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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회고록①] "南 통일어젠다는 미국과 달라… 美 이익 우선해야"


“첫 북미정상회담은 통일을 염원하는 남한의 창작품“

[아이뉴스24 김상도 기자]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이 미국 워싱턴 정가는 물론,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내용으로 인해 한국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북한 비핵화 협상을 진두에서 지휘했으며, 이 협상을 둘러싼 배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비핵화 협상 배경과 과정을 소상히 진술할 수 있다.

그러나 볼턴은 비핵화 협상 초기부터 ‘리비아 방식’, 또는 ‘북한 폭격’ 등을 주장하면서 협상 무용론을 펴 온 인물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 및 폼페이오 국무장관과는 계속 마찰을 빚어 왔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 협상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도 상당히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보수주의의 ‘지킴이’를 자처하는 볼턴으로서는 회고록 서술과정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및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가 이입됐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볼턴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들을 것이 아니라 보다 객관적이고 넓은 시각에서 볼턴 회고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이뉴스24에서는 사이먼 & 슈스터 출판사가 곧 출간할 볼턴 회고록을 입수해 한반도 관련 부분을 발췌해 시리즈로 소개한다.[편집자주]

이란과의 핵협상 파기가 가까워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핵 프로그램 재개를 간절히 원했다.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사태를 파악하면 할수록, 희망이 사라지고 비관적으로 변해갔다.

북한과 핵무기 프로그램을 놓고 협상하는 일에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북한이 핵협상을 한 후 경제적인 이익만 보고 미국 및 다른 국가들과의 약속을 파기했기 때문이다. 매번 협상을 어겼지만 북한은 잘 속아 넘어가는 미국을 꼬드겨서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한 후 더 많은 양보를 요구했다.

볼턴 회고록 [사이먼 & 슈스터]
볼턴 회고록 [사이먼 & 슈스터]

오바마의 실수를 지켜보며 8년 동안을 참아오면서, 나는 북한에 위험한 양보를 해서 이란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사태를 항상 우려해 왔다. 아들 부시 행정부의 6자회담이나, 클린턴의 실패한 합의는 말할 것도 없이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려는 열정에 가슴이 아팠다.

폼페이오는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안달하는 것은 집권 초기부터였다고 말했다. 그러니 달리 제지할 방법이 별로 없었다.

2018년 4월12일 시리아 사태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한국 카운터파트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났다. 지난 3월 백악관에서 정 실장은 트럼프를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김정은의 초대장을 트럼프에게 전달했고, 트럼프는 충동적으로 이를 승낙했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모습. [뉴시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모습. [뉴시스]

남한이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정책을 이해한 방식은 미국의 근본적인 국익과는 상관이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위험한 연극이었고,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 실장에게 그해 4월27일 있을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북한이 남한, 일본, 미국이라는 전통 우방국들 사이에 쐐기를 박으려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북한이 한미관계를 이간질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가능한 최대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트럼프에게 말해주었다. 한미동맹이 계속 유지되기를 원했고, ‘트럼프가 남한과의 타협을 거부했다’라는 언론의 헤드라인을 보지 않기를 원했지만, 트럼프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북한을 처음 접촉한 폼페이오는 이미 북미정상회담 장소와 날짜 협의에 들어갔다. 또 북한에 잡혀있는 3명의 미국 인질 석방에 대해서도 협의하고 있었다.

김정은은 평양이나 판문점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을 원했지만 폼페이오와 나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보았다. 폼페이오는 제네바와 싱가포르를 가장 유력한 후보지를 꼽았으나, 김정은은 비행기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북한의 고물 비행기는 두 장소 어느 곳에도 도달할 수 없었다.

김정은도 평양에서 너무 멀리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내 희망은 모든 계획이 무산되는 것이었다.

2018년 4월21일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잘 속아 넘어가는 언론들은 이 사실을 ‘중대한 진전’으로 보도했고, 트럼프도 ‘커다란 진전’이라고 불렀다.

