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지방 IT산업 -3] 하청업체로 전락한 토박이 기업

 


"하청과 재하청의 악순환...건설업계도 이렇게 심하지는 않다."

지방 IT산업을 지탱하는 각 지역의 SI(시스템구축)업체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서울 대기업들의 심부름이나 하는 하청업체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지역 IT산업군의 대부분은 SI업체. 정부의 정보화 구축의지에 따라 지자체와 지방 기업들이 내부 인트라넷을 구축하고 있다. 또 지역 중소업체들의 ERP(전사적자원관리) 구축 등의 일거리도 많다.

수요가 있다 보니 지역마다 SI업체가 다수 활동하고 있다. 춘천의 경우 지난 2002년 SI업체인 두원기술이 24억, 비플라이소프트가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규모도 지역에서는 꽤 크고 상대적으로 수요가 많아 SI업체의 활동반경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일은 많지만 지역 SI업체에 떨어지는 이윤은 별로 없다. 서울의 대형 SI업체들이 지자체와 지방 업체가 발주하는 사업을 독점하면서 지역 SI업체들은 이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한 지 오래다.

서울 대형업체들은 프로젝트를 따낸뒤 고액의 인건비를 챙기고 골치아픈 일이나 '잔 심부름'은 전부 지역SI업체에 떠맡기고 있다.

전주의 한 업체는 서울의 대형업체와 컨소시엄으로 사업에 참여했는데 제안서부터 영업까지 도맡아했지만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했다.

이 업체 사장은 "서울의 대형업체가 3명의 인력을 파견했는데 그 인력이 초급수준의 인력인데다 갓 입사한 직원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액의 인건비를 챙겼다"고 털어놨다.

◆ "배 고프면 용역업체로 전락"

춘천시 후평동 하이테크벤처타운에 입주해 있는 한 SI업체는 입주할 때 원대한 꿈을 가졌다. 기술개발을 통해 '벤처다운 벤처'를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 업체 K사장은 처음 입주할때 정말 제대로 된 벤처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직원들과 다졌다. 그러나 제품을 개발하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2년.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K사장은 "기대와 달리 고급인력이 오지 않고 자금도 융통되지 않으면서 용역사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배가 고프면 용역을 하게 된다"며 "용역을 하게 되면 기술개발은 뒷전으로 처지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초창기 가졌던 벤처의 꿈은 '기술개발 부진 → 용역사업 시작 → 용역사업 찾기 위한 노력→ 기술개발 뒷전 → 용역업체로 전락' 등의 수순으로 이어지면서 사라져 버렸다.

◆ 서울 업체 부도나면 지역 IT업체 연쇄 부도

지방 IT업체들이 서울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전주의 경우 최근 2개의 SI업체가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은 A업체의 경우 병원과 관련된 SI 사업을 도맡아왔다. 병원당 2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온 업체였다.

이 업체 사장은 20여년동안 제약회사 전산실과 IT관련 일을 한 베테랑이다.

문제는 전주시 병원 등 고객사들이 서울의 전문업체와 주계약을 맺고 A업체는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 것이 화근이 됐다. 서울의 전문업체가 중국 등에 무리한 투자를 하면서 부도가 났다.

A업체는 서울의 업체로부터 1억여원의 돈을 받아야 하는데 부도가 나는 바람에 받지 못했다. A업체 사장은 한동안 개인카드와 대출을 통해 임시변통했지만 돌아야 할 돈이 돌지 않으면서 끝내 문을 닫고 마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서울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지역 SI업체가 연쇄적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전주지역 SI업체인 imct 신광식 사장은 "지자체와 지방 기업의 프로젝트인데도 서울의 대형 업체들이 모두 챙겨가는 바람에 지역 IT업체들은 발붙일 곳이 없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상 지역IT 활성화는 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수익 남길 생각은 하지 마쇼!"

부산시의 SI 업체인 B사는 최근 관내 100억원대 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회사의 사장은 프로젝트 참여로 15억원 가량의 매출에 수익도 제법 생길 것으로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컨소시엄의 대형업체 관계자와 만난 뒤 그는 고민에 빠졌다.

