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실상 정부의 보이스 피싱"…뒷말 남긴 긴급재난지원금


[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노동자이거나 일을 하지 않거나. 어떠한 조건도 없이 모든 시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복지제도 '기본소득'. 불평등이라는 자본주의 태생적 한계를 보완할 실마리로 꾸준히 제시돼온 정책이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기존의 일자리가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기본소득이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국가에서 먹고 살 만큼의 돈을 지원해주는 꿈같은 복지. 그런 만큼이나 실현시키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돈은 '방법론'에 불과한 만큼, 사회적 합의만 이뤄지면 실현 가능성은 대폭 높아지지만, 포퓰리즘이라는 정치적 공세를 뚫어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진=뉴시스]

2020년 한국에선 그 어려운 기본소득이 실현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이 그 방아쇠가 됐다. 코로나19로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경기가 급속도로 식은 데 따른 것이다. 급기야 금융부문으로까지 그 여파가 전이되기도 했다. 양극화를 완화하자는 애초 취지가 아닌, 소비 독려라는 단기적 효과를 보기 위해서지만 그래도 전 국민에게 돈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가 대단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부는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평소 사용하던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통해서도 재난지원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지난 17일 기준으로 전국 1천140만가구가 무려 7조6천억원의 재난지원금을 신청했으니, 정부의 선택은 옳았다고 본다.

아쉬운 점이 남는다면 그 과정이다. 신청 초기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엔 "실수로 기부했어요"라는 글들이 쇄도했다. 앞서 정부와 정치권은 논의 끝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되, 희망자에 한해 기부를 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그에 따라 카드사 홈페이지엔 재난지원금 신청과 동시에 기부도 가능하도록 시스템이 구현됐다.

문제는 일련의 과정 없이 한 번에 기부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페이지 상단에서 재난지원금 신청을 위한 정보를 입력하고 아래쪽에서 기부 여부와 금액을 정하는 방식이다. 입출금 등 통상의 금융거래애선 너덧개 정도의 절차를 두지만, 재난지원금의 경우 사실상 1개의 관문만 통과하면 신청이 끝나는 것이다. 여기에 약관을 잘 읽지 않는 금융 거래자들의 습관이 맞물리면서 이른바 실수 기부가 속출한 것이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꼼꼼히 읽지 않고 기부에 동의한 신청자들에게 있다. 홈페이지엔 명백하게 기부 동의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들은 '사실상 정부의 보이스피싱'이라며 날선 비판을 했다. 과도한 비난이다. 언론이 논란을 확대 재생산한 것도 없잖아 있다.

그래도 신중하게 정책을 집행하지 못한 건 정부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이른바 원스톱 신청 시스템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만들어졌다. 지침이 내려오자 카드사들은 한 번에 신청하도록 하기 보다는, 첫 번째 화면에선 재원금 신청을하고 그 다음 화면에서 구체적인 기부 여부를 정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래도 '빨리빨리 관행'은 막지 못했다. 좀 더 신중했다면 분명 막을 수 있었던 논란이다.

현재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을 성공적으로 수습한 한국을 선망의 눈길로 보고 있다. 하지만 요 며칠 있었던 실수 기부 논란은 '방역은 성공적이지만 공동체를 위한 마음 씀씀이는 인색한 국가'라는 인식을 줄 개연성이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의미있는 복지 시스템을 선도하고 있는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남은 과정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면 한다.

서상혁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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