나는 북한의 또 다른 술책을 보는 듯 했다. 필요한 핵실험이 완료됐다면, 이제 북한은 핵무기와 발사체 생산 능력에 필요한 것을 갖추었다는 의미다. 정 실장은 그해 4월24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돌아왔다.

나는 남북정상이 단지 2쪽으로 이루어진 ‘판문점 선언’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에 크게 안도했다. 2쪽이라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경제 발전이 북한의 최우선 정책 순위에 있고, 또 경제 봉쇄로 인한 압박 때문에 북한은 협상에 매우 필사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한은 자신들의 주장대로 이미 ‘핵보유국’이었기 때문에 경제에 치중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불편했다. 한편 폼페이오는 북미정상회담 장소와 시간의 옵션을 좁히고 있었는데, 날짜는 6월 12일이나 13일, 장소는 제네바나 싱가포르가 유력했다.

그해 4월27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은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문 비둘기만 빼고 모든 것을 갖춘 축제였지만, 사실 본질은 거의 빠져 있었다.

당시 워싱턴 시간으로 4월27일 나는 닉 에버스타트가 뉴욕 타임스의 오피니언 면에 쓴 칼럼을 트럼프에게 보여줬다. 미국의 가장 영리한 한국 감시자 중의 한 명인 그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외교에서 흡혈귀는 매 분 태어난다’라고 표현했다.

나는 트럼프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남한의 어젠다가 항상 미국의 것은 아니고, 따라서 미국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나의 견해를 강조하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판문점 선언은 온건한 것이었고, 특히 핵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판문점 회담에 대해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그 때까지도 황홀해하고 있었다. 김정은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비핵화를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김정일 치하에서 실시한 영변 핵발전소 냉각탑 폭파와 같은 또 다른 가짜 약속이었다.

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돼야 한다고 트럼프를 강하게 밀어 부쳤고, 곧 이어 남북미 3자 회담도 즉각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대체로 문 대통령이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한 노력이었다.(2019년 6월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는 황홀감에 젖어 북미정상회담을 5월 중순으로 앞당기자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다행히 김정은이 싱가포르를 선호한다고 문 대통령이 양보했고, 장소는 확정됐다.

트럼프는 폼페이오와 내가 문 대통령과 함께 날짜를 정하라고 최종적으로 말했다. 안심이 됐다.

◆ 존 볼턴은 누구?

미국 강경 매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의 보수주의는 자신이 지킨다는 신념에 살고 있다.

리비아 카다피와의 핵협상에서 핵 완전 제거 후 제재 완화를 주장했고, 이 주장이 카다피에 의해 관철되자, 카다피는 반군에 살해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북한에 대해서는 핵시설 폭격을 주장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북한과의 핵협상은 필요 없는 것이고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북한의 핵을 제거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북미협상에서도, 협상 자체를 부인하는 태도를 취해왔고, 그 점으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찰을 빚어왔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의지와 다른 볼턴 안보보좌관을 해임하기에 이르렀다.

볼턴의 회고록은 그러한 배경으로 쓰여 졌기 때문에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담겨 있을 것이고, 그래서 트럼프의 외교 정책, 특히 북미관계를 매우 주관적으로 기술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점을 감안해서 읽어야 될 것이다.

볼턴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이 되기 이전에는 2005~2006년 유엔주재 미국 대사로 일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부시(아버지), 조지 W. 부시(아들) 행정부 등에서 주요 공직을 맡아왔다. 변호사이기도해서 1974~2018년 공직을 갖지 않을 때는 워싱턴 D.C.에서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볼턴은 1948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첫 번 째 저술은 ‘항복은 옵션이 아니다(Surreneder Is Not an Option)'라는 제목이었다. 예일대학에서 숨마 쿰 라우데로 학사학위를 받고, 같은 예일대학 법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상도 기자 kimsangd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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