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속된 표현이긴 합니다만 '알아서 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힘이 약한 측이 힘이 강한 측의 의중을 미리 읽고 그 뜻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한다는 의미죠.
요즘 KT 지분을 놓고 정보통신부와 SK텔레콤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보면서 이 말이 생각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갈등의 기저에는 '일개 사업자인 SK텔레콤이 감히 정통부의 의중을 헤아려 미리 기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했으니 용서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SK텔레콤이 느닷없이(?) KT의 지분을 11.34%나 매입하면서 촉발된 갈등은 양승택 정통부 장관이 지난 25일 "(SK텔레콤이) 조속히 (KT)지분을 처분하지 않을 경우 정부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하겠다"라는 강경발언으로 인해 극에 달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양 장관의 "정부에 대한 정면도전"발언은 곰곰히 생각하면 뭔가 이상합니다. 주무 부처 장관의 발언이니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긴 합니다만 석연치 않게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누군가 정부에 도전을 한다면 국헌을 문란케 하는 중대한 범죄인데 누가 무엇에 도전을 했다는 얘긴지 실체가 아리송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기초로 굳이 도전의 주체와 객체를 따진다면 'KT민영화 과정에서 정통부가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한편으로는 특정 업체에 경영권이 넘어가지 않는 '황금분할'구도를 이루기 위해 노심초사 했는데 이를 잘 아는 SK텔레콤이 역행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도전의 주체는 SK텔레콤인데 도전을 받은 객체는 정통부의 의중이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SK텔레콤도 정통부도 누구하나 위법을 하거나 탈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양장관이 언급한 '도전'을 받은 객체는 '정통부의 의중'이라기 보다는 '정통부의 자존심'이 되는 셈입니다.
그것은 정통부가 SK텔레콤이 KT의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한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즉, SK텔레콤에 의한 KT경영권 장악이 정통부의 말대로 '절대로' 불가능하다면 굳이 SK텔레콤으로 하여금 KT지분을 팔아라고 하는 것이 힘을 받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정통부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겉으로 드러나는 지분의 배분구조도 3~5%씩 나란히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언필칭 '황금분할'의 요체는 특정업체에 경영권이 쏠리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지 겉으로 드러나는 지분 숫자의 크고 작음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정통부가 지금 해야할 일은 '절대로 불가능한'일이 만에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잡도리 하는 일일 것입니다.
설령 '다홍치마'로 만들기 위해 지분 매각을 유도할 의중이 있다손 치더라도 '정면도전'운운하는 식이 아니라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연일 언론의 따가운 지적을 받고 있는 정통부로서는 심기가 편치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까지 했던 지분을 성공적으로, 그것도 '적당한 가격'에 완전매각한 정통부의 업적은 평가받아 마땅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KT민영화는 지분매각이 끝이 아니라 이후 KT가 효율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그로인해 국내 통신산업에 발전을 가져수 있을 때 비로소 '성공'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SK텔레콤이 뒤통수를 쳤든, 알아서 기지 않았든 그같은 장(場)을 만들고 유도한 것이 정통부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오버행 이슈가 SK텔레콤에게 오랜 골칫거리였다면 이번 KT지분 매각 과정에서 이에 대한 예상과 대비책을 세웠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한내 완전 매각'이라는 목표에 스스로 발이 묶여 가능한 여러가지 변수를 고려하지 못해 놓고 이제 와서 '알아서 기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고 어색합니다.
이제라도 정통부는 체면을 생각할 게 아니라 SK가 KT의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하는 울타리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SK텔레콤과 KT간의 합리적인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겁니다.
다만 그 과정은 합리적이어야지 감정적이어서는 안됩니다. SK텔레콤도 주주들로 구성된 주식회사이기 때문입니다.
/백재현기자 bria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