆ 박우진의 성공론

박우진은 단기간내 나름의 기반을 다질수 있었던 첫번째 비결로 ‘사람’을 꼽는다. “사업의 성공여부는 사람에 달려있습니다.기술도 사람에 있죠.제가 1년이상 사람에 공을 들인 이유 역시 사람이 핵심이라는 생각때문입니다”
왜 사람이냐는 질문에 답변은 명쾌하다. “사업이란 고객이 원하는 것을 군더더기 하나없이 깔끔하게 만들어 제공하는 것입니다. 대충해서는 안됩니다.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입맛에 맛게 제공해야 합니다. 이런 직원들의 능력이 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두번째 비결은 핵심적인 내용을 사업모델로 삼은 ‘코어론’이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집니다. 어느 분야건 핵심적인 분야는 고객사들이 안하고는 안됩니다. 그나마 코어쪽에 근접한 사업아이템을 찾은게 그나마 빨리 자리잡을수 있었던 것같습니다”
그 역시 KT출신이지만 눈물의 세월을 곱씹어야 했다. 공개경쟁을 통해 이뤄지는 KT입찰에서 조건미달로 입찰에 참여조차 할수 없었던 사업초창기의 어려움은 이루 다 거론하기 힘들다.
서글픈 시련과 고통끝에 경쟁에서 이길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하고, 그런 쓴잔을 마신후 더욱 강해질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원칙론’도 그가 내세우는 아이크래프트의 강점. “사업을 하다보면 늘 판단을 해야합니다. 이때 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그게 첩경입니다”
회사내 학연,혈연,지연이 없는 것도 직원을 뽑고 대하는 그만의 원칙 때문이다. 박우진은 직원들에게 회사의 문화를 만드는데 적극 동참해달라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사람끼리 만나고,어울리는 결속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이기심을 버려야한다고 단호하게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뒤로 빼거나 회의시 침묵하거나, 뒤에서 평론만하는 직원들을 싫어한다. “적극적인 참여와 동참의지가 없이는 회사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기 힘듭니다”
박 사장이 회사내에서 주문하는 두번째 덕목은 ‘포지션파워’를 길러야한다는 점. “직원들 스스로 위치를 찾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노력에 무임승차해서는 안되죠”
그래서 그는 직원들에게 신입은 1년, 경력은 3개월간의 기간을 준뒤 스스로 업무목표를 설정하고,실적을 평가토록 한다. 스스로 ‘포지션파워’가 나지않는다고 판단되면 즉시 다른 일을 줘야한다는게 그의 지론.
“입사원서,연봉제에 사인했다고 몇 년이 보장되는게 아닙니다. 벤처정신은 계속 살려야 합니다. 조직원 스스로 구체적으로 회사에 무엇을 기여했는지를 기술할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수 있을까? 그만의 성공론을 들어보자. 첫번째로 ‘전문성’을 꼽는다. “자기가 할려고 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야 합니다. 점점 분업화,전문화하는 상황에서 지식과 경험이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죠”
두번째 성공론의 키워드는 CEO로서의 끝없는 ‘자기계발’이란다. “사업초기 어려움중 하나는 경영노하우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경영은 절대 건너뛰거나 생략이 없습니다. 재무는 물론 기술 운영,자금,회계,주주관리등 분야별로 계속해 엄청난 공부를 해야합니다”
고객과의 관계를 세번째 중요한 성공론의 덕목으로 꼽는다. “고객과의 관계를 영업적 관심사차원이 아닌 인간적 신뢰를 얻는데까지 이끌어낼수 있어야 합니다”
박우진은 개인적으로 회사내에서 유능한 CEO가 많이 배출되는게 꿈이란다. 늘 낙천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는 박우진 사장은 지금도 영업현장을 누빈다. 여전히 일주일에 두세차례 술을 마신다. 영업맨으로서 당연하단다.
박 사장은 요즘 시스템적으로 일을 하는 업무시스템화에 부쩍 많은 주문을 한다. ERP기반 시스템과 기술적 품질관리시스템을 구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직원들은 힘들지만 조직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높여야만 회사가 수십년의 명맥을 이어갈수 있다는 CEO로서의 판단 때문이다.
아이크래프트 박우진 사장.그는 국내 정보화 인프라의 근간이 되는 초고속통신망의 핵심 솔루션을 책임지고 있는 유망벤처기업가로 우뚝 서있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 사장은 올초 금연을 했다고 합니다. 비즈니스 협상을 하다말고 추운 날씨에 호텔밖으로 나와 처량하게 담배를 피워대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20년이상 피운 담배를 과감히 끊었다고 합니다. 박 사장은 오로지 한 우물만 팔 것이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에 다른 생각이 있을 수없다는 거죠. 회사를 더욱 역동적으로 키울수만 있다면 경영권 역시 연연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더 능력있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내놓을수 있다고 하네요.
/김광일 객원칼럼니스트(GCM 대표) goldpar@gcm.co.kr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