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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는 OK, 책임은 글쎄"…소비자 피해 회피하는 오픈마켓


이커머스 성장 속 소비자 피해사례 늘어…업계 "자체 관리역량 높여야"

[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 40대 소비자 하상욱(가명)씨는 얼마 전 이커머스 플랫폼 A사에서 고가의 노트북을 구매했다가 한달 째 불편을 겪고 있다. 초기 불량으로 수차례 교환을 받았음에도 같은 증상이 있는 제품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판매자 측이 모니터와 배터리 등 스펙이 허위 기재된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에 하 씨는 즉시 A사에 제품 환불을 요구했지만, A사는 환불 등은 판매자와 이야기 할 사안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또 판매자인 B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B사는 불만이 제기된 이후 A사의 플랫폼에 기재된 제품 정보를 바꾼 후 책임을 회피해 분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 씨는 "고객을 기망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판매자가 많지만 거대 플랫폼의 비호 속에 나와 같은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피해를 당한 소비자가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하루 빨리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커머스 업계의 성장이 이어지며 '오픈마켓'으로 인한 피해 사례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커머스 업계의 성장이 이어지며 '오픈마켓'으로 인한 피해 사례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언택트 소비' 트렌드로 이커머스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이커머스 업체들이 대부분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오픈마켓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소비자들의 피해를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013년~2018년 6월 기간 동안 온라인 쇼핑으로 인한 피해 사례는 4천939건에서 4만605건으로 크게 늘었다. 신고 유형은 품질·AS·계약 관련 신고가 3만5천149건으로 전체 86.5%를 차지했다.

이 같은 피해 사례는 이커머스 플랫폼이 직매입으로 거래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 중개상의 역할을 수행하는 '오픈마켓' 형태의 거래일수록 보다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오픈마켓은 다수 판매자와 구매자가 온라인상에서 거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에 여러 업체가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게 '최저가 경쟁'이 일어난다. 이는 오픈마켓 시장의 급속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오픈마켓은 전년 대비 15.9%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같은 기간 일반 온라인 판매의 성장률 9.9% 대비 5% 가량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오픈마켓 거래에서 이베이·쿠팡·티몬·위메프 등 이커머스 플랫폼은 단순히 '중개자' 역할만을 담당한다.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업자로 분류돼 현행법상 통신판매중개업자라는 사실만 고지하면 모든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다.

또 이들 모두가 나름의 판매자 관리 규정을 갖추고 있지만 판매자와 물품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사각지대'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피해는 오롯이 소비자가 입고 있다.

이커머스 3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보다 높게 주어져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쿠팡, 티몬, 위메프]
이커머스 3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보다 높게 주어져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쿠팡, 티몬, 위메프]

하 씨는 "피해 사실을 A사에 신고하고 조치를 요구하자 판매자와 직접 연락하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판매자는 A사 고객센터로 문의하라고 했다"며 "양측의 책임 회피에서 한 달 가까이 생업도 이어가지 못한 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인터넷 카페에만 검색해 봐도 오픈마켓 피해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판매한 사람과 중개한 사람은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오픈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판매중개자인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이들은 과거 단순한 '판매 홈페이지'에 그쳤지만, 최근 들어 코로나19 사태 등을 기회 삼아 영향력을 급속히 키우고 있는 만큼 그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하 씨와 유사한 피해를 받은 적 있는 소비자 이영권(32·남) 씨는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오픈마켓 거래 중개수수료를 통해 갈수록 더 높은 수익을 내고 있지만 피해 발생 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과거와 변하지 않았다"며 "과거와 위상이 달라졌다면 책임 또한 그에 걸맞게 지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중개자에 강제권 없어…우리도 곤란"

이에 대해 이커머스 업계는 단순 중개자 입장인 플랫폼이 판매자의 문제로 발생한 피해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플랫폼 업계의 책임은 분쟁이 생길 경우 판매자와 고객이 원활한 소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까지란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판매 상품의 교환 및 환불과 관련된 문제에 오픈마켓은 책임이 없다"며 "오히려 일정 부분 '책임'을 지려 하는 것이 판매자에 대한 '월권'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플랫폼 사이에서의 우수 판매자 유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도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오픈마켓 수수료가 이커머스 플랫폼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잡으면서 몇몇 우수 판매자의 힘이 막강해져 높은 수준의 관리 규정을 적용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불법상품이나 법적 문제가 있는 상품의 경우 입점을 제한시키는 등 강력하게 제재하고는 있지만, 플랫폼은 중개업자의 권한만을 가지고 있어 교환·환불은 판매자의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대형 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한 개인 점포에서 물건을 환불받을 때 쇼핑몰이 책임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플랫폼에서 판매하고 있는 판매자 입장에서는 플랫폼 측에서 강한 규정을 적용할 경우 이를 이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오픈마켓 거래에서 플랫폼은 별 다른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사진=전재수 의원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사진=전재수 의원실]

이에 일각에서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법적 책임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커머스 플랫폼의 오픈마켓 거래에서의 책임 범위를 넓히는 내용을 담은 '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규제가 스타트업·영세사업자의 '활로'를 제공하는 오픈마켓 시장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광범위한 법적 제한 전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체가 아직까지 업계에 많지 않아서다.

업계 관계자는 "오픈마켓 거래에서 피해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이를 방지하기 위한 관리 역량을 반드시 키워야 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섣부른 법적 규제는 오픈마켓이 중소 사업자에게 제공하는 기회의 사다리를 없애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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