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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공인인증서, 法 이전의 문제다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오지에 사는 5명을 위해 텔레비전 송신탑을 설치해야만 할까?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의 통행 편의를 위해 거액을 들여서 길을 뚫는 것은? 그도 아니면 낙도 사람들을 위해 전화망을 개통하는 것은?

"웬 생뚱맞은 보편적 서비스?"라는 질문을 던질 지도 모르겠다. 오늘 대법원의 웹 표준화 관련 판결 소식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보편적 서비스'를 떠올리게 됐다.

그 얘기부터 해보자. 대법원은 9일 "액티스X 기반이 아닌 다른 웹브라우저용으로도 공인인증서를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고려대 김기창 교수 등이 금융결제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재판부는 "어떤 웹브라우저 환경에 최적화된 가입자 설비를 제공할지는 금융결제원 및 금융기관 등 등록대행기관 스스로의 사업적 판단에 맡겨둘 수밖에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웹 표준화 관련 소송은 결국 '원고 패소'로 막을 내렸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판결을 한 대법원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게 비판의 골자였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엔 대법원은 당연히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대법원은 사실 관계를 다투는 곳이 아니라, 법 적용의 적합성 문제만 판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중산층 이상 고급 옷만 만드는 업체에 대해 "너 서민들 옷도 만들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기자가 정말 답답한 것은 '웹 표준' 문제가 법적인 공방으로까지 가야만 했던 현실이다. 주지하다시피 공인인증서가 없으면, 대형 전자상거래는 아예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각종 금융거래가 인터넷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공인인증서 역시 '보편적 서비스' 논리가 적용돼야 마땅하다.

물론 금융결제원은 국가기관은 아니다. 은행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설립한 기관이다. 국가기관처럼 엄격하게 감시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하고 있는 업무는 공공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어떤 서비스의 타당성 여부를 결정할 때 경제적인 잣대 만 들이대어서는 안되는 기관이다.

대법원이 판결 이유에서 밝힌 것처럼 "수많은 운영체제와 웹브라우저에 호환되는 가입자 설비를 제작, 운영,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웹 표준을 거부할 명분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어쨌든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금결원의 공인인증서 정책은 '법적인 면죄부'를 받게 됐다. 금결원 역시 오랜 법적 공방에서 승리한 기쁨을 나누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기자는 '익스플로러 전용 공인인증서'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을 타박할 생각이 없다. 그들은 법적으로는 최선의 판결을 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결원에는 정말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싶다. 승소한 기쁨을 누리기 보다는, 인터넷 세상에서 브라우저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 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중소 브라우저 사용을 막는 것이 오지에 전화나 전기 서비스를 뚫어주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그게 공공 서비스를 담당하는 기관이 깊이 성찰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는가?

(덧글: 최근 국내 대표적인 오픈마켓인 지마켓은 거액을 들여 크롬이나 파이어폭스 같은 다른 브라우저로도 전자상거래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지마켓은 정작 결제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고 한다. 금결원의 공인인증서 정책 때문이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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