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게임중독법과 '시계태엽 오렌지'


알렉스는 ‘악의 화신’이다. 성폭행과 폭력을 예사로 일삼는다. 길 거리에서 눈에 띈 주정뱅이를 마구 때리는가 하면, 한 은둔 작가의 집에 무단 침입해 부인을 집단 성폭행한다. 그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때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를 부르면서 춤을 춘다. 한 마디로 죄의식이란 전혀 없는 인물이다.

쓰레기 같은 삶을 살던 알렉스는 결국 살인혐의로 체포된다. 그리곤 14년 형을 선고받는다. 교도소에서 답답한 생활을 이어가던 알렉스는 어느 날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정부의 범죄 퇴치 프로그램인 ‘루드비코요법’ 대상자로 지원할 경우 풀어주겠다는 제안. 솔깃해진 알렉스는 곧바로 그 제안을 수용한다.

이 치료를 받은 알렉스는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태어난다. 폭력적인 장면을 보거나, 충동을 느낄 때마다 구토와 함께 심한 고통을 느낀다. 폭력적인 성향 자체가 인위적으로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시계 태엽 장치처럼 기계적인 인간으로 탈바꿈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에 나오는 얘기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선정적인 묘사 때문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더 충격적이다.

큐브릭 감독이 정말 비판하는 건 알렉스의 폭력이 아니다. 루드비코 요법 치료를 받고 난 뒤 무기력한 시계 태엽처럼 거세된 알렉스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과연 알렉스가 폭력적인가? 아니면 그에게서 자율적 판단을 거세해버린 국가가 더 폭력적인가?

케케묵은 영화 얘기를 꺼낸 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게임중독법 때문이다. 이 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게임 중독의 폐해가 크니, 그걸 법으로 치유하자는 것이다. 이 법 도입을 주도하는 사람들 중엔 ‘부모의 심정’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확신에 차 있다.

게임중독법을 둘러싼 논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게임이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논란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체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많은 것 같다. 게임을 많이 하면 폭력성이 커진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연구 결과다. 게임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보다 더 중독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두번째로는 “설사 중독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으로 규제하는 게 과연 타당하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물론 게임중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질문 모두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 같다.

냉정하게 한번 따져보자. 백보 양보해서 게임에 중독성이 있다고 한들, 그걸 법으로 못하게 막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일까? 난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사회에서 법으로 규제해야 될 게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자칫하면 규제에 중독될 수도 있다.

극히 드물게 게임에 중독됐다고 가정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법으로 강제 치료를 하는 게 그다지 효율적인 수단처럼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영하 씨가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이 부분을 잘 지적했다. 김 씨는 이 칼럼에서 자신도 실제로 게임에 중독된 적 있다면서, 그 때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준 것은 가족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었다고 ?어놨다. 그러면서 만약 그 때 자신을 치료센터에 수용해버렸더라면 효과적으로 게임 중독을 이겨내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험은 없지만, 김 씨의 주장에 흔쾌히 동의한다.

여기서 다시 ‘시계 태엽 오렌지’ 얘기로 돌아가보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개인의 폭력보다, 그런 개인을 시계태엽 장치처럼 생각 없는 존재로 만든 국가의 폭력이 더 무섭다는 얘길 하고 있다. 인간에게서 자율적 의지를 빼았는 것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징벌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물론 큐브릭의 질문에 대해 딱 부러진 답을 내놓는 건 쉽지 않다. 처한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이 영화가 묘사하는 폭력의 피해자들을 직접 목격했다면, 혹은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알렉스에게 더 잔혹한 응징을 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게임중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진정성까지 의심하진 않는다.

그렇더라도 그걸 법으로 규제하겠다는 덴 찬성할 수 없다. 인간의 자율적 의지에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충분히 순화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런 규제가 '게임 중독 극복'이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도 그다지 효과적이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칫하면 ‘폭력적 인간’ 알렉스보다 더 무서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게 내가 ‘게임중독법’ 공방을 보면서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떠올린 이유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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