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佛 회장도 탐낸 '이건희 컬렉션' 해외유출 위기, 이대로 둘 건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사진=삼성]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쇼펜하우어의 4원색인 빨강, 노랑, 파랑, 녹색을 조합해 만든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 '4천900가지 색채'가 최근 한국에 상륙했다. 서울 청담동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에 전시된 이 작품은 가격이 5천만 달러(약 565억원)로 추정된다. 이 작품을 탄생시킨 리히터는 '색채의 마법사'로 불리는 독일 현대미술 거장으로, 프랑스 명품 재벌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회장이 애정을 갖는 작가로 알려졌다.

아르노 회장 외에 리히터 작품에 관심을 쏟은 이는 또 있다. 바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이 회장은 리히터 대형 색채 추상화를 자택에 걸었을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이 회장이 건립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 목록에도 리히터의 정물화, 풍경화, 색채 추상화 등이 걸려 있고, 최근 감정을 끝낸 '이건희 컬렉션'에도 리히터 대작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리히터의 작품 외에도 1만3천여 점을 개인적으로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고미술과 근현대미술품, 서양 근현대미술품 등 방대한 규모와 퀄리티에 미술계에선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국민화가 이중섭, 박수근의 명작 수백 점과 김환기, 이우환 등 국내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 세계 유명 화가 피카소, 모네, 고갱, 샤갈, 르누아르 등의 현대미술과 국보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 216호), 금강전도(국보 제 217호) 등이 대표적이다. 감정가만 3조원가량으로, 한국 미술관 전체의 연간 작품 구입비 최대 132년 치에 달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조만간 흩어질 위기에 처했다. 상속세 자진 신고·납부 기한이 다가오면서 십 수조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이 회장 상속인들의 재원 마련 방안으로 미술품 매각이 고려되고 있어서다.

유족들이 미술품을 팔아 재원을 마련한다면 미술계에선 세기의 경매가 될 것이란 전망이지만 제 값을 받기 힘들다는 점에서 당장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만약 매각이 진행된다면 국내 미술계 입장에선 상당한 타격이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중요 미술품들의 해외 유출이 불 보듯 뻔해서다.

이에 미술계에선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해 '이건희 컬렉션'의 해외 반출을 막아야 한다고 나섰다. 지난해 5월 전형필 전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의 유족들이 재정 압박을 이유로 보물급 불상 두점을 경매에 내놨던 것을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해서다. 또 국가가 이를 관리·전시하면 해외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 회장이 호흡 곤란과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진 지난 2014년 5월 10일 이후 이같은 문제는 종종 불거져 나왔다. 그 사이 문화재·미술품 물납제가 일찌감치 도입됐다면 이 회장이 보유한 명작들을 해외로 뺏길 것이란 염려도 할 필요가 없었을 듯 하다. 나아가 미술품 구입 및 미술관 설립이 확대되고 미술품 기부문화가 확산되는 풍토도 조성돼 국내 미술계도 한층 더 발전했을 것 같다.

지난해 11월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포함한 문화예술·미술시장 활성화 4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 소위 심사를 거쳐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하고 본회의에서 의결해야 한다.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란 얘기다. 그 동안 상속세 납부를 앞둔 삼성가는 '이건희 컬렉션'을 하나, 둘 정리할 가능성이 높다. 여러 제약으로 위축된 한국 미술계의 깊은 탄식이 이어지는 이유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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