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과 뒤]美 '폭력게임 규제는 위헌' 판결 의미는?


[김익현기자] 미국 대법원이 27일(현지 시간) 의미있는 판결을 내놨습니다. 미성년자들에게 폭력 비디오게임을 팔지 못하도록 한 캘리포니아주의 법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이날 대법원은 7대 2로 캘리포니아주의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정도면 일방적인 판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 요지는 한 마디로 "비디오 게임도 여러 가지 문학적 장치를 통해 생각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점에선 책이나 영화, 연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적용을 받아야만 한다는 겁니다.

이번 판결 결과는 굉장히 전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헌 판결 논지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판결문 원문은 대법원 사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수정헌법 1조 위반 여부가 핵심

우선 대법원 위헌 판결의 기초가 된 수정헌법 1조부터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Congress shall make no law…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우리 말로 옮기면 "의회는 표현이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 정도가 될 겁니다.

1조는 미국 수정헌법의 정신을 포괄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조항입니다. 인간 존엄성의 기초라고 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여지를 잘라내 버린 것이니까요.

음란물을 비롯한 각종 소송에서 논거가 되는 중요한 조항이 바로 수정헌법 1조입니다. 이를테면, 포르노 사업자들도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느냐, 는 게 판결의 토대가 되는 겁니다.

그럼 이번 판결 얘기를 해 볼까요? 아, 그에 앞서 캘리포니아 주 법률부터 살펴보는 게 순서겠네요.

문제의 법안은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인 르랜드 이(Leland Yee) 의원 발의로 6년 전인 2005년 발효됐습니다. 골자는 18세 이하 미성년자들에게 폭력 비디오 게임을 판매 또는 대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이 법을 위반한 사업자에게는 1천 달러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그럼 이 법은 '폭력 비디오 게임'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요?

이 법은 "명백하게 공격적"인 방법으로 미성년자들의 "비정성적이거나, 불건전한"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사람처럼 생긴 것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드는 것, 혹은 팔 다리를 절단하거나 성적인 공격을 가하는 행위가 포함된" 게임을 폭력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법률의 이 규정은 1968년 '긴스버그 대 뉴욕' 사건 판례를 참조했다고 합니다. 당시 법원이 음란물 유포 때 위 규정과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지 않도록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판결에선 바로 이 부분이 핵심 이슈가 됐습니다. 음란물 규제에 사용됐던 규정을 폭력 비디오 게임에도 적용할 수 있냐는 겁니다. 즉, 폭력 비디오물도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란 우산 속에 들어갈 수 있냐는 겁니다.

◆"비디오 게임도 책-영화와 다를 것 없다"

캘리포니아 주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비디오 게임은 다른 장르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비디오 게임의 상호작용적인 부분을 부각시켰습니다.

어린이들이 게임 콘트롤러를 들고 버튼을 거듭 눌러서 인간 캐릭터를 죽이는 것은 책에서 살인 장면을 읽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비디오 게임 역시 사상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점에 있어선 다른 장르와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다수 의견 판결문을 집필한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또 캘리포니아 법률의 전범이 됐던 '긴스버그 사건'과 폭력 비디오는 연관성이 크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CNN은 게임을 예술의 일종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스칼리아 대법관은 판결 취지를 설명하는 글에서 "책이나 연극, 영화처럼 비디오 게임 역시 등장인물이나 대화, 플롯 같은 친숙한 문학적 장치를 통해 생각이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면서 "그것만으로도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특히 "미국에는 폭력적인 묘사에 대해 미성년자의 접근을 제한하는 전통이 없다"면서 캘리포니아 주의 주장을 일축했습니다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게임=폭력의 온상'이란 단편적인 담론 보다는 훨씬 많이 진전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칼리아 대법관의 이어지는 설명은 다소 의아합니다. "이솝우화, 그림동화 등 다른 작품들에도 폭력적인 내용이 많다"면서 비디오 게임이 특별할 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토리가 있는 한 폭력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상호작용적 성격 고려 부족'은 아쉬워

이번 위헌 판결은 7대 2로 압도적으로 결정됐습니다. 하지만 위헌 판결문을 적는 과정에선 다소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7명의 대법관 중 5명만 서명을 했습니다.

찬성한 대법관들 중 일부는 "캘리포니아 주 법률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폭력 비디오물을 규제하는 자체 보다는, 법률적인 규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부분만 수정하면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위헌 판결에 찬성한 사무엘 앨리토 대법관입니다.

외신들에 따르면 앨리토 대법관은 "(캘리포니아 법률의) 언어가 정확한 판결을 내리기엔 지나치게 모호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런 논거를 토대로 "폭력 비디오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규정한 새로운 법률이 나온다면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는 어머니와 딸을 성폭행하는 등의 게임들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앨리토 대법관은 또 위헌 판결의 이유를 적시한 인용문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비디오 게임과 다른 매체 간의 차이를 너무 간단하게 도외시해버렸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론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폭력 비디오 게임= 폭력 양산'이란 단편적인 시각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은 상호작용적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따라서 그 부분에 대한 고려는 어떤 형식으로든 필요할 겁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문은 "플레이어가 직접 참여하는 상호작용이 특수한 문제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해버렸습니다.

이 부분이 아쉽다는 겁니다. 미국 대법원이 '상호작용적인 부분'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성찰했더라면 훨씬 설득력있는 판례가 되지 않았을까, 란 생각 때문입니다.

상호작용적인 부분을 고려하면서도 폭력 비디오 게임에 대한 일방적인 규제를 제어할 방법은 없었던 것일까요?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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