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 영업점 폐쇄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요?


[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명함 크기의 대기표, 가스총을 찬 청원경찰, 다닥다닥 붙어있는 의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 그리고 코흘리개들이 가지고 온 큼지막한 돼지저금통이 통장으로 변신하는 마법까지. 은행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금융업이라는 은행의 역할보다는, 영업점의 인상이 강하게 박혀있다.

은행 영업점이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지난 8년간 없어진 영업점포만 모두 1천29개에 달한다. 올 3월 기준 전국에 남아있는 은행 영업점은 6천652개다. 4대 대형은행은 올 상반기에만 126개의 영업점을 줄였다. 지난 1년 동안 줄인 88개를 벌써 넘어섰다.

[사진=뉴시스]

속도가 너무 빨랐을까. 금융감독원장이 나섰다. 점포 폐쇄가 급격히 이뤄지면서 노인 등 금융취약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으니, 자제하라는 것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임원회의를 열고 "은행 스스로 고객의 금융서비스 이용에 불편이 초래되지 않도록 하는 범위 내에서 점포를 축소하는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라며 "코로나19를 이유로 단기간에 급격히 점포수를 감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방향은 공감하지만 속도의 문제다"라고 힘을 보탰다.

과연 은행들의 점포 감축속도가 빠를까? 최근의 감소 추이는 속도가 빠르다 또는 느리다고 평가하기 위한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그것만 보면 빠르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속도를 보다 면밀히 평가하기 위해선, 은행업권을 둘러싼 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해 초반부터 금융업권엔 '핀테크'라는 슈퍼 메기가 활개를 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각 은행의 모바일앱을 일일이 깔고, 접속을 해야만 나에게 맞는 대출을 찾을 수 있었는데 핀테크 플랫폼을 이용하면 순식간에 내가 원하는 대출 상품을 고르는 게 가능해졌다. 적금을 들기 위해 은행 영업점 대기표를 뽑는 건 일반적인 일이 아니게 됐다.

사람과 사람을 강제적으로 떼어놓은 코로나19는 핀테크 환경을 더욱 공고히하고 있다. 은행들은 영업점을 찾지 못하는 고객들을 위해 휴대폰 앱을 통해서 대출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비대면 전환에 박차를 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된 지금, 은행이나 고객이나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은행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기관이 아니다.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은행은 영업점을 두는 것보다, 줄이는 게 전략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기준금리가 떨어지면서 은행들은 전례없는 수익성 고민에 빠졌다. 갑자기 생겨난 전략이 아니다. 은행권이 모바일 뱅킹 서비스를 시작했을 당시부터 정해진 미래였다.

다시 수치를 복기하겠다. 8년 간 줄어든 영업점포 1천29개. 올 상반기 4대 은행이 줄인 점포 126개. 정말 속도가 빠르다고 볼 수 있을까. 보는 이에 따라선 오히려 변화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적어도 '빠르다' '느리다'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더구나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금융권에 혁신을 강조해왔다. 하반기 중점 추진과제로도 혁신금융을 꼽았다. 정부가 말하는 금융 어디에나 혁신과 디지털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금융권도 정부의 정책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경영 키워드로 혁신과 디지털을 꼽았다. 디지털 혁신의 결과물은 효율성 제고다. 혁신이 이뤄질수록 은행 영업점에게 남은 시간은 줄어든다.

물론 정부가 혁신만 강조해선 안 된다. 지난해 DLF 사태를 계기로 금융권엔 '소비자 보호'라는 기조가 생겨났다. 소비자 신뢰가 있어야 금융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장이 영업점 감축 추세를 두고 평가를 내리는 위치에 있음은 당연하다.

아쉬운 점은 타협이 가능한 조건을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이 있다. 시대의 조류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디지털 혁신과 영업점 감축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인위적으로 가로막기보단, 금융소외계층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유도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 과정에서 얼마든지 소외계층을 위한 혁신적인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 진정한 혁신금융이기도 하다.

서상혁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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