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전설이 된 ‘베토벤의 생애’…임희근의 새 번역으로 나왔다


부록으로 로맹 롤랑의 ‘서른 살 베토벤의 초상’ 국내 첫 수록

클래식 음악도서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포노(PHONO) 출판사가 올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베테랑 번역가 임희근의 새로운 번역으로 ‘베토벤의 생애-위대한 투쟁(232쪽·1만4000원)’를 출간했다.

[아이뉴스24 민병무 기자]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의 일생을 담고 있는 책들은 많다. 그 중 가장 ‘전설’에 가까운 것이 프랑스 소설가 로맹 롤랑(1866~1944)이 쓴 ‘베토벤의 생애(Vie de Beethoven)’다. 연대기 위주의 단순한 전기물에서 벗어나 악성(樂聖)의 속마음까지 생생히 그려내 완성도 높은 명저로 평가된다. 그래서 ‘레전드’다.

롤랑은 요즘말로 원소스 멀티유저(One Source-Multi User)다. 이 ‘베토벤의 생애’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 ‘장 크리스토프(Jean Christophe)’라는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완성했다.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대 무릎 꿇지 않고 인간 완성을 목표로 악전고투하는 영혼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베토벤의 삶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작품은 191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베토벤의 생애’ 초판은 1903년에 출간됐다. 이 초판의 한국어 번역본은 1950년 ‘베에토오벤의 생애(이휘영 역·조선공업문화사출판부)’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왔다. 지금까지도 판을 거듭하며 계속 출간되고 있는데 베토벤 평전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클래식 음악도서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포노(PHONO) 출판사가 베테랑 번역가 임희근의 새로운 글솜씨로 ‘베토벤의 생애-위대한 투쟁(232쪽·1만4000원)’를 내놓았다.

‘베토벤의 생애’는 1927년 베토벤 서거 100주기를 맞아 새로운 서문이 추가된 개정판이 나온적이 있다. 이번 한국어 번역본은 1903년 초판 서문과 함께 1927년 개정판 서문을 함께 수록했다. 이와 아울러 롤랑의 주석이 상당수 추가된 판본(지은이가 사망한 해인 1944년에 출간)을 번역 대본으로 삼아 초판과 꼼꼼히 비교하며 번역했다.

특히 이번 번역본에서 더욱 주목되는 점은 롤랑의 또 다른 베토벤 연구서 ‘베토벤, 위대한 창작의 시대 I: 에로이카에서 아파시오나타까지(Beethoven, les grandes époques créatrices I: de l’Héroïque à l’Appassionata)’에 수록된 ‘1800년, 서른 살 베토벤의 초상(Mil Huit Cent. Portrait de Beethoven en sa trentième année)’을 국내 최초로 번역해 실었다는 것이다. 1966년판을 번역했는데 이번 번역본의 사료적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베토벤의 생애-위대한 투쟁’은 그의 생애를 다룬 본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베토벤이 가까운 친구 및 동료와 주고받은 편지들, 베토벤의 예술관과 인생관이 담긴 촌철살인 문장 모음, 참고 문헌으로 구성됐다.

위대한 음악으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안겨준 베토벤의 일생과 작품에 대한 연구를 담은 책은 그동안 다수 출간됐고 또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전 연구자들의 오류와 잘못된 정보도 바로잡힐 것이며 다양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오래된 책은 지금도 여전히 생명력을 내뿜는다. 1902년 잡지 ‘르뷔 드 파리(Revue de Paris)’에 처음 연재됐던 이 짧은 전기는 이후 소책자로 발간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그 이후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불행을 관통해야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었다. 오랜 탐구와 자신만의 통찰을 웅숭깊은 문장으로 그려낸 롤랑의 솜씨와 그가 베토벤의 생애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끝을 알 수 없는 팬데믹 시대를 마주한 우리에게 여전히 큰 울림을 전해준다. 한줄한줄에 불굴의 삶이 아로새겨져 있다.

<1796년에서 1800년 사이에, 그의 청각 장애는 심해지기 시작했다. 밤이고 낮이고 두 귀가 웅웅 울렸다. 창자까지 울리는 듯한 통증 때문에 그는 괴로웠다. 청력도 점점 약해졌다. 몇 년 동안 그는 청각 장애를 아무에게도,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발설하지 않았고, 혹시 자신의 장애가 눈에 띌까 봐 사람들을 피했다. 이 끔찍한 비밀을 혼자서만 간직했다. 하지만 1801년이 되자 더는 입 다물고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두 친구, 의사인 베겔러와 목사인 아멘다에게만 절망적으로 이를 고백했다.>

<1801년에 베토벤이 열정을 쏟은 대상은 줄리에타 귀차르디였던 것 같다. 그는 유명한 ‘월광 소나타 Op. 27(1802)’를 그녀에게 바침으로써 그녀를 불멸의 여인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베토벤을 괴롭히다가 1803년 11월에 갈렌베르크 백작과 결혼해 버렸다. 이러한 정열로 말미암아 베토벤의 영혼은 피폐해진다. 그리고 베토벤의 경우처럼 이미 병으로 영혼이 가뜩이나 쇠약해져 있는데 이런 상처까지 받으면 아예 망가져 버릴 우려가 있다. 그 시기가 그의 생애에서 금방이라도 넘어져 꺾여버릴 것만 같은 유일한 순간이었다. 베토벤은 이때 절망적인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그가 남긴 편지 한 통을 읽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두 동생 카스파어 카를과 요한에게 남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죽은 후에 읽어보고 이대로 집행하기 바란다.” 이는 반발과 가슴 찢어지는 고통의 외침이다. 이 외침을 들으면 온몸에 연민이 스미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당시 자살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직 불굴의 도덕심이 있었기에 그러지 않고 버틴 것이다.>

<베토벤은 메모에 이렇게 쓴다. “복종, 운명에 깊이 굴종하는 것. 넌 이제 너만을 위해 존재할 수 없고 오직 남들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널 위한 행복은 네 예술 속에나 있을 뿐이야. 오, 하느님, 제게 저 자신을 이겨낼 힘을 주소서!”

