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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 KT 사추위에 자율권 있나?


KT가 새 사장 선임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정관을 바꿀 모양이다. 하지만 모양새가 좋다고 할 수만 없을 것 같다. 순리와 거리가 있는 듯하다. 논란 끝에 내린 결정 치고는 그 배경이 순수하다고만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고두고 군말이 생길 가능성이 많다. 3만6천여 임직원이 공감할 지도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향후 새로운 논란의 불씨일 수 있다.

논란이 된 정관 조항을 요약하면 ‘최근 2년간 경쟁회사에 적을 둔 사람은 KT의 이사(사장 포함)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순수한 목적으로 굳이 따지자면, 이 조항은 일장일단이 있어 보인다. 철저한 규제산업인 통신 사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경쟁사로부터 회사 기밀을 유지하고 내부 직원에 승진 기회를 줘 근로의욕을 북돋는다는 게 장점이겠다. 이 반면에 개방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인재 발탁에 너무 폐쇄적인 조항일 수도 있다는 것은 단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장단점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변수가 많기 때문에 장점이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거꾸로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누구나 장단점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답이라고 논증하고 실제 상황에서 현실로 입증해보이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KT 측은, 정확히 말하면 KT 사장추천위원회 측은, 판단을 내렸다. 이 조항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문제라고 본 듯하다. 그러니까 긴급하게 정관을 바꿔 새 정관을 기준으로 사장 후보를 추천하기로 했을 것이다. 사안의 본질이, 위에서 말한 대로,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그 결과의 좋고 나쁨을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바에야 사추위의 결정을 놓고 외부에서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다만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결정을 한 시점과 배경이다.

비유를 해보자. 국회의원 선거를 한다고 치자. 그때 지역구 크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후보 사이의 유불리가 달라진다고 하자. 그래서 정치적 논란이 된다. 그렇지만 그 논란은 선거를 시작하기 전이거나 선거가 끝난 뒤에 하는 게 마땅하다. 이미 선거절차에 들어갔다면 그 논란은 백해무익이고 더구나 기준을 중간에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 그랬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민주적인 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날 수가 없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을 뽑기 위해서는 시험을 치기 전에 전형을 먼저 발표한다. 시험을 치는 중에 전형을 바꿀 수는 없다.

사추위의 결정은, 속으로 아주 깊은 뜻이 있고 반드시 그래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선거 도중에 선거법을 바꾸고 대입 시험 중에 전형을 바꾼 것과 같다. 그건 상황과 상대를 배려할 줄 전혀 모르는 철없는 아이들이나 하는 일이다. 어렸을 때 그런 경험이 다 있었을 것이다. 실컷 내기를 해놓고서 지고나면 룰이 잘못됐다며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억지 부리는 막무가내들. 또 한참 게임을 하는 중에 불리할 것 같으면 판을 깨고 엎어버리는 상종하기 힘든 악동들.

‘악동’ 같은 결정에 앞서 사추위에 흠이 없었던 건 아니다. 공모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정관 조항 때문에 벌어질 논란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건 중대할 수는 있을지언정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충분히 인간적인 실수다. 그러나 인간적인 실수더라도 그게 상당히 치명적인 것이라면, 그래서 룰을 바꿀 정도로 심각하다면, 사추위는 정관을 바꿀 게 아니라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먼저다. 그게 순리다.

게다가 사추위 위원들이라고 해서 그런 '악동 같은' 결정이 이치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KT가 간단한 기업이 아닌 만큼 설마 그 정도로 사리 판단이 안되는 분들을 사장추천위원으로 모셨을 리 없다. KT의 '정관 사태’를 보면서 진실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까닭은 바른 이치는 그저 말일 뿐이고 중요한 건 힘이라는 현실을 다시 목도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치가 아닌 줄 알면서도 그렇게 선택하는 이유가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사추위는 그저 ‘허수아비’일 뿐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또 기왕의 배경 때문이다. 남중수 전 사장이 수사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얼마 뒤 실제 구속되는 과정에서, 정치 개입설이 끊이지 않았다. 차기 사장은 이미 내정됐다는 소리도 많았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마당에서 사추위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일전에 KT 사장 공모 발표 즈음에 ‘KT 사장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이 코너를 통해 사추위에 공개편지를 쓸까 하다가 관둔 것도 그 때문이다. 뜻인즉 소중하고 가상하겠으나 결국 마이동풍 아니었겠는가.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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