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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K-반도체 지원, 1초가 아깝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평택캠퍼스 방문 당시 사인한 3나노 웨이퍼. 웨이퍼 왼쪽은 윤석열 대통령 사인이고 오른쪽은 바이든 대통령 사인이다. [사진=삼성전자]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평택캠퍼스 방문 당시 사인한 3나노 웨이퍼. 웨이퍼 왼쪽은 윤석열 대통령 사인이고 오른쪽은 바이든 대통령 사인이다. [사진=삼성전자]

지난 2021년 12월 25일(현지시간) 낮 12시 20분쯤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이 아리안 5호 로켓에 실려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 유럽우주국(ESA) 기지에서 발사됐다. 열대우림 위로 치솟은 로켓은 1분 만에 구름 속으로 사라졌고 27분 간 비행한 JWST는 고도 1천400㎞에서 로켓 상단으로부터 분리됐다. 138억년 전 '빅뱅'(대폭발을 시작으로 우주가 팽창했다는 이론) 이후 우주 최초의 별과 은하를 관측하는 것이 주요 임무이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가 급격히 팽창했다는 인플레이션(급팽창) 이론의 시간 속도는 가히 초현실적이다. 1초 보다 더 짧은 시간에 우주가 급팽창하는 이론이다. 대폭발 직후 어마어마하게 초단시간에 우주가 지수함수적으로 급팽창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이론은 대폭발 후 '10의 36승분의 1초'께 시작돼 '10의 33승분의 1초' 내지는 '10의 32승분의 1'초라는 찰나(刹那)의 순간에 우주가 생성됐다는 학설이다. 재깍재깍 초침의 한번 움직임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1초의 무게가 이러한데 위기 상황의 K-반도체를 지원할 법안은 표류하고 있다. 국책사업인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세월아 네월아하며 수년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이 보다 훨씬 뒤에 시작된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프로젝트는 올해 팹(공장) 완공을 마무리하고 내년 하반기에는 본격 가동이 예고되고 있다.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이 계획 발표부터 착공까지 불과 약 4개월이 걸렸지만 120조원 규모의 국책사업인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4년의 시간이 흐른 현시점까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1억 2천6백만 초의 시간이 낭비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모든 게 다 발목잡기다. 산업단지계획심의뿐 아니라 환경영향평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협의는 시작에 불과하다. 지방자치단체와의 갈등, 지역주민과의 갈등 등 소위 '규제 전봇대', '손톱 밑 가시'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글로벌 경쟁 기업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것과 달리 국내 반도체기업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플레이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실이다.

올해 초 정부에서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8%에서 15%,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지만 정부가 내세운 2월 개정안 통과 목표는 묘연하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법인세 유효세율 부담이 TSMC 10.0%, 인텔 8.5%, SMIC 3.5% 등과 견줘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인데 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K-반도체를 위협하는 대만 정부는 더 노골적으로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11월 자국 기술 기업들의 R&D 비용에 관한 세액공제율을 기존 15%에서 25%로 대폭 올리는 법안을 발의했고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이달 7일 속전속결로 통과시켰다. 지난 연말 TSMC가 대만 남부의 타이난 과학단지 내 18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에서 3나노(nm·10억분의 1m) 반도체 칩 양산에 들어간 데 이어 2나노, 1나노 공정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는 독주(獨走)를 시작한 것도 대만 정부의 힘이 컸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 갈등도 지원 경쟁으로 더 노골화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만든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법)에 서명했다. 반도체법은 미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2천800억달러(366조원)를 투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지원과 연구 등 반도체 산업에 520억달러(72조4천억원)를 지원하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는 25%의 세액 공제를 적용해준다.

중국 정부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203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삼아 '반도체 항모'로 불리는 칭화유니(淸華紫光)를 비롯해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와 2위 파운드리 업체 화훙(華虹) 반도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도체 복권을 꿈꾸는 일본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라피더스는 2025년 상반기까지 2나노 반도체 생산의 프로토타입(시제품) 라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라피더스는 소니·도요타·키옥시아·NTT 등 일본 대기업 8곳이 첨단 반도체의 국산화를 위해 지난해 11월 설립한 합작 기업이다. 미래 기술에 필수적인 최첨단 반도체 제조를 한국이나 대만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K-반도체는 이와는 달리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영업이익은 97% 급감하며 가까스로 적자를 면했다. SK하이닉스는 1조7천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2012년 3분기 이후 10년 만이다. 반도체는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에서 5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비중이 절대적이다. 새해 첫 달 120억 달러를 훌쩍 넘는 사상 최대 적자를 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도체 위기는 한국경제의 위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과 정부의 대응은 하세월이다. 어렵게 일궈낸 K-반도체의 신화를 허무하게 날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속도감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양창균 기자(yangc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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