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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시즌] 韓 과학자에게 10월은 ‘잔인한 달’이라는데


화학상 후보에 이름 올린 현택환 “재밌게 연구하는 게 중요”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10월은 한국 과학자들에게 잔인한 달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만 되면 일반인들이 과학에 대해 갖는 관심도 최고조에 달한다. 10월은 과학자에게 축제여야 하는데 우리는 대개 초상집 분위기이다.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에서 수상자라도 나올라치면 우리의 답답함은 우울증으로 발전한다. 언론도 왜 우리는 노벨상이 없는지 분석하기 바쁘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가 2016년 펴낸 ‘김상욱의 과학공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조금만 더 들어보자.

“우리에게는 아직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없다. 정부는 종종 노벨상 수상을 목표로 하는 정책을 내놓는다. 노벨상 프로젝트에 돈을 쏟아붓기 전에 진정 우리가 인간을 위한 과학을 추구하고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10월 5일부터 노벨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각 분야별 노벨상이 발표된다. [Nobel Prize organisation	]
10월 5일부터 노벨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각 분야별 노벨상이 발표된다. [Nobel Prize organisation ]

김 교수는 “아이가 학교에서 상을 받아 왔을 때 많은 부모가 ‘몇 명이 참여해서 몇 명이 받은 거냐’는 것부터 먼저 물어 본다”며 “(축하의 말을 건네기 전에) 정확한 등수, 몇 등으로 이긴 것인지, 내 뒤에 몇 명이 있는지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고 진단했다. 우리가 노벨상을 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인간을 위한 과학을 추구하는 게 과학의 목적인데 노벨상만 받으려고는 하지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10월은 노벨상 시즌이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10월 5일 오후 6시 30분 노벨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노벨 물리학상(6일), 노벨 화학상(7일), 노벨 문학상(8일), 노벨 평화상(9일), 노벨 경제학상(12일)이 잇따라 발표된다. 노벨과학상이라고 부르는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 화학상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노벨 화학상 분야 후보 중에 우리나라 과학자 이름이 올랐다. 현택환 IBS 나노입자연구단장(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56세)이 그 주인공이다.

현 교수는 글로벌 분석서비스 기업인 클래리베이트 에널리틱스가 지난 9월 23일 발표한 올해 노벨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2020년 피인용 우수연구자’에 유일한 우리나라 후보자로 선정됐다.

현 교수는 나노입자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잘 알려져 있다. 크기가 균일한 나노입자를 대량 합성할 수 있는 ‘승온법’ 개발로 나노입자의 응용성 확대에 이바지했다. 승온법(heat-up process)은 실온에서 서서히 가열해 나노입자를 균일하게 합성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연구는 2001년 미국화학회지(JACS)에 실려 현재까지 1660회 인용됐다.

현택환 IBS 나노입자 연구단장 [IBS]
현택환 IBS 나노입자 연구단장 [IBS]

최근 현 교수와 통화할 시간이 생겼다. 현 교수는 전화에서 “올해는 나에게 있어 기적의 해였다”며 “네이처 커버를 비롯해 사이언스 커버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등 올 한해 유명 학술지 커버를 장식했다”고 말했다. 그는 “(후보군에 이름이 거론된 것을 두고) 이런 노력이 하나씩 축적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추정했다.

그는 “이번에 내가 노벨상을 받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나노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전했다. 특히 올해 노벨과학상 후보자 명단은 기존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에게 확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 후보가 노벨상을 받아도 괜찮은 사람’인지 확인했다는 것이다.

현 교수는 “그동안 나노분야에서 할 만큼 했고 이젠 재미있게 즐기면서 연구하겠다”라며 “무엇보다 내가 가진 기술로 사람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0대 중반으로 나는 아직 젊다”며 “열심히 계속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우리나라는 침울하다. 정말 메달 때문에 침울한 걸까. 굳이 노벨과학상만이 목적이라면 다른 방법도 있다. 노벨과학상을 받은 사람을 귀화시키든가, 노벨과학상을 받은 수상자에게서 돈을 주고 메달을 사 오든가. 실제 우리나라가 노벨과학상에 매우 집착하자 어떤 수상자가 자신의 메달을 팔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일들인데 얼마나 우리나라가 노벨과학상에 집착하면 이런 말까지 나올까 싶다.

노벨과학상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 30년 이상 한 분야에서 연구를 이어오고 여기에 인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상이다. 최근 흐름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고 공동 수상자가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협업, 공동연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흐름이 강하다.

현 교수가 ‘나는 아직 젊고 열심히 계속 연구해야 한다’는 말은 이런 측면에서 유효하다. 과학자들이 자유롭고 재밌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노벨상을 받는 지름길이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노벨상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길게 봐야 한다. IT와 과학을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비교할 수 있는 여러 단어가 있겠는데 ‘IT는 영화, 과학은 연극’이라는 표현이 있다. IT는 화려하고 빛의 속도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만큼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기업도 많은 게 사실이다. 과학은 화려하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연구해야 성과가 나올까 말까 한다.

과학은 실패도 잦다. 혼자보다 같이 해야 한다. 여기에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환경이 필요하다. 말처럼 쉽지 않다. 21세기 성과 지상주의와 처절한 경쟁 시대에 실패하고, 같이하고, 기다려줘야 하는 연구에 투자할 이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10월 7일 노벨 화학상에 현택환 교수 이름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의 말처럼 ‘재밌고 즐기면서 연구하고 인류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것’을 찾는다면 노벨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노벨과학상은 한 과학자에게 가장 큰 영예이다. 큰 영예인 만큼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과학을 즐기고, 과학을 알리고, 과학을 느끼고, 과학을 공유할 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선물이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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