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 재조명] (1) 해체 위기 속에 재조합 열풍

 


inews24는 우리 민족이 다가오는 동북아 시대를 능동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중 동반발전과 남북교류에 가교 역할을 담당할 중국 조선족에 대한 대형 집중 탐구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휴대폰 개발업체인 벨웨이브와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조선족 기획을 위해 inews24 이균성 기자가 7월 20일부터 8월 2일까지 2주일간 중국 베이징과 동북 3성 현지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제1부는 총 5편이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에 게재됩니다.

시리즈는 총 4부로 연재되며 올해말까지 계속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성원을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7월24일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센양(沈陽)시 서탑(西塔) 거리.

이곳은 흡사 중국 조선족의 심장부인 지린성(吉林省) 옌벤(延邊)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시의 한 거리를 퍼다 옮긴 듯 하다. 심지어는 한국 도시의 어느 한 구석을 옮겨놓았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한국인에게는 이국(異國)의 느낌이 덜 하다. 거리마다 한글과 한문을 나란히 쓴 간판이 많다. 적지않은 식당에서도 한국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특히 7월 21일부터 25일까지 센양시 주최로 '2003 심양한국주간'이 열리고 있어서, 서탑 거리는 한국 기업가와 중국 조선족으로 차고 넘쳤다. 서탑 거리 중앙에서는 매일 밤 한국 노래대회가 열려 '과연 여기가 중국인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조선족인 삼보전뇌유한공사(TG 중국법인)의 림영산 부총경리는 "서탑 거리는 70~8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며 "특히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인의 진출이 늘면서 서탑 거리는 순수 조선족 집거지에서 한국인과 조선족이 크게 섞이는 새로운 '백의민족 타운'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림 부총경리 자택도 이곳에서 멀지 않은 아파트에 있다.

현재 센양에 사는 중국 조선족 인구는 8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조선족 학교도 농촌 지역과는 다르게 점차 부흥하는 분위기다.

센양시조선족제6중학 계풍오(桂風梧) 교장은 "6중은 학생수가 1천400여명으로, 농촌 지역의 인구 유입이 늘면서 학생 수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 주재원을 위해 센양에 중한국제학교를 설립하는 것을 정부와 추진중이다"고 설명했다.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黑龍江)성 등 동북 3성의 중심도시인 센양에는 서탑 거리 외에도 시 외곽 지역에 중국 조선족 집거 지역이 다양하게 형성되고 있었다.

특히 센양시는 시내 남부지역인 훈하(渾河) 이남을 '훈남신구'라는 하이테크 산업 개발 특구로 지정해 한국 등 외국 자본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삼보컴퓨터 중국법인과 LG전자 에어컨 공장 등 한국 기업도 이 지역에 집중됐다.

삼보 이승갑 부총경리는 "훈남신구 남쪽 자락에 새로 중국 조선족 타운이 형성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지난 10~20년 동안 해체의 길만 걷던 중국 조선족이 다시 뭉치고 있는 것이다.

◆해체의 과거는 흘러가고…다시 뭉친다

사실 100년이 넘은 중국 조선족 역사에서 지난 10여년의 세월은 혹독했다.

중국 조선족은 1970년대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이 내건 개혁개방정책 이후, 특히 1992년 한중(韓中) 수교 이후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이산 가족은 속출했다.

새로운 산업과 돈을 따라 베이징 등 중국내 대도시로 진출하거나 '드림 코리아'의 희망을 안은 한국행이 줄을 이었다. 그 와중에서 동북 3성의 농촌은 급속히 해체되어 갔다.

"200만 중국 조선족 사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할 정도였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헤이룽장성을 비롯해 랴오닝성, 지린성 등 조선족 농촌의 산개(散個)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산개 마을의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는 거의 사라지는 추세이며, 중학교도 명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 신합촌 문태인 촌장은 "농촌 어느 학교는 학생 4명에 선생님이 5명일 정도로 심각한 사례도 나왔다"고 말했다.

문 촌장은 "신합촌의 경우 전체 인구가 570 가정에 2천376명인데, 이중 840여명이 한국에 가 있으며, 또 200여명은 베이징 등 대도시에 나가 있다"고 말했다. 신합촌 인구의 절반 가량이 지금은 정든 고향을 떠나 타지에 나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하이린시 신합촌에서 농기계 집단공장인 백두산집단을 운영하는 안광일 총경리도 "개인적으로 3형제인데, 두 동생이 현재 한국에 나가 있는 상황"이라 말했다.

문 촌장은 특히 "한 가정에 한 두 명 꼴로 외지에 나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렇게 동북 3성의 농촌 사회를 떠난 조선족은 족히 50여만명에 달한다. 조선족 전체 인구를 200만여명으로 보았을 때, 25% 가량이 대이동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농촌 인구 고령화 현상에 신음했던 한국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의 극심한 해체의 역사를 과거로 하고, 중국 조선족은 센양시 서탑의 사례에서 보듯, 도시에서, 또 도시 인근 지역에서 다시 뭉치고 있다. 산업화 및 정보화 사회에 발맞춰 200만 조선족 사회가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별 새 집거지 건설 활발

중국 조선족 지도층은 특히 한국 사회의 70년대 분위기와도 같은 대대적인 이농(離農) 현상에 대한 자활 대책을 충분히 갖춰놓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선족 재결합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기사를 써온 중국 지린성 길림신문의 한정일 부장은 "5개 형태의 조선족 집중촌이 새롭게 형성돼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센양시 서탑과 같은 '동북3성 도시형 조선족 타운'이 있다. 센양시 서탑을 비롯해, 센양시 향방구 고려타운 등이 그 예다. 조선족 원주민, 조선족 귀국 노무자, 서비스업 종사자, 조선족 지식인 그룹, 한국인 등이 이런 도시형 타운에 몰려 있다.

