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인류 최대의 손실 '스티브 잡스'


'혁신'의 화신…"당신과 동시대를 살아 행복했습니다"

[원은영기자] 출근 길 시민들이 갑자기 바빠졌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뭔가를 쓰고, 또 읽느라 분주했다. 지난 10월6일 아침 벌어졌던 풍경이다.

그날 오전 8시 무렵. 'IT의 별'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속보로 뜨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찾아 온 한 거인의 죽음. 인터넷은 순식간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로 채워졌다.

올해 IT 세상엔 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어떤 사건도 '잡스의 죽음' 만큼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에 진한 여운과 슬픔을 안겨주진 못했다.

야후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실시한 인기 검색어 톱10 중 첫 번째는 '스티브 잡스 사망'이었다. 국내 네티즌 및 무선인터넷 업계가 뽑은 최고 이슈에도 그의 사망 소식이 올랐다. 그 뿐 아니다. 윌터 아이작슨이 집필한 '스티브 잡스' 전기는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국내 번역서 역시 교보문고가 선정한 '2011년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미국 음반 아카데미는 한 발 더 나갔다. 내년 2월 개최되는 56회 그래미상 시상식 때 잡스에게 특별상을 주겠다고 선언한 것.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그래미상이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에게 마지막 존경의 표시를 보낸 셈이다.

아이뉴스24는 2011년 한 해를 정리하면서 고(故) 스티브 잡스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예년과 달리 그다지 큰 논쟁도 없었다. 올해를 빛낸 수 많은 인물 중 잡스의 무게를 당해낼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던 탓이다.

잡스는 올 한 해 그다지 많은 활동을 하진 않았다. 줄곧 병마와 싸웠다. 하지만 우리는 잡스라는 인물이 주는 무게와 그의 죽음이 몰고 올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했다. 그의 죽음이 남은 자들에게 던진 거대한 메시지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IT 혁신 최전방에서 패러다임 변화 주도

잡스는 남다른 통찰력과 리더십으로 한 때 수렁에서 헤매던 애플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의 손을 거친 제품들은 출시될 때마다 엄청난 '팬덤 현상'을 만들어냈다. 소위 '애플빠'들은 밤잠을 설치며 잡스 교주에게 찬사를 보냈다. 정치, 경제, 사회 영역 통틀어 이만한 파괴력을 보여준 인물은 쉽게 찾기 힘들다.

잡스가 IT 세상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75년이었다. 당시 '또 다른 스티브'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컴퓨터를 공동 설립하면서 '혁신의 첫발'을 내디뎠다.

2년 뒤 선보인 '애플II'는 그 때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개인용 컴퓨터 붐을 일으킨 불쏘시개였다. 애플II는 플라스틱 재질을 채용한 최초의 컴퓨터인데다 고해상도 컬러모니터를 지원했다. 덕분에 이 제품은 순식간에 누적 판매량 500만대를 돌파했다.

하지만 '애플II'가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런 외형적인 성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IBM이 주도하는 대형 컴퓨터 위주 산업 구조를 뒤흔들었다는 점이 더 흥미로웠다. 잡스가 애플II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라는 새로운 혁신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요즘은 상식이나 다름 없는 마우스를 이용한 그래픽사용자환경(GUI) 역시 잡스를 통해 본격 대중화됐다. '조지 오웰'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던 지난 1984년 등장한 매킨토시는 GUI 바람을 몰고 왔다. 컴퓨터 사용 환경에 또 다른 혁신의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이었다.

애플II를 통해 하드웨어 혁신을 주도했던 잡스는 매킨토시로 소프트웨어를 혁신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대 초반 이후는 '잡스의 시대'

잡스의 삶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젊은 시절 그는 흠도 많은 인물이었다. 뭐든 자기 맘대로 하려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내외부에 많은 적을 만들었다.

개인용 컴퓨터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1985년. 그는 자신의 피와 땀이 서린 애플컴퓨터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는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영입한 존 스컬리의 친위 쿠데타로.

