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칼레의 시민과 대한민국 고위공직자의 모습


[아이뉴스24 이영웅 기자] 1337년 영국과 프랑스가 프랑스 왕위계승을 놓고 전쟁을 펼쳤다. 100년 동안 이어졌다고 하여 백년전쟁(1337~1453)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1346년 프랑스 군을 격퇴한 뒤 프랑스 칼레로 진격했다.

칼레시는 11개월 동안 영국군에 맞서 싸웠지만, 식량이 떨어지면서 1347년 결국 항복하게 된다.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를 정복하는데 막대한 병력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칼레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왕은 마음을 바꿨다. 칼레의 고위공직자 6명이 속옷만 걸치고 성밖으로 걸어 나와 성문 열쇠를 바칠 경우 주민 목숨은 살려주기로 한 것이다.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나섰다. 칼레시 제1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였다. 이후 시장과 법률가 등 귀족계급 5명이 동참했다.

6인의 시민 대표는 영국군 진지로 향했다. 시민들은 눈물을 훔치며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적진에 도착해 처형을 당하기 직전, 영국 왕비가 이들을 죽일 경우 장차 태어날 아기에게 문제가 생긴다며 왕을 설득했고 이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500년이 흐른 뒤 오귀스트 로댕은 이들을 형상화해 동상을 세웠다.

그 동상이 프랑스 북부 칼레시청 앞에 있는 '칼레의 시민'이라는 작품이다.

솔선수범은 사회 구성원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통치수단이다. 로마제국이 유럽을 15세기나 지배할 수 있었던 배경도 솔선수범에 있다.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로마 최고 지도자인 집정관 16명이 전쟁터 최선두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이들의 정책과 리더십을 구성원은 전적으로 신뢰했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떤가.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은 다주택 보유 국민들에게 집을 매각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팔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조롱과 비판이 쏟아진다. 공직자들이 부동산 불패신화를 입증하고 있는 꼴이다.

실제로 청와대가 작년 말 다주택 보유 참모들에게 집을 매각할 것을 권고했다. 지시를 내린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조차 2주택자이면서 서울 강남 아파트를 팔지 않았다. 비판 여론에 매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반포아파트를 판다고 했다가 청주아파트를 판다고 정정하면서 '똘똘한 한 채' 논란도 일었다.

서울 강남 아파트 2채를 보유한 김조원 전 민정수석은 서울 잠실동 갤러리아팰리스(전용면적 123㎡)를 매각하겠다고 했으나, 같은 평형 역대 최고가보다 2억1천만원 높은 22억원에 매물로 내놓아 '시늉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김 전 수석이 사임하면서 '직' 대신 '집'을 선택했다는 조롱이 이어졌다.

수도권 기초단체장 65명 중 16명이 주택 2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였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백군기 용인시장은 주택만 무려 14채를, 서철모 화성시장은 9채, 성장현 용산구청장과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4채씩, 최대호 안양시장은 3채를 보유해 다주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잃은 정책은 아무리 선의라고 할지라도 지속가능할 수 없다. 정부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은 정책의 신뢰성 회복을 위한 공직자들의 마음가짐부터 다잡는 일이 돼야 할 것이다.

이영웅기자 her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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