이런 형태의 도시 조선족 타운과 비슷하지만, 최근에는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칭따오(靑島) 등 중국 연안도시에도 조선족 타운이 형성돼 가고 있다.

특히 이들 지역은 동북 3성의 도시와 달리 한국 기업과 연계된 조선족이 주로 거주한다. 대학 졸업자나, 신흥 조선족 기업가, 한국인 주변의 서비스업 종사자 및 무역업자들이 주류이다.

베이징의 왕징신청 주변지역, 칭따오의 리창구, 상하이의 홍교 등이 대표적이며, 대개 한국인을 합쳐, 5만~10만명의 조선족 타운이 형성돼 있는 상태다.

이동춘 백두산집단 회장은 "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베이징 인근에 50만여명의 우리 민족이 몰릴 것"이라며 "이에 대비해 현대자동차 북경 공장이 있는 순이구에 대규모 조선족 타운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센양처럼 동북 3성 도시 근교에도 조선족 집중촌이 발달하고 있다. 랴오닝성 센양시 인근의 만융촌과 화원신촌, 지린성 지린(吉林)시 인근의 금풍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집중촌은 농사와 공업 및 상업을 연결시킨 '농-상-공의 복합촌'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 향(우리의 군)이나 진(우리의 읍)에 있는 농촌의 대표 마을을 중심으로 인근 산개 마을을 결합시키는 '중심촌형 집중촌' 건설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 집중촌은 조선족 농촌을 살리는 핵심 사업에 해당되지만 아직 뚜렷한 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이보다 더 열악한 것은 조선족 가정이 10호 이내인 소규모 마을이다. 현재 조선족 사회에서는 이들을 묶은 연합형 조선족 집중촌 건설 사업도 벌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을 찾은 15만여명의 중국 조선족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4만여명이 모여 살며, '한국내 조선족 타운'을 형성한 지 오래됐다.

◆사이버 공간에도 조선족 물결 넘실

중국 조선족은 또 이러한 지역별 재결합과 함께,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직업별, 직능별로 다양한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다.

베이징에 있는 중앙민족대학교 황유복 교수 등 조선족 지도층은 올 초 '제9회 조선족 발전 심포지움'을 개최하고 조선족 공식 홈페이지인 '차이나코리안닷컴'(www.china-corean.com)을 발족했다.

이동춘 백두산집단 회장은 "조선족 각 농촌을 비롯해 세부 단위별로 홈페이지를 구성한 뒤, 이 사이트로 모두 모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근에는 3만여명의 중국 조선족 대학생을 대표한 홈페이지도 정식으로 발족했다.

이 홈페이지(www.kaf21.com)는 옌벤과기대 학생들이 중심이 돼 개설했다. 향후 전국 조선족 대학생을 상대로 확산시킬 방침이다. 이들은 특히 100여년 조선족 역사 처음으로 전국 조선족 대학생을 모아 백두산에서 8일간의 하계 캠핑을 벌일 예정이다.

중국조선족대학생 1차 하령영(여름 캠프) 활동 조직위원회 채군(23) 위원장은 "이번 행사는 조선족 대학생의 중국에 대한 애국정신을 높이고, 이와 함께 중국 발전에 있어 조선족 대학생의 역할을 드높이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조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3년 전에 개설된 모이자닷컴(http://moyiza.net/)은 중국 조선족에게는 그야말로 '생명줄' 같은 인터넷 사이트이다.

이 사이트를 만든 조선족 김광식(29)씨는 "한국의 한 벤처기업이 서버 컴퓨터를 지원해 줘 홈페이지를 개설할 수 있었다"며 "현재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캐나다, 미국 등 해외 각 국에서 1만8천여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고 설명했다. 하루 방문자만 해도 2만여 명을 웃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었다. 경향 각지로 흩어진 중국 조선족들이 이 사이트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정보를 얻고 있다.

이밖에도 다음 등 국내 포털 사이트에도 수십개의 조선족 카페가 있다. 이들 카페는 대개 출신 지역별로 구성돼 있으며,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의 회원이 중국과 한국 사회에 대한 각종 정보를 실시간으로 교환하며, 긴밀한 커뮤니티를 구성한다.

다음에서 '중한무역인'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김광빈(26)씨는 "동북 3성을 떠난 중국 조선족은 인터넷을 통해 긴밀한 커뮤니티를 구성한 뒤 중국 대도시 등 각 지역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며 "커뮤니티가 글로벌한 성격"이라고 설명하였다.

1900년대 초반 온갖 역사적 이유로 광활한 만주벌판을 개척했던 중국 조선족이 또다시 동북아 시대의 한 주역으로서 중국과 한반도 곳곳에서 큰 날개를 펼치고 있다.

베이징(北京)·센양(沈陽)·하이린(海林)=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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