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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윤석열 대통령의 '양식'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4일 경북 경주 봉황대 광장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다. [사진=정호영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4일 경북 경주 봉황대 광장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다. [사진=정호영 기자]

[아이뉴스24 정호영 기자] "사실 ○당에도 양식 있고 생각이 온전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 당은 자기네 주류가 방침을 세워놓은 것을 어기면 왕따를 시킵니다. 무슨 혁명하는 당마냥, 아주 노선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가만 안 둡니다. 그래서 양식 있는 사람들이 기를 펴지를 못합니다."

'○당'은 어느 당일까. 국민의힘을 떠올릴 국민이 제법 있을 듯하다. 정답은 더불어민주당이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4일 경주 유세에서 한 말이다.

지난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의 유세 현장을 따라 전국 각지를 돌았다. 들은 연설만 수십 번. '고정 레퍼토리'도 있었다. 대개 민주당과 소속 후보, 문재인 정부 비판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민주당에도 양식 있는…"으로 시작하는 내용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양식'(良識)은 '뛰어난 식견이나 건전한 판단'을 뜻한다. 당시 윤 대통령은 수천, 수만 국민 앞에서 '양식 연설'을 반복하며, 민주당 소신파에 대한 친문의 '집단 린치'를 떠올리게 했다. 윤 대통령 스스로도 검찰총장 시절 현재권력과 맞선 전력이 있다. 선거 한 번 치르지 않은 정치 신인을 대통령으로 이끈 동력이다. 다수의 힘이나 권력의 위세에 굴하지 않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 윤 대통령에게는 '양식 있는' 정치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1년. 집권여당이 된 국민의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현안에 대해 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이른바 '윤심'(尹心)에 어긋나면 쉽사리 반윤 낙인이 찍히기 일쑤다.

최근 나경원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 여부가 정국을 휩쓸었다. 나 전 의원이 선택한 것은 불출마인데, 친윤 내 평가는 '반윤 우두머리', '위장 친윤'에서 하루아침에 '총선 승리를 위한 희생'으로 격상됐다. 국가 중대사인 저출산 문제를 다루는 책임있는 위치에서 당대표 출마를 계속 저울질하며 분란의 중심에 선 나 전 의원도 마냥 잘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윤심을 거스른 인물에게 쏟아진 당 차원의 포화는 상상 이상이었다.

당 초선의원 다수는 '나경원 규탄 연판장'을 돌리며 윤심을 받들었다. 당초 초선의원 63명 중 43명이 참여했지만, 이름이 계속 추가되면서 발표 하루가 지난 시점에는 50명까지 불어났다. 이 중에는 전당대회 선관위원을 맡은 초선의원 2명도 있었는데,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사퇴했다. 촌극이었다. 비윤계로 꼽히는 의원들은 서명 의사를 묻는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은 것이다.

대선이 끝나고 1년 가까이 지났다. 반복 학습 덕분인지, 윤 대통령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쳤던 '양식 연설'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윤 대통령에게 '양식 있는' 국민의힘 정치인은 누구일까. 윤 대통령의 '양식 연설' 마무리는 대개 이랬다. "양식 있는 정치인과 협치해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겠다." 당이 분열하는데 협치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약이 될법한 쓴소리는 수용하고, 생각이 다른 구성원도 폭넓게 포용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한다.

/정호영 기자(sunris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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