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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독서] '죽음'의 서늘함을 대하는 저자의 유쾌한 저항|슬픔의 방문


아이뉴스24가 신간 안내 소개를 다시 시작합니다. 서점을 달구고 있는 베스트셀러에서부터 지적 자양분을 듬뿍 줄 책들까지 두루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아이뉴스24 원성윤 기자] "아버지는 자살했다"

강렬한 첫 문장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자는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게 용기를 가졌을까. 기자가 만난 장일호 기자는 유쾌한 사람이었기에 이런 '슬픔의 방문'을 담담하고 때로는 격정적으로 서술할지 가늠하질 못했다. 책 '슬픔의 방문'은 장일호 시사IN 기자의 자전적 에세이다.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청산가리를 구해 스스로 세상을 등진 아버지의 진실을 뒤늦게 알게된다. 저자는 배신감을 토로하는 대신 "멋진 글 대신 멋진 나를 남겼으니까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 버린 건 아닐까"라고 정리한다.

슬픔의 방문 [사진=낮은 산]
슬픔의 방문 [사진=낮은 산]

책을 시종일관 관통하는 주제는 '죽음'이다. "선배는 술, 담배, 커피, 고기 중에 하나를 끊어야 한다면 뭘 끊을거야"라는 물음에 그는 "목숨"이라고 답한다. 자신이 취향을 바꾸면서까지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단호한 결심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를 저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부터 기자로 살아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슬픔들을 구체적인 언어로 서술하고 있다. 지하 방에 차오르던 장맛비의 모습으로, 어느 날은 중환자실에 누운 할머니 발의 버석거리는 촉감으로 묘사하는 그의 언어는 담담하기도 해 슬프기도 하다.

◆ 그에게 삶의 의지를 보여준 '페미니즘'

동시에 그는 '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살 유가족', '성폭력 피해자' , '암 환자' 같이 생을 포기할 만한 순간들이 찾아오고 울부짖기도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구원의 단어를 찾고 이를 통해 위기의 순간들을 극복해 나간다. 저자가 뒤늦게 진학한 대학에서 만난 '페미니즘'은 복음이었다고 술회한다.

"별생각 없이 신청한 페미니즘 교양 수업 하나가 삶의 지축을 바닥부터 흔들었다. 교수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 보고 나온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교수는 과거 부천 성고문 사건 속 '권양;이었다. 내 눈앞에 권인숙 교수가 되어 강단에 서 있었다. 자신의 삶이 빠뜨린 함정에서 걸어나와 마침내 살아남은 사람. (중략) 나는 페미니즘 덕분에 삶에서 아주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 페미니즘은 내게 입이 되어 주고, 목소리가 되어주었다." (p.91)

저자는 "생존자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을 때 몇 번이고 발음하고 입안에 굴러봤다"며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라 감격스러웠다"고 말한다. '슬픔의 방문'은 이처럼 저자가 시대를 부유하는 키워드로부터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녹여내면서 슬픔 자체를 직시하며 느낀 단상들을 덤덤하게 표현해낸다. "상처받는 마음을 돌보는 슬픔의 상상력에 기대어 나의 마음에 타인의 자리를 만들곤 했다.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기꺼이 슬픔과 나란히 앉는다." 굳센 생존자 장일호 기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원성윤 기자(better2017@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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