불명예스럽게 쫓겨난 잡스는 한 동안 방황을 거듭했다. 컴퓨터 플랫폼 개발회사인 넥스트를 설립하고 '넥스트 큐브'라는 컴퓨터를 출시했지만, 옛 영광을 재현하기엔 턱 없이 모자랐다.

하지만 그의 혁신 정신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빛을 발했다. 바로 애니메이션 사업이었다.

조지 루카스가 운영하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인수한 뒤 그 유명한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등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컴퓨터 사업의 실패를 만회할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잡스의 재기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연이은 신제품 전략 실패로 궁지에 몰린 애플이 잡스에게 손을 내민 것. 결국 잡스는 1996년말 애플에 자문역으로 복귀한 뒤 이듬해인 1997년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했다.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난 지 12년만의 귀환이었다.

1998년 잡스는 구형 플라스틱 모니터에 본체를 일체화한 '아이맥G3'을 내놨다. 대성공이었다. 아이맥으로 '왕의 귀환'을 만방에 알린 잡스는 2000년대 들어 감춰뒀던 혁신 본능을 본격 발휘했다.

2001년 차세대 매킨토시용 OS인 '맥OS X'를 내놓은 것. 안정성과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라는 평가를 받은 이 제품은 애플을 떠나 있던 시절 개발한 넥스트스탭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혁신은 다른 곳에서 시작됐다. 픽사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감각을 익힌 잡스는 이번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디지털 음악 시장에 눈을 돌렸다. 바로 아이팟과 아이튠스 스토어였다.

특히 아이팟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클릭휠'을 이용한 간편한 조작과 맥OS를 연상시키는 미려한 UI를 앞세워 단숨에 전세계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아이팟은 출시 5년 만에 MP3 기기 시장에서 56%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아이팟은 이후 젊은이들의 문화와 패션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아이팟을 아이튠스와 연동시킴으로써 불법 유통이 주를 이루던 디지털 음원 시장 양상 자체를 바꿔 놨다. 애플은 이를 바탕으로 온라인 유료 음원시장을 선점해 나갔다. 미국 음반 아카데미는 애플의 이런 공로를 높이 평가해 2002년 그래미상 기술부문 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당신과 동시대를 산 건 우리의 최대 행운"

잡스는 2007년엔 모든 사람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휴대폰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멀티터치 기반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출시한 것. 애플은 음원 및 동영상 콘텐츠 시장에 머물러 있던 유료 콘텐츠 시장 장악력을 앱스토어의 개설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까지 확장했다.

아이폰은 '고정형' PC에 머물러 있던 이용자의 생활 패턴을 바꿔놨다. 소비자들은 아이폰으로 인터넷에 수시로 접속하며 앱스토어에 구비된 방대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모바일 라이프'를 만끽하게 됐다. 또 통신사가 중심이 됐던 이동통신시장의 패러다임을 순식간에 뒤흔들어 버렸다.

'애플II'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던 잡스는 아이폰으로 모바일이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영원한 갈라파고스'로 머물 것 같았던 한국 통신 시장에도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후 잡스의 혁신은 '스크린 전쟁'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해 4월 선보인 아이패드였다. 처음 소개할 때만 해도 비관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던 아이패드는 순식간에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읽기 문화를 만들어냈다. 태블릿이란 생소한 단어를 일상 용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잡스는 올해 초 아이패드2 발표 자리를 끝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8월엔 팀쿡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고 애플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 때부터 이미 잡스의 육체는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애플 CEO에서 물러난 지 2개월이 채 안 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3년 전 빌 게이츠가 자선 사업가로 변신한 데 이어 스티브 잡스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IT 업계는 두 개의 큰 별을 잃었다. 거대한 별들이 끊임 없이 명멸하는 IT 시장에서 스티브 잡스처럼 오래도록 빛을 발한 별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애도를 보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죽음은 삶의 최고 발명품'이라는 말처럼 잡스는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그의 말은 남아 있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진하게 배어 있다.

"땡큐 스티브, 굿바이 잡스! 당신과 동시대를 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원은영기자 grac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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