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지방 IT산업-1] 르포 : 떠나고 또 떠나고...남은 자의 슬픔

 


지방 IT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지역 IT업체들은 손만 갖다대도 쓰러질 듯한 심각한 위기에 몰려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지자체마다 '벤처가 살 길이다'는 구호를 소리높이 외쳤다. 하지만 거창한 구호도 잠깐. 지금 지방 IT업체들은 아픈 상처만 드러낸채 고달픈 생존에 허덕이고 있다.

참여정부도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이 또한 공허한 목소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더 이상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IT산업은 어느 업종보다 지역색을 벗어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성공한 IT업체 치고 수도권에 본사를 두지 않은 업체는 한군데도 없다.

inews24는 지방 IT산업의 현실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책도 모색해보는 기획시리즈 '무너지는 지방 IT산업'을 시작한다. <편집자주>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에 자리잡고 있는 하이테크 벤처타운. 춘천시 '지식문화산업의 중심센터'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지난 98년부터 총 587억원을 투자, 지하1층과 지상4층으로 이뤄진 3개동에 지식문화 관련 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여기에는 애니메이션과 게임 관련 업체들이 모여있는 '춘천디지털스튜디오', 바이오(BIO) 관련 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생물산업 벤처기업 지원센터', 그리고 SW와 인터넷방송국, SI(시스템통합)업체가 함께 있는 '멀티미디어 기술지원센터' 등이 몰려 있다. 지식문화 관련 사업체들이 총집결돼 있는 곳이다.

활기차고 급박하게 변화하는 지식문화산업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외형적인 조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춘천시가 최근 발간한 홍보자료에도 '자연-기술-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지식산업도시-춘천'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지난 23일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느낀 분위기는 이같은 '홍보문구'와는 사뭇 달랐다. 사막 한 가운데 온 듯한 적막함과 함께 썰렁한 분위기가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이날 따라 장대비가 쏟아져 스산한 느낌은 더했다.

IT관련 업체들이 모여있는 멀티미디어동 1층 홍보관과 전시실엔 컴퓨터조차 작동되지 않았다. 찾는 사람도 없었다. 불은 꺼져있는데다 비까지 내려 한낮인데도 적막한 어둠 속에 있는 듯 했다.

◆ 떠나고 또 떠나고, 남은 업체의 슬픔
이곳에서 만난 강원인터넷기업협회 이강일 사무국장은 '빈곤의 악순환'이란 말을 되풀이했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2~3년전에 춘천으로 많은 기업들이 내려왔다. 당시 춘천은 애니메이션 등 지식문화산업 육성을 적극적으로 외쳤다. 그러나 지금 애니메이션 관련업체는 2~3개에 불과하다. 거의 다 떠났다"

이 국장은 "무엇보다 인력난이 심각하다"며 지역 IT업체의 인력난을 하소연했다. 대도시로 다 떠나고 쓸만한 인재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는 지적이다.

IT관련 인력은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춘천은 이런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는 게 이 국장의 지적이다.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을 재교육 시킬 시설조차 변변치 않다는 얘기였다.

최근 춘천시를 중심으로 하이테크기능대학 설립 논의가 시작된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하이테크기능대학은 대학을 졸업한 이들을 IT 전문가로 양성하기 위한 중간단계다.

멀티미디어동에 입주해 있는 지앤의 김영군 사장은 지역 IT업체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자본난과 정보 부재를 꼽았다. 김 사장은 "그동안 벤처캐피털과 산업은행 등에 투자를 요청했지만 지방 업체라는 이유 때문에 투자를 꺼려하는 분위기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보부재는 더욱 심각한 실정.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한 SI업체 사장은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사업을 서울업체들이 먼저 안다"며 "해당 정보가 거꾸로 지역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자체가 정보화와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 정통부, 산자부,행자부 등 관계부처의 지원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사업계획서를 중앙부처에 제출한다.

서울에 있는 대형 SI업체들은 6개월전부터 중앙부처에 집결되는 지자체 사업계획에 대한 정보를 파악, 준비에 나선다. 반면 지역업체들은 사업 발표 2주전에 관련 정보를 입수하는 실정이다.

춘천시 멀티미디어동에 입주해 있는 업체중 서울에 사무소를 가지고 있거나 아예 서울로 떠난 업체도 많다. SI업체인 비플라이소프트와 전자상거래 솔루션업체인 강산넷 등은 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지난 3월 압축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올앤탑은 아예 서울로 이사를 했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시 진구 전포동 현대오피스텔. 이곳은 지난 99년까지 10여개의 IT업체가 입주해 어느 정도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지금은 2~3개 업체만이 남아 있고 나머지 업체들은 모두 떠난 상태이다.

