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 월드비전(World Vision), 국경없는 의사회(Doctor Without Borders), 유니세프 (UNICEF), 유엔 난민기구(UNHCR). 이들은 현재 세계에 있는 많은 난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 대표적 봉사단체들이다.
유명인의 기부, 해외 봉사, 구호 단체, 난민 어린이 결연 등의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 자신을 '하느님의 연필'이라 칭하며 어려운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who?시리즈-마더 테레사'(다산어린이)를 떠올리게 한다.
마더 테레사의 본명은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로 유고슬라비아의 알바니아계 가정에서 태어난 후 다음날 '아녜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1928년 로레토 수녀원에 들어간 후 1931년 유기서원을 하여 정식 수녀가 된다.
1950년 마더 테레사는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설립하여 빈민과 고아, 나병환자를 돕는데 일생을 바치게 되는데 이 무렵부터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 of Calcutta)'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사랑의 선교 수녀회'는 인도 콜카타에 총본부를 두고 있는데, 인도는 마더 테레사가 가장 사랑한 나라이다.
그 당시 인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200여년의 영국 지배를 벗어난 독립국가로서의 출발을 앞둔 상태였다. 그러나 종교적, 정치적 상황이 맞물려 전쟁과 투쟁이 끊이지 않게 되고 인도 거리는 난민들로 넘쳐났다.
테레사는 신의 부름에 따라 인도인들을 향해 따뜻한 봉사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그러나 오해와 적대시하는 인도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열 수는 없었다.
◆미천한 여인 상징하는 흰옷 입어
테레사는 자신의 뜻을 인도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검은 수녀복을 벗고 가장 미천한 여인들이 입던 인도의 흰색 사리를 입기 시작한다. 훗날 테레사가 입은 흰색 사리는 그녀를 상징하는 옷이 된다.
그녀의 봉사와 박애정신은 인도의 힌두교와 가톨릭을 뛰어 넘는 더 큰 의미의 평화였다. 결국 그녀는 인도인의 마음을 열게 되고 순수한 봉사정신을 인정받아 인도의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테레사는 꾸준한 봉사 덕에 1979년 69세의 나이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힘을 여러분의 가정으로 가져가세요. 그것만으로도 세상의 나쁜 것들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우리의 손과 마음에 흐르게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who?시리즈-마더 테레사' 172쪽
그 후 마더 테레사는 1995년 워싱턴에 입양센터인 '아동을 위한 테레사의 집'을 세워 미혼모와 사생아 문제 등을 입양운동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1997년 9월 5일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 인도 정부는 국상일로 선포하고 마더 테레사를 추모했다.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마더 테레사의 죽음을 슬퍼했고, 미국에서는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다.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공로를 기려 마더 테레사를 복녀의 반열에 올렸다.
평생을 인도 콜카타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살았던 '빈자의 성녀' 마더 테레사.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 뜻을 이은 사랑의 선교 수녀회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좋은 책의 발견 북스커버리 cbci 서하나 jindalae@cb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