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궁극의 맛’이 알려준 ‘연극의 맛’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잊고 있던 맛의 기억과 그 시간을 함께 나눈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현재 내 삶의 가치를 일깨운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재소자들이 그리는 맛의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공감될 일인가.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 FOOD’ 두 번째 연극 ‘궁극의 맛’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애고 긴 테이블을 삼각형으로 배치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배우들은 삼각형 중심과 객석 곳곳에서 7개 에피소드 속 인물로서 관객에게 말을 건다. 관객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극 안으로 들어가 음식과 관련한 그들의 인생 얘기를 듣는다. 그리고 묻어둔 각자의 추억을 찾아낸다.

연극을 본 후 음식과 맛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평소의 나를 돌아봤다. 대학 1학년 때 눈 주위 종양을 드러내며 후각신경을 함께 제거했기에 맛있는 음식의 참맛을 모른다. 외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좋기 때문이다.

후각장애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인들에 반해 나는 그것이 대수롭지 않다. 15시간의 대수술을 끝내고 일주일간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처음 먹은 일반식은 포도주스였다. 달콤하고 상큼해야 할 주스가 시고 썼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절망적이진 않았다. 아버지가 “20년 동안 먹은 음식들의 맛을 뇌가 기억하고 있다”고 하신 말씀도 영향을 끼쳤다.

한 가지 감각을 잃었지만 그로 인해 사람에 더 집중할 수 있으니 손해는 아닌 것이다. 자칫 비관 요소가 될 수 있는 상실이 믿고 의지하는 가족의 말에 힘을 받아 상쇄됐다. 그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고 지냈다. ‘궁극의 맛’이 의미를 두지 않던 삶의 일부분을 부각시켰다.

코로나19로 함께 하는 식사를 피하는 요즘 더욱 가족과 함께 먹는 밥이 그리워진다. 예민한 후각과 미각으로 맛평가를 하다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기도 한 어린시절 먹던 많은 음식의 맛이 뚜렷이 기억난다. 너무 오래돼 저 밑바닥에 깔려 있지만 내가 지나온 소중한 시간이자 내가 가진 자산이라는 걸 비로소 깨닫는다.

앞서 신유청 연출은 프로그램북에서 “공연을 보는 동안 관객들의 생각이 흘러갈 수 있는 여백이 담긴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오늘 이 한편의 연극으로 황홀한 체험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바람이 현실이 됐다.

박은희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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