부산인터넷기업협회 방진배 회장은 "부산 지역 벤처기업중 50%는 직원 급여를 주지 못하는 등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사업환경이 보다 나은 서울 등 수도권으로 떠난 회사가 15개나 된다"고 말했다.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이 조사한 지난 2002년말 '부산소프트웨어산업동향'을 보면 연매출이 1억~5억원 이하인 업체가 부산 벤처기업 전체의 6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80여 IT업체 중 절반 정도는 직원 규모가 5명 수준의 영세한 기업이다.

◆'1할 꺾기'라도 쓴다…절박한 자금난

자금난 역시 지역 IT업체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 그러다 보니 자금난에 시달리다 못해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진다.

지난 3월초 춘천시 하이테크 벤처타운 멀티미디어동에 입주해 있던 한 업체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지난해 10월쯤 위성안테나 관련 사업을 하면서 자금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유족들은 소액투자자로부터 빌린 3억여원의 돈을 갚지 못해 고민해 왔다고 진술했다.

자금 압박은 전북 전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24일 전주를 찾아 IT관련 업체 CEO들과 만났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자금난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전주의 한 업체 CEO는 사채를 끌어왔다. 투자받을 길은 없고 직원의 임금은 장기간 체불되자 위험한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벌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CEO에게 있어 회사는 인생의 전부"라며 "회사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어떻게든 살려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사채 이자는 가히 '살인적'이다.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1할 꺾기'를 당하고 보름마다 100만원씩 이자를 갚아야 한다. 만약 1천만원을 빌린다면 선이자 100만원을 뗀 900만원을 사채업자로부터 받는다. 그리고 보름마다 100만원씩 이자를 갚아야 한다.

돈을 빌린 CEO는 "4개월만에 사채를 갚았다"며 "실제로 쓴 돈은 1천만원인데 보름마다 이자를 계산하다 보니 총 1천800만원을 갚았다"고 말했다.

이런 악(惡)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인(人) 보증'은 필수. 그는 "일주일동안 애쓴 끝에 어렵게 친척에게 부탁해 보증을 세웠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4개월 이자로 800만원을 고스란히 사채업체에게 빼앗긴 셈이다. 그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면 미친 짓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무너지면 내 인생도 무너지는데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자신의 당시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주인터넷기업협회 이성민 사무국장은 이같은 상황에 대해 "지자체나 금융권에서 벤처기업에 대출을 쉽게 해준다면 누가 사채를 쓰려고 하겠느냐"며 "조건이 까다로워 은행 돈 쓰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 장(長)이 바뀌면 정책도 급변...어느 장단에 춤추나
춘천시는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시장이 바뀌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前) 시장이 추진하던 정책이 중도에 흐지부지된 것.

이강일 사무국장은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변해 애니메이션 관련 업체가 2~3년전 30여개에서 지금은 고작 서너개 정도만 남아있는 것도 정책의 일관성이 없어 지원책과 장기적 밑그림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 시장의 경우 지식산업 육성계획을 발표했지만 현 시장은 춘천을 '관광 도시'로 육성할 계획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지식산업을 담당했던 시청의 지식산업국도 현시장이 들어서면서 문화관광국으로 이름을 바꿨다.

따라서 전 시장이 구축해 놓은 하이테크벤처타운은 입지조건만 갖춰놓은 채 후속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업체를 유치하는 데까지 정책지원이 있고 그 다음은 소홀해졌다는 것.

IT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 등은 현 시장의 의지가 결여되면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한 업체 경영지원팀장은 "수요가 있어야 IT업체들이 일을 할 수 있는데 입지조건만 화려할 뿐 어느 것 하나 사회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 것이 없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서울로 떠나는 기업, 어려움에 직면하는 기업들이 속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시골IT업체를 어떻게 믿나"

전북의 A소프트웨어업체 B사장은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설움이 복바친다.

그의 애환은 이렇다. B사장은 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싸들고 올해초 서울을 찾았다. 2001년부터 몇년동안 고생고생하며 개발한 제품을 들고 서울의 고객사를 대상으로 직접 판로개척에 나선 것이다.

