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화판에 조각을 심는 김지아나 작가, 작품의 에너지는 세계로 [인터뷰]


[아이뉴스24 유지희 기자] "저는 작품에 조각을 꽂는 게 아니라 심는다고 여겨요. 조각 하나 하나가 지니는 에너지는 작품 속에서 자라나거든요. 이러한 노동 집약적인 작업이 관람객들에게 무언의 감동을 준다고 생각해요."

김지아나 작가는 흙과 빛을 섞는다. 뭉텅이로 된 흙에 안료를 넣어 흙 자체의 색을 빚어내고 오랜 시간 가마에 구워낸다. 그리고 종잇장처럼 얇은 세라믹 파편들을 캔버스 위에 일일이 손으로 심으면서, 작품의 에너지를 쌓아간다.

김지아나 작가가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곳' 전시가 열린 지난 2021년 12월2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문수지 기자]
김지아나 작가가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곳' 전시가 열린 지난 2021년 12월2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문수지 기자]

작가는 '흙의 시간, 빛의 기억' '코나투스_능동적 충동, 지속에 대한 지향' 'Colors inside colors' '중첩된 표면' 등 올해 5개의 개인 전시로 관객을 만났다. 오랫동안 작업한 캔버스 회화 외에도 최근에는 물, 철재, 나무 등을 통해 조각, 설치 미술로 작품 세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그 중에서 최근 서울 포스코미술관에서 전시를 마친 '흙의 시간, 빛의 기억'은 그동안 작가가 천착한 '흙'이라는 물질에, 빛의 변화를 그려냈다. 최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아이뉴스24에서 작가는 작품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그 일련의 과정을 전했다. 작가는 먼저 "흙과 빛은 자연과 가장 가까운 재료"라며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김지아나 작가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곳' 전시가 지난 2021년 12월2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문수지 기자]
김지아나 작가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곳' 전시가 지난 2021년 12월2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문수지 기자]

"우리 모두 젊었을 때는 삶이 무한하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결국 유한한 삶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죠. 그런데 삶은 매 순간 같지 않고 무척 다양해요. 마치 한순간도 같지 않은 빛과 같이 다이내믹하죠. 탄생과 소멸, 창조와 파괴처럼 상반 관계인 것 같은 흙과 빛을 하나로 엮어냈어요. 이들은 결국 모두 하나이니까요."

작가는 "빛에 따라 변하는 작품처럼 우리의 마음도 항상 변한다"며 '친구' 같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김지아나 작가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곳' 전시가 지난 2021년 12월2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문수지 기자]
김지아나 작가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곳' 전시가 지난 2021년 12월2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문수지 기자]

"저 또한 어느 날은 제 안에 있는 나와 보고 싶지 않다가도, 좀 괜찮아지면 함께 수다 떨고 싶죠. 오쇼 라즈니쉬 작가의 책을 보면 '생각의 흐름이 마음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결국 생각하는 대로 보이는 거죠. 저도 제 작품이 어떤 날은 구름으로 보였다가, 꽃으로 보였다가, 빌딩으로 보여요. 이러한 저의 마음 흐름이 빛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작품과 함께 가는 거죠. "

작가는 흙 덩어리로 작업을 시작한다. 무수히 많은 안료들을 배합하면서 흙 본연의 색을 찾아낸다. 그렇게 만들어낸 자기(포슬린) 조각들은 빛을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포슬린은 그 두께에 따라 빛이 달라져요. 세라믹의 파장을 바꾸면서 따뜻함을 주죠. 투광되는 두께에 따라 달라지는데, 감성적으로 터치하는 빛을 찾고 싶었어요. 한번 더 걸러지면서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색깔, 그리고 그 색깔을 지닌 도편 사이로 흐리는 빛의 흐름을 그리고 싶었어요."

김지아나 작가가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곳' 전시가 열린 지난 2021년 12월2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문수지 기자]
김지아나 작가가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곳' 전시가 열린 지난 2021년 12월2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문수지 기자]

캔버스 위에 흩어진 도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그 자체의 선을 가지고 에너지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다른 도편들 사이에서 빛과 함께 삐뚤빼뚤한 다양한 선들을 만들어내면서 에너지를 내뿜는다.

"올해 포스코미술관에서 걸린 작품들 중에는 2017년에 만든 조각을 지난해 꺼내 화판에 옮긴 것도 있어요. 묵은지를 꺼내듯 조각들을 연도별로 놓아두고 작업해요. 조각 하나 하나를 빚어 가마로 굽는데 어제와 오늘, 오늘과 다음날 조각의 넓이, 질감은 모두 다르죠. 과거의 조각을 현재로 가져와 새 메시지를 주거나 컬러 변화를 줘요. 그렇게 시간을 연계해 작품에 담아내고 있어요."

김지아나 작가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곳' 전시가 지난 2021년 12월2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문수지 기자]
김지아나 작가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곳' 전시가 지난 2021년 12월2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문수지 기자]

세계적 문화예술 단체인 보고시안 재단(Boghossian Foundation)의 후원을 받는 작가는, 올해 벨기에에서 개인전으로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프랑스, 미국 등 끊임없이 해외 진출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 아트스트로 거듭나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1972년생인 작가는 "지금은 직업란에 당당히 '아티스트'라고 적지만 예전에는 '내가 이 직업으로 생계를 제대로 꾸리고 있나' 같은 생각이 밀려오면서 멈칫했던 순간들이 많았다"며 예술과 함께한 20대, 30대, 40대의 지난한 날들을 먼저 언급했다.

"20대는 꿈을 향해, 30대는 꿈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과정을 거쳤고, 그렇게 또 40대를 보냈어요. 종종 다른 직업으로 바꿀 기회가 왔을 때 쉽게 이 길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오랜 시간 제 모든 걸 바쳤기 때문에 억울했죠. 결국 작품을 하면서 버텼어요. 눈치 볼 사람도 없는, 오롯이 제가 왕이 될 수 있는 작업실에서 홀로 버텼죠."

김지아나 작가가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지아나 작가 ]
김지아나 작가가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지아나 작가 ]

작가는 자신이 지나온 길들을 지금 지나고 있는, 또는 앞으로 거쳐갈 여성 작가들의 여정에 이음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여성 작가로 사는 건 더 쉽지 않았어요. 특히 무엇이라도 잡고 싶었던 순간,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고 떠올렸을 때 쉽게 그릴 수 있는 작가가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죠. 197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그리고 해외 진출 등을 통해 앞으로도 끊임없이 성장하는 제 모습이 다른 여성 작가들에게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길 바라고 있어요."

/유지희 기자(yjh@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화판에 조각을 심는 김지아나 작가, 작품의 에너지는 세계로 [인터뷰]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