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일상]① "심심해 미칠 지경"···우울증 걸린 노인들 '한숨'


경로당·공공체육시설 폐쇄에 갈 곳 잃어···"정부 대책 마련 나서야"

26일 서울시 강서구, 차단띠로 둘러싸인 의자에 한 노인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이재용 수습기자]

[아이뉴스24 이재용 수습 기자] "갈 데가 없어. 이거(차단띠) 있어도 별수 있나. 다 문 닫아서 여기 아니면 어디 마땅한 데가 없어. 내가 무릎이 아파서 멀리 갈 수도 없어요."

지난 26일 오전 10시. 불쾌지수가 '매우 높음'인 가운데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한 공원에서 만난 박이순(82) 씨가 차단띠로 둘러싸인 정자 안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인근 골목어귀와 공원에는 갈 데가 마땅치 않은 노인들이 곳곳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갈 곳이 없는 노인들···경로당 운영 중단에 '패닉'

코로나 사태 이후 노인들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노인 복지·여가 시설이 문을 닫고, 정기 노인교육 프로그램이 중단된 탓이다. 코로나 이전 시설에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일상은 사라졌다.

26일, 코로나 방역 조치로 서울시 내 공공복지시설이 문을 닫은 모습이다. [사진=이재용 수습기자]

실제로 서울시 내 1천114개 공공체육시설은 코로나 방역 강화 일환으로 모두 문을 닫았다. 노인들의 쉼터인 경로당 3천386개소도 경로당이 아닌 무더위쉼터 2천500여 개소로 축소 전환됐다.

폐쇄된 체육 시설 앞에서 만난 김순환(69) 씨는 "게이트볼장 문 닫기 전에는 심심할 때마다 나왔다"며 "코로나가 심해지니 이용을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서울시 공항동 골목어귀에서 만난 양종환(75) 씨 역시 "집에 계속 있으면 심심해 미칠 지경"이라며 "이렇게라도 나와 있어야 숨을 쉰다"고 마스크 콧등을 꾹 누르며 말했다.

26일 오전, 서울시 강서구 관내 확인한 모든 노인 복지·여가 시설이 문을 닫은 상태다. [사진=이재용 수습기자]

그러나 노인 쉼터가 완전 폐쇄된 것은 아니다. 대한노인회에 따르면 경로당이 오전에는 문을 닫지만 오후 1시부터 '무더위쉼터'로 부분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노인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 ▲등촌동 ▲화곡동 ▲공항동 ▲우장산동 등지에서 만난 노인 20여 명은 모두 오후에 무더위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전에 나와 경로당이 닫혀있는 것만 보고 집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오후에 운영하는 것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공원 의자에 앉아있던 김 모(80)씨는 "오후에 경로당이 무더위쉼터로 문을 여는 것을 아시냐"는 질문에 연거푸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어 "가슴이 답답해서 마음병에 걸렸다"며 "여기 나와 있는 것도 누구랑 만날까 싶어 나온 거다"라고 한탄했다.

방화동 공원에서 만난 박 모씨는 "혼자 있을 때가 많다"며 "집에만 있으면 종일 아무도 못 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더위쉼터가 문 연 것을 알았으면 친구들 만나러 갔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26일 오전, 서울시 강서구 관내 확인한 모든 노인 복지·여가 시설이 문을 닫은 상태다. [사진=이재용 수습기자]

이처럼 시설이 폐쇄되거나, 쉼터가 부분 운영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노인들은 여가 활동과 대인만남 기회가 줄어 사회적으로 고립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올 2분기에 조사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노인 연령인 60대와 70대의 자살 생각 비율이 지난해 5월 4.71%에서 올해 6월 8.17%까지 상승했다.

최근 서울 강동구청의 조사에서도 우울척도 평가 결과 전체 평균은 17점인데 비해 노인 연령인 60대 남성이 20.6점, 70대 여성이 19.6점으로 가장 높은 우울증 의심증세를 보였다.

한규만 고려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다른 연령에 비해 노인 연령의 우울 증세가 두드러지는 이유를 사회적 상호작용의 단절에서 찾았다.

한 교수는 "젊은 연령층은 대면 접촉이 줄어들더라도 소셜미디어와 같은 통로로 사회적 상호작용을 보충하는 반면, 노인들은 소셜미디어 등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대체할 만한 사회적 상호작용 통로가 없다"며 "이런 현상은 노인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킬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블루'에 빠진 노인들···"추가 대책 마련 시급"

노인 코로나 블루 심화에 정부의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이 많다. 일단 정부는 지난해 1월부터 통 권역별 트라우마센터가 노인 등 취약계층을 찾아가 심리지원 하는 '마음 안심버스'를 지난해 한 대에서 올해 32대로 확대 운영하겠다고 밝혔지만 '한정적'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마음 안심버스 조사 결과 입구 경사로가 없고 내부통로가 좁아 장애인·노인들이 이용하기 어려움이 있다"며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못한 부분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돌봄·복지 통합브랜드 '서울케어' [사진=이재용 수습기자]

서울시도 지난해부터 노인돌봄 전문 수행인력 2천700여명을 구성해 '노인맞춤돌봄'을 제공하고 있지만 3만6천여명에 달하는 노인맞춤돌봄 대상자를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일회성 접촉·치유가 아니라 노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꾸준하게 사회적 상호작용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규만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노인의 사회활동 참여가 우울증상의 위험을 뚜렷하게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이상의 사회활동에 참여한 사람은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울증의 위험이 0.6배 낮았다.

한 교수는 "정신 보건 정책 차원에서 노인들의 사회활동 참여를 증대시킬 수 있는 다양한 사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노인들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 방안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 수습 기자(j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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