“우리(대형 SI업체)도 20억 손해보고 프로젝트를 땄으니 이번 프로젝트로 수익 남길 생각은 말라”는 통보를 하더라는 것. 그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직원들 월급이나마 밀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과 이런 사업을 계속해야 하나 싶은 서글픈 마음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부산시에서 발주된 주요 지역정보화 사업을 보면 삼성SDS,대우정보기술, LG CNS, 현대정보기술, 한국후지쯔 등이 서울의 대형 SI업체들이 대부분 주간 사업자로 선정됐다.

◇과거 3년동안 부산지역 정보화사업현황◇

연도 사업내용(규모) 사업자
2001 부산신발정보화 ISP구축사업(50억) 삼성SDS
2002 부산신발정보화 DB구축사업(150억) 삼성SDS
2002 부산소방본부 119지령시스템구축사업(130억) 삼성SDS
2002 부산감천항 정보화기반사업(50억) 대우정보기술
2002 부산자동차부품협동조합 정보화사업(15억) LGCNS
2002 동의대학교 학사행정정보화사업(45억) 대우정보기술
2002 동명정보대학교 학사행정보화사업(50억) 대우정보기술
2002 정보화시범마을(부산지역) 구축사업(10억) 삼성SDS
2003 부산신발진흥센터 장비구축사업(110억) 현대정보기술
2003 부산경륜장 정보화구축사업(5억) 삼성SDS

심지어 소규모 프로젝트나 지역특화 사업까지도 이들 대형 업체가 독식하고 있다.

부산지역 한 중소기업 사장은 “5억~10억 규모밖에 안되는 경륜장 정보화사업이나 정보화시범마을(금정산성마을)같은 것들은 얼마든지 중소 지역업체가 수행할 능력이 있지만 서울 업체들이 사업을 따내면서 지역 업체들은 하청업체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 관계자는 “3억원 이상을 넘어가는 프로젝트는 법적으로도 전국 단위 입찰을 부쳐야 한다”며 “사업 적격 심사 기준을 거치는 만큼 능력이 안되는 데도 지역 업체라는 이유만으로 사업을 맡길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선(先) 컨소시엄, 후(後) 입찰 방식으로 해야

경상남도가 벌이고 있는 메카노21(기계정보화 사업)에 참여한 C기업도 비슷한 서러움을 경험했다.

이 회사는 인력파견 형식으로 메카노21 사업에 참여했다. 이 회사 사장은 “파견한 인력들의 급여가 당초 약속과 달리 30% 이상 모자랐지만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아무 말도 못했다”고 말했다.

메카노21 사업에서 특급기술자는 월 900여만원, 초급기술자는 480만원 가량이 인건비로 책정돼 있었다. 그러나 경상남도가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하청과 재하청이 이어졌고 결국 특급기술자는 600만원 안팎, 초급기술자 중에는 월 80만원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100만원도 못되는 인건비는 지역업체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지역 관계자들은 메카노21 사업이 사업자 선정후 사업자가 지역 업체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디지털월드 김휘용 사장은 “저가입찰로 사업을 따낸 대형 사업자가 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손해금액을 하청업체 인건비 등에서 만회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며 “선(先) 컨소시엄후 입찰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 SI업체가 용역업체로 전락하는 것은 지자체와 지역 업체들의 무관심도 한가지 원인이다. 지자체 정보화사업은 대부분 중앙부처의 지원으로 이뤄져 계획 자체가 중앙부처에 집중된다.

이 과정에서 서울의 대형 SI업체들이 정보를 독점, 사업계획서를 미리 파악 하고 사업권을 때내는 것이 상식이다.

지역 업체들도 내부 인트라넷 등 정보화 구축사업의 대부분을 서울의 대형 SI업체에 맡기고 있다. 이유는 "지역의 조그마한 SI업체를 어떻게 믿고 사업을 맡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지역 SI업체들은 제품개발에 투자할 시간과 여력이 없고 대형 SI업체가 따낸 지역사업에 하청업체로 참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춘천, 전주=정종오기자 ikokid@inews24.com 부산, 창원=강호성기자 chaosi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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