그는 서울의 고객사를 만나 제품을 설명하고 직접 시연까지 해 보였다. 서울 고객사의 반응은 "시골에서 올라오시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좋은 분위기에서 협상이 시작됐다. 그런데 고객사는 "우리에게 납품하려면 서울의 마케팅업체를 통해서만 납품이 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 고객사는 "제품을 거래하는데는 신뢰가 중요하지 않겠느냐"며 "시골의 IT업체를 어떻게 믿고 직접 거래할 수 있겠느냐"고 한마디 던졌다.

B사장은 "정말 가슴이 답답했다"며 "보는 앞에서 직접 시연까지 하고 몇 년동안 개발하고 전문가들로부터 검증까지 받은 제품인데 믿지 못하겠다는 말에 허탈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서울로 회사를 옮겨버릴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판매대행업체를 통하면 그만큼 이윤은 떨어질 것이고 어렵게 개발한 제품이 제값을 받고 팔리기는 쉽지 않은 노릇인 셈이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부산의 C 업체 사장도 생각만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고 싶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C 회사는 인터넷 상에서 원격 관리 솔루션을 개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는 기업.

"홈페이지를 본 회사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함께 일하고 싶으니,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부산이라며 약도까지 그려 답신 메일을 보냈더니 연락이 딱 끊기더라구요."

그는 서울에서 열리는 세미나나 컨퍼런스 행사에서 벤처 관계자들과 얘길 나눌 때, 귀를 쫑긋 세우다가도 부산기업이라고 하면 고개를 가로젖는 경우도 있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는 "실력있는 회사 같은데 왜 서울로 올라오지 않느냐"는 질문도 수없이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C 업체 사장은 이같은 일이 지역소재 기업엔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역사업도 서울업체가 독차지

춘천의 한 SI(시스템통합)업체는 행자부가 추진한 정보화마을 사업에 단독으로 입찰했지만 서울의 대형 SI업체에 막혀 탈락했다. 이 사업은 각 지역의 오지마을에 정보화를 구축해 그 지역의 특산물을 온라인으로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이었다.

지역 정보화사업인 만큼 지역특성을 잘 아는 지역 SI업체가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업체 사장은 "당시 그 지역의 특산물에 대한 현지조사는 물론 마을 사람들과 계속 만나 여러가지 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 당시 심사위원들과 교류가 있어 이번 사업만큼은 '무조건 된다'고 믿었다.

정보화구축 대상인 마을주민과 인터뷰를 통해 무엇이 필요한지 철저히 파악하고 현지조사를 통해 면밀한 자료조사까지 마친 상태. 또 심사위원까지 잘 알고 있으니 이번 사업은 '떼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성공하면 지역 IT업체가 단독입찰해 성공한 사례를 남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서울의 대형 SI업체로 낙찰됐다. 업체 사장은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해당 서울업체의 경우 현지조사는 커녕 이에 대한 별다른 대책도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런데 서울 업체가 수주한 배경을 듣고 더 큰 실망감에 빠졌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형 SI업체가 이 마을 정보화구축을 수주한 배경은 이렇다. 자신의 유통 계열사를 통해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을 많이 판매할 수 있도록 적극 개척해 준다는 조건이었다.

◆ 지방업체 몰락은 실업자 양산으로
전주인터넷기업협회 오민권 회장은 '벤처실패→실업자 대거 양산→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벤처가 살길이다'며 각 지역마다 벤처 창업 붐이 일었다. 너도나도 벤처가 아니면 안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시기였다.

오 회장은 "지난 99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은 지부성격인 20여개 소프트웨어지원센터를 전국적으로 만들고 많은 벤처기업들이 이 지역에서 창업하고 입주했다"고 설명했다.

오 회장은 대략 1기당 900여개 업체로 봤을 때 입주기간이 2년이기 때문에 99년부터 2003년까지 모두 1천800개 기업이 전국적으로 창업한 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전국적으로 벤처기업은 급격하게 줄고 있고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며 오 회장은 "과연 이 부분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분개했다. 그는 "벤처를 창업하고 만들기만 했지 정작 어떻게 키울 것인지는 아무도 고민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방 IT업체를 대상으로 마케팅, 회계, 법률 자문은 고사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손길조차 끊긴 마당에 자율경쟁 체제속에서 힘없는 지역IT업체의 갈길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해석이다.

그는 "국가정책에 따라 너도나도 벤처를 창업했다가 지원이 끊기고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실업자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 아니냐"며 "이는 정부의 일관된 정책 실종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춘천, 전주 = 정종오기자 ikokid@inews24.com 부산=강호성기자 chaosi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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