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삶을 경험합니다."
나종규님(70세)은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한다. 새로 도착한 이메일이 있는지 확인한 후 3년 넘게 운영해온 카페에 들어가 밤새 새로운 글이 올라왔는지 게시판을 살펴본다.
이후 아침식사를 하고 아내와 함께 집 근처의 서오능에 가 1시간 가량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 좀 쉬었다가 점심식사 후 본격적으로 컴퓨터 작업에 들어간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PC 작업은 저녁식사 후에도 계속되며 하루 최소한 5~6시간을 컴퓨터 및 인터넷 작업에 몰두한다.
그나마 건강을 염려하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최근에는 작업시간을 많이 줄인 것이지만 내심 만족스럽지 않다. 뭔가 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상 자정이 넘었다고 작업을 중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정이 가까워지면 늘 아내와 신경전을 벌인다.
나종규님은 과거 30여년간 농협에서 근무했고 그 가운데 15년을 지점장으로 근무하다가 1992년에 퇴직했다. 퇴직 후 잠시 주식거래에 손을 대보았지만 별 재미를 못보았다. 다만 데이트레이딩을 하는 과정에서 컴퓨터에 흥미를 느껴 50대 중반에 거주지역 구청의 정규교육 과정에 등록해 처음으로 컴퓨터교육을 받았다. 이후 동네 근처의 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무료 교육과정을 들으며 컴퓨터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세계는 마치 샘물과도 같아요. 아무리 들이파도 새로운 것이 나오고 그걸 배워 뭔가를 만들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재미도 쏠쏠하죠."
'북둑굴'(http://cafe.daum.net/jknah0)이란 이름의 카페를 다음에 개설한 것은 2003년 7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나 좋은 글, 음악, 사진 등을 편집해 감상용 편집물을 만들어 PC에 저장해놓고 보다가,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후배를 보고 힌트를 얻어 여러 개인작업물을 남들과 공유해도 좋겠다고 생각해 카페를 개설한 것.
'북둑굴'은 나종규님의 고향인 전남 나주의 '북두고을'을 현지 발음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고향처럼 편안한 이미지의 카페를 생각해 빌어쓴 것이다. 칠순이 지난 그에게 고향은 여전히 추억과 그리움이 남아있는 공간이다.
그 이미지를 반영해 카페는 기본게시판 외에 시/시조/좋은글, 클래식/가곡/팝송, 그림/사진, 유머/생활정보, 컴공부방 등 부담없이 마음의 양식을 살찌울 수 있는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다. 카페의 분위기와 콘텐츠가 입소문을 타 회원이 최근 3천100명을 넘어섰다. 가입조건은 따로 없지만 청소년의 경우는 읽기만 가능한 준회원 자격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 카페는 작년 봄 폐쇄의 위기를 맞았었다. 저작권 관련 협회에서 각종 전문사이트의 무료 콘텐츠와 포털사이트의 동호회 및 개인홈페이지 등의 콘텐츠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조치를 취하면서 '북둑굴'과 같은 非상업적 동호회들도 된서리를 맞게 된 것.
당시 카페게시판에 폐쇄 공지까지 올렸었지만 회원들의 만류로 문제가 될만한 콘텐츠를 자진 삭제하고 카페 등록물에 대한 자체심의 강화, 회원에 대한 준법운영 협조요청 공지 등의 조치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저작권법 위반은 친고죄에 해당되어, 포털사이트내 동호회의 경우 저작권 보유자나 대행업체가 직접 동호회 내 저작권 위배 사실을 확인하고 포털 측에 신고하면 포털 운영진에서 사실을 확인하고 게시자에게 자진삭제를 요청하며 불응시 해당 콘텐츠를 강제 삭제하고 있다. 물론 포털 측의 조치는 저작권 보유자 측의 형사소송이나 손해배상과는 별개이다.
'북둑굴'이 당시 저작권 보유자 측으로부터 저작권 위배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아니었지만 나종규님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그저 편안한 분위기를 찾아오는 친목 차원의 회원들에게 좋은 글과 음악, 사진 등을 편집해 작업한 결과물을 非상업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할 따름이다.
저작물의 상업적 도용에 부심하는 저작권자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자신과 같은 순수한 의도의 경우엔 좀 달리 적용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공원출입이나 버스/지하철 탑승의 경우에도 경로우대를 받는데...아무튼 작년 봄의 '사건' 이후 자신이든 카페회원이든 게시물을 올리기가 보통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나종규님은 '아내도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이용해보면 내가 왜 그리 몰두하는지 이해해 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내의 압력으로 최근 컴퓨터 작업량이 거의 1/2로 줄어들어 카페관리도 예전같지 않다. 운영자를 지정하기는 했지만 카페지기인 자신의 활동량이 여전히 많다. 카페관리에 투입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회원들의 방문수나 게시물수도 함께 줄어드는 듯해 요즈음은 마음이 편치 않다.
아내인 오영자님(65세)의 입장은 또 다르다. 아들딸 다 키워 내보내고 남편이 퇴직하면 둘이 오손도손 지낼 줄 알았더니 남편이 컴퓨터에 빠져들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잠자고 먹는 시간 외엔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남편이 밉기도 하고 저렇다 쓰러지지 하는 염려 때문에 요즘 함께 사는 막내딸과 함께 PC 단속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정작 컴퓨터를 배울 생각이 없다. 평생 집안 대소사를 챙겨오느라 머리 아팠는데 그 복잡한 컴퓨터를 배운다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
기자가 찾아간 날 마침 나종규님의 PC는 A/S센터에 실려갔다 왔다. 구형 컴퓨터에 무거운 프로그램을 깔고 워낙 많은 자료를 저장해 사용하다 보니 컴퓨터가 자주 멎기 때문이다. 컴퓨터 가격이 많이 낮아져 신형 PC로 바꿀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건 컴퓨터 작업을 더 많이 열심히 하겠다는 것으로 아내에게 비춰질까봐 눈치가 보인다. 건강이 최고라고 컴퓨터 작업시간을 줄이기로 한 아내와의 약속에 어긋나는 듯해 그냥 지금의 PC를 쓰기로 했다.
나종규님에게 요즘 일주일에 한번씩 친구들과 만나 배우는 포토샵은 너무너무 재미있다. 포토샵으로 여러가지 작품을 만들어 카페 회원들과 함께 즐길 생각을 하면 벌써 신이 난다.
이제 아내와 함께 하는 운동시간도 늘려 가정과의 조화도 꾀하고 회원들과 공유하는 삶을 꾸며가는 요즈음의 생활이 그에겐 정말 행복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있어 그에겐 '제2의 인생'이 향기롭고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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