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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엥겔바트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존경하는 더글러스 엥겔바트 선생님.

출근 길에 습관적으로 페이스북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의 부음을 전하는 기사들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죽음 소식 때문에 한 번 놀라고, 선생님께서 아직까지 살아계셨다는 사실 때문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참 무심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 존함을 처음 접한 지도 어언 10년이 흘렀군요. 2002년 무렵이었던가요? 당시 전 기자 노릇하면서 야간엔 서울 시내 모 대학 석사과정에 몸을 담고 있었답니다.

나름대로 거창한 학위 논문 한 편 쓰겠다면서 이런 저런 자료 뒤지다가 우연히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의 존함을 접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조지 란도 선생님이 쓴 '하이퍼텍스트 2.0'이란 책을 통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인연 덕분에 전 나중에 '하이퍼텍스트 3.0'이란 책을 번역까지 하게 됐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전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란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알게 됐습니다. 한국은 절대 인터넷 강국이 아니란 사실을요. 망은 잘 깔아놨지만,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너무 일천하단 걸 깨닫게 된 겁니다.

그리고 한 해 뒤인 2003년 미국 출장을 가게 됐습니다. 그 곳에서 인터넷 저널리즘 연구자들과 대화하면서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그들의 고민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선생님께서 50여 년 전에 했던 고민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의식을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선생님 부음을 접하면서 그 때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하이퍼텍스트란 거대한 야심을 실현시키려는 천재들의 필생을 건 과업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출발은 배너바 부시 선생께서 1945년 쓰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As We May Think)'이란 논문이었지요. 그 논문에서 부시 선생은 "개인들이 자신들이 생산하는 정보와 지식들을 저장하고 빠르게 검색하는 소형 컴퓨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셨지요. 이런 비전을 직접 구현한 것이 그 유명한 '메멕스'였지요.

그 뒤 테오도르 넬슨 선생이 내놓은 '제너두 프로젝트' 역시 전 세계를 거대한 문서우주(Docuverse)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담고 있었지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인터넷의 이론적 바탕은 이미 이 때 다 만들어진 셈입니다. 이 모든 게 1945년부터 1960년에 이르는 시기에 다 이루어졌다는 게 새삼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선생님의 인생을 뒤바꾼 문서가 바로 부시 선생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때 이후로 선생께선 하이퍼텍스트와 컴퓨터 연구에 매진하셨더군요.

엥겔바트 선생님.

선생님께선 1960년대에 이미 '협업'을 고민하신 분이었습니다. 일종의 네트워크 컴퓨터였던 NLS(oN Line System)를 비롯한 선생님의 수 많은 혁신들의 사상적 뿌리를 따지고 들어가면 바로 공유와 협업이란 가치를 만나게 됩니다.

선생께선 '마우스의 아버지'로 통하지요. 실제로 선생의 부음을 전하는 많은 기사들은 전부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하긴, 일반 대중들에겐 '1960년대에 마우스를 만든 분'이란 설명이 제일 와닿을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선생님의 최대 업적은 뭐니뭐니해도 인터넷의 토대를 닦은 부분이지요. 인터넷의 효시로 통하는 알파넷(ARPANET)도 선생님을 통해 제 모습을 갖추게 됐으니까요. 그러니 선생님을 '마우스 창시자'로 묘사하는 건, 어찌보면 코 하나만으로 거대한 코끼리를 묘사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겠지요.

따지고 보면 마우스 역시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인간들의 협업'이란 선생님의 이상을 구현하는 소도구였을 따름입니다. 거대한 망으로 연결된 컴퓨터를 좀 더 잘 작동시킬 수 있는 도구로 고안한 게 바로 마우스였지요.

이번에 알았습니다. 선생님께선 마우스란 명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요.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위한 X-Y 위치지시계'란 공식 명칭(?)으로 부르길 고집하셨더군요. 그걸 보면 선생님께선 천생 학자였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남긴 업적들을 하나 하나 전부 나열하다간 오늘 하루가 다 갈 것 같습니다. 오늘 글에선 그냥 선생께서 그렸던 큰 그림만 소개하는 걸로 끝을 맺으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1960년대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접속하고, 모든 정보를 함께 나누는 멋진 세상을 꿈꿨던 비전가이자 이상가이셨습니다.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겠지요.

인류에게 둘도 없이 멋진 선물을 남겨주고 가신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2000년 클린턴 행정부가 선생께 '국가기술메달'을 수여하면서 시상 이유로 설명한 문구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합니다.

"진공관 디스플레이와 마우스, 하이퍼텍스트 링크, 텍스트 편집, 온라인 잡지, 원격 협업을 포함한 개인 컴퓨팅의 토대를 닦은 분."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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