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 따뜻한 디지털세상] 노인 커뮤니티 디카 고수들, 전시회까지 열어

 


'어르신들의 행복한 시간'들이 마침내 '작품'으로 탄생했다.

사실상 국내 유일 노인인터넷모임인 '은빛둥지(원장 라영수)'가 10일 경기도 안산 올림픽 기념관 3층에서 어르신들이 직접 찍은 디지털카메라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 3월부터 일주일에 세 번 경기도 안산에 있는 '은빛둥지'에서 디카 사진 찍는 법과 포토샵을 배워온 어르신들이 교육 8개월 만에 맺은 결실이다.

40여 명의 사진 동호회 어르신들이 각자 한 점에서 네 점씩 출품한 사진작품 100개가 전시됐다.

열 여덟 번 정도 야외 출사를 마친 회원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사진 서너 개를 내놓으면 실습 선생님인 선암 김형지 할아버지와 한국사진가협회 소속 권동규 할아버지가 벽에 걸 만한 것들을 추려내 액자에 담았다. 전문가가 고른 만큼 수준급의 사진만 모였다.

"8개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디카 교육을 해왔다는 게 뿌듯합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도 뭔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라영수(66) '은빛둥지' 원장은 "서울, 부산에서도 사진을 전시할 예정이고 내년에는 중국 에서도 전시회를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 어르신들의 작품들은 한 점 당 10만원에 판매된다. 판매 수익금은 '은빛둥지'가 진행하는 '1천명 영정사진 찍기' 자원활동에 쓰인다.

라 원장은 "현재까지 경기자원봉사센터에서 액자 300개를 후원해줘 300명 영정사진을 찍었다"며 "디카 기술을 익힌 어르신들이 자원활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3시 30분 전시회 개막식에는 박주원 안산시장, 이정태 안산문화원장 등이 참석해 축사를 했고 '은빛둥지' 전통 춤 동호회 '우리 춤패' 할머니들이 축하공연을 하기도 했다.

◆ 디카 사진가 어르신들,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전시회를 시작하기 앞서 '은빛둥지' 어르신들이 '화이팅' 대신 외친 말에는 스스로 디카를 배우고 자비를 털어 전시회까지 열었다는 자부심이 베어 나왔다.

엄연한 '디카 사진가'인 어르신들은 너도 나도 디카를 들고 전시회 풍경을 촬영하셨다.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지역인사들이 축사를 할 때마다 앞에 몰려나가 사진을 찍으시는 모습이 '기자단'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디카로 전시회 이모저모를 찍으시던 임항재(78)할아버지는 "8개월 동안 사진 배우면서 너무 재밌었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서 사진을 많이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님이 사진 배우시면서 우리 아이들 사진을 매일 찍으셨어요. A4용지에 출력해서 만든 앨범이 열 권이 넘어요."

이은주(36)씨는 시아버지인 임호순(62) 할아버지 사진 앞에서 뿌듯함을 드러냈다. 고성 앞바다에서 찍은 일출 사진을 출품한 임 할아버지는 부인 남옥산(63) 할머니와 며느리에게 사진을 설명하느라 바쁘시다.

지난 4월 국립 현충원에서 찍은 수양버들, 백담사, 일산 호수공원 등의 모습이 전시장 곳곳에 걸려있었다. 어르신들은 가족, 친구, 동료들과 자신이 찍은 사진 앞에서 한참동안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은빛둥지 동호회장 변영희(82) 할머니의 딸 박성림(45)씨는 "어머니께서 은빛둥지에서 컴퓨터만 배우시는 게 아니라 다양한 문화활동도 많이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컴퓨터든 춤이든 꾸준히 하시니까 점점 젊어지시고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네는 구세대, 나는 신세대 ... 허허"

"이 친구도 이제 여가활동 좀 해야 돼. 안그러면 구세대 된다니까."

이날 전시회장을 찾은 조영한(66) 할아버지는 친구인 라 원장에게 '구세대' 소리를 들었다. 별다른 여가활동을 하지 않아서다. 라 원장은 "이제 나랑 같이 재밌는 것도 배우고 살자"며 조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서울에 사시는 조 할아버지는 "농사일도 조금 하고 그렇게 지내지뭐"하며 멋쩍게 웃으시다 라 원장에게 "지금 교육실도 구경할 수 있냐"고 물으신다. 친구의 '젊음'을 부러워하시는 눈치였다.

부인 박춘지(66) 할머니 작품을 보러온 김연식(66) 할아버지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면 부인과 함께 컴퓨터도 배우고 디카도 배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8개월 동안 디카에 황혼의 일상을 담아온 어르신들이 전시회와 자원활동을 통해 뿜어내는 '은빛젊음'은 어느새 주변으로 퍼지고 있었다.

김연주기자 tot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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