<그는 이제 외톨이가 된다. “친구도 없고 세상에 나 혼자뿐이다”라고 그는 1816년의 메모에 썼다. 그는 이제 완전히 귀가 멀었다. 1815년 가을부터는 남들과 가끔 필담을 주고받는 것 말고는 인간관계도 없어진다. 가장 오래된 대화첩이 1816년의 것이다.>

<이러한 슬픔의 심연 밑바닥에서 베토벤은 ‘환희’를 구가하려 했다. 이는 그의 필생의 계획이었다. 본에서 살던 1793년부터 이미 그런 생각을 했다. 평생 동안 그는 ‘환희’를 노래하고 싶어 했고, 자기의 대작 중 한 곡으로 ‘환희’를 찬미하고 싶어 했다. 평생 그는 이 송가의 정확한 형식과 그것이 들어가기에 마땅한 곡을 찾느라 망설였다.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의 한 악장에 ‘환희의 송가’를 넣기로 마음먹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환희의 송가’를 넣어서 ‘교향곡 10번’이나 ‘교향곡 11번’을 쓰려고 했다. ‘교향곡 9번’의 제목이 널리 알려진 ‘합창 교향곡’이 아니라 ‘환희의 송가가 마지막 합창으로 들어간 교향곡’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결말 부분이 다를 수도 있었고, 또 실제로 다를 뻔했다.>

<1827년 2월 17일, 세 번의 수술을 마치고 네 번째 수술을 기다리며 임종의 침상에 누운 채 그는 평온하게도 이렇게 쓴다. “나는 꾹 참으며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나쁜 일에는 좋은 일도 얼마간 따라오는 법이다.’” 좋은 일이란 병이 낫는 것, 그가 죽으면서 말했듯이 “연극이 끝나는 것”이다. 즉, 인생의 비극이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내 곁에 있는 누군가는 멀리서 부는 피리 소리가 들린다는데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거나, 목동의 노랫소리가 그에겐 들리는데 내겐 들리지 않으면, 그게 얼마나 모욕적이었는지 몰라! 그러고 나니 절망에 빠졌단다. 하마터면 자살할 뻔했지. 오직 예술, 그것만이 나를 붙들어 주었어.>

<하지만 몇 달 뒤, 자기의 독립성을 가로막는 듯한 말을 한마디 듣자 베토벤은 리히노프스키 대공의 흉상을 부수어버리고 문을 쾅 닫고 이 집을 뛰쳐나간 뒤 다시는 리히노프스키 집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그는 공과 결별하며 이런 편지를 쓴다. “공께. 당신이 귀족인 것은 태어날 때 우연히 그리 된 것입니다. 내가 위대한 음악가인 것은 내가 노력해서 그리 된 것입니다. 세상에 공들은 많고 많으며, 앞으로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1799년에서 1801년까지 베토벤은 연이 있던 두 집안, 즉 브룬스비크가와 귀차르디가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서로 사촌 간인 세 아가씨를 차례로 모두 사랑했다. 테시(테레제), 페피(요제피네), 줄리에타는 각각 스물다섯 살, 스물한 살, 열여섯 살이었다.>

<줄리에타는 1803년 11월 3일에 결혼했는데, 이는 베토벤이 ‘백작부인이 될 아가씨’께 고통스러운 ‘환상곡풍의 소나타 Op. 27-2(월광 소나타)’를 헌정한 지 1년 반 뒤였다.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고 이미 이 소나타는 사랑보다는 베토벤의 고통과 분노를 보여주었다. 이 불멸의 송가를 쓴 지 여섯 달 뒤(1802년 10월 6일), 절망한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쓴다.>

<베토벤은 겁에 질렸다. 유서(보내지 않은 편지)의 형태로 이렇게 찢어질 듯한 절망의 함성이 한 사람의 가슴에서 우러나온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는 땅을 재보고 있다. 그러나 신화 속의 티탄처럼 단숨에 더 큰 힘을 발휘해 우뚝 일어서려고 그러는 것이다. “아니, 난 견뎌내지 못할 거야!” 그는 운명의 아가리를 틀어쥐려고 싸운다. “너 때문에 내 허리가 완전히 휘지는 않을 거야.”>

‘베토벤의 생애-위대한 투쟁’은 음악전문출판사 포노가 선보이는 ‘거장이 만난 거장’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이따금 얄궂은 예외도 없지 않지만, 대개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제목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등대’와 같이 등장했던 한 거장이 다른 거장을 만나 그를 통해 어떻게 세계와 예술을 이해했는지 직접 그 거장의 글로 만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쇼팽 노트-가장 순수한 음악(앙드레 지드 지음, 임희근 옮김)’ ‘내 친구 쇼팽-시인의 영혼(프란츠 리스트 지음, 이세진 옮김)’ ‘헨델-음악의 세계인(로맹 롤랑 지음, 임희근 옮김)’ ‘쇼팽을 찾아서-비르투오소의 면모들(알프레드 코르토 지음, 이세진 옮김)’ ‘리하르트 바그너-미래의 음악(샤를 보들레르 지음, 이충훈 옮김)’ ‘베토벤과 아홉 교향곡-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엑토르 베를리오즈 지음, 이충훈 옮김)’에 더해 이번에 새로 선보인 ‘베토벤의 생애-위대한 투쟁’ 역시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민병무 기자 min6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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