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격돌로 정쟁과 폭력으로 점철된 12월 임시국회가 드디어 8일 막을 내렸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국가보훈법과 에너지기본법, 중소기업기술혁신촉진법 등 56건의 법안과 재외동포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재외동포법 개정을 논의할 정치개혁특위 구성 안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휴전촉구결의안 채택의 건 등을 총 58건을 처리했다.
국회는 내일(9일)부터 곧바로 1월 임시국회를 소집하고,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예고한 85건 법안 중 여야가 논의키로 합의한 58개의 비쟁점법안에 대한 심사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로써 우여곡절 끝에 12월 임시국회가 폐회됐지만 국회, 여야간 상처 뿐 아니라 국가적 오명만을 남겼다. 여야 대치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 기본원칙인 대화와 타협은 실종됐고, 다수결의 원칙이 철저히 부정당했으며 폭력국회로 점철되면서 '민주주의 최대 위기'라고 평가되고 있다.
지난해 10일 시작된 임시국회는 같은달 13일 여당의 예산안 강행 처리를 시작으로 회기 내내 대립과 반목을 거듭했고, 급기야 국회는 점거와 폭력 등으로 얼룩졌다.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여당은 민주당 등 야당의 강력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8일 한미FTA비준동의안을 단독으로 상임위에 상정하면서 여야간 극단대치의 도화선이 됐다. 여당의 단독 상정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하는 등 국회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즉각 행안위와 문방위, 정무위 등의 점거농성에 돌입했고, 같은달 26일에는 본회의장도 진입해 점거 농성을 이어갔다. 여야 원내대표단은 줄기차게 협상을 벌였지만 '할 듯 말 듯 하다' 끝내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기축년 새해를 맞이했다. 여야가 서로의 틀 속에 갇혀 대화와 타협은 봉쇄당했다.
파국의 코앞에서 여야 대표 회담이 성사되면서 여야는 또다시 대화의 물꼬를 텃지만 이마저도 무위로 그쳤고, 결국 지난 3일 김형오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국회에서는 대규모 충돌과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파국이냐, 국회정상화냐'라는 살얼음판을 지나 이날로 임시국회가 마무리 됐지만 여야가 합의문을 작성한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벌써부터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는 등 정치권의 안팎의 시선은 이미 2월 임시국회로 쏠려 있다.
여야간 쟁점법안 대부분이 2월 임시국회로 넘겨져 사실상 '2차 입법전쟁'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극적 타협한 합의문은 시한부 휴전 협정문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미 쟁점법안이 상정될 각 상임위에서는 날선 공방이 오가고 있고, 여야는 쟁점법안에 대한 처리·저지의 당위성을 국민에 홍보하기 위한 홍보전에 시동을 거는 등 2월 국회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때문에 치열하게 맞붙을 '2차 입법전쟁'에서도 또다시 국회 점거 농성과 폭력사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이에 김형오 국회의장은 국회 폭력사태를 엄단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김 의장은 이날 본회의 법안 상정에 앞서 "다른 어떤 것과는 타협할 수 있어도 폭력에 대해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며 폭력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안 구체적으로 마련하라고 여야에 요구, 의지를 확인했다.
국회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폭력사태를 방지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야를 막론하고 형성되고 있지만 각기 셈법이 달라 오히려 쟁점법안 외에 여야간 격돌의 불씨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당장 한나라당에서는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국회의원에게 의원 신분을 박탈토록 하는 국회법 개정을 손질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국회의원 외에 보좌관, 당직자 등이 점거 및 소동을 벌일 경우 제제와 처벌의 수위를 한층 높이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야당 당직자와 보좌진 등의 국회 본회의장과 로텐더홀 점거농성에 한나라당 뿐 아니라 국회 사무처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만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이는 쟁점법안 처리를 용이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나라당이 국회 폭력 근절 대책을 제시하자 민주당은 미국식 필리버스터(장시간 연설 등으로 합법적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제도)라는 입법전쟁 재발을 예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국회에서 의회의 표결을 막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것이다.
또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과 경호권 발동의 요건도 매우 엄격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이는 야당으로선 점거농성이 더욱 용이한 방향의 제도개선을 촉구한 것이다.
이처럼 여야는 각기 자신들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국회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어서 이로인한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날 김 의장이 국회 본회의 폐회를 선언하는 의사봉은 결국 여야간 '2차 입법전쟁'을 알리는 선전포고와 다름 아니다. 이로써 국회는 쟁점법안이란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오는 2월 임시국회로 돌진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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