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인 팔 비튼 정치자금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달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조성우 기자]

[아이뉴스24 서민지 기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여러 기업인에게 정치 자금을 요구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기업인들에게 1차 책임을 묻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단 설립을 위해 자금 지원을 요구한 사건에서도 이를 따랐던 기업들에 대한 기소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지난 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5차 공판기일에서 이같이 말했다. 과거 판례를 들며 '대통령의 직권 남용'에 따른 기업의 후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처벌받았지만, 뇌물을 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기업인들은 불구속 기소된 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와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에 앞서 전 전 대통령은 1983년 일해재단 설립을 목적으로 대기업들로부터 강제로 기금을 모금, 실질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 썼다. 일해재단 사건은 미르·K스포츠재단과 닮은 점이 많아 비교되곤 하는데, 해당 사건 역시 관련자를 모두 기소하지 않았다. 물론 전 전 대통령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실 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긴 하다.

이처럼 대통령이 요구한 뇌물을 제공한 기업인들은 기소되지 않거나 무죄 혹은 집행유예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다.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력에 따른 뇌물로,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다.

과거나 현재나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청와대의 요구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시류에 따라 편히 살기 위해서 마지못해 응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국제그룹 해체 사건만 봐도 그렇다. 1985년 재계 서열 7위까지 올랐던 국제그룹은 무리한 기업 확장과 자금난 등으로 인해 해체 수순을 밟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렇지만, 재계에서는 전 전 대통령에게 밉보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2017년 시작된 국정농단 사건 재판은 곧 햇수로 4년이 된다. 그동안 진행된 재판 중 이 부회장이 직접 참석한 횟수만 70여 회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재판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재판부가 삼성의 준법감시제도 개선과 운영 등을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밝히자 특검이 반발하며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고, 이에 따라 9개월 가까이 재판은 중단됐다.

9개월 만에 재개된 재판에서도 변함은 없었다. 특검은 준법감시위원회의 운영을 평가할 전문심리위원 구성을 두고 반발하면서 1시간가량을 재판부와 신경전을 벌였다. 재판부와 특검, 삼성 측이 각각 추천한 후보로 전문심리위원이 구성됐음에도 특검은 계속해서 거센 반발을 이어갔다.

누구든 죄가 있으면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기업 총수라는 이유로, 삼성이라는 이유로 지나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검찰 주장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면 이를 납득할 만한 증거를 내세워야 할 것이다.

서민지 기자 jisse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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