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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원유 ETN 투자를 '경고'로 끝낼 일인가


'괴리율 1천%' 연일 사상초유 상황…제도·감독 궤 같이 해야

[아이뉴스24 한수연 기자] 올해 들어 '사상 초유'란 말을 정말 많이 쓰고 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세계 경기침체 우려에 주가지수와 환율 등 시장의 각종 지표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마이너스 유가'도 시장에 쇼크를 안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지난달 사우디와 러시아가 원유 증산경쟁에 나서면서 폭락하기 시작한 국제유가가 '기름을 사면 돈을 준다'는 마이너스 영역으로까지 진입한 것이다.

전례 없는 수치에 시장도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마이너스 유가를 인식하지 못해 먹통을 일으키는가 하면 국내에서 발행된 원유 상장지수증권(ETN)의 괴리율은 무려 1천%에 육박했다. 투자자 손실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어서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진=조성우 기자]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진=조성우 기자]

그런데 이들 사태는 단순히 사상 초유의 상황 탓으로만 돌리긴 어렵단 공통점이 있다. 1차적으로 예방이 충분히 가능했던 데다 거래를 중개하거나 상품을 발행한 증권사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정황 때문이다. 주가가 하락해서 해당 종목 투자자가 손실을 보는 직관적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먼저 증권사가 중개한 원유선물이 거래되는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이달에만 세 차례나 마이너스 유가에 대비한 주문시스템을 개발토록 공지하고, 국내 증권사들에 관련 공문도 보냈다. 더욱이 CME 뿐만 아니라 이미 유수의 연구기관들에서 여러 차례 유가폭락에 대한 경고가 나왔던 만큼 증권사들의 안일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전액 손실 가능성까지 예고된 원유 ETN에선 증권사가 책임을 회피한단 비판마저 나온다. 마이너스 유가가 크게 이슈가 돼 그렇지 최근 유가는 급락 못지않게 급등도 했다. 폭락한 원유를 싼 값에 사들여 급등할 때 팔겠단 '스마트 개미'의 전략이 먹혀야 할 순간이었다. 그런데 원유 ETN은 이 기본적인 원리를 무참히 깨뜨렸다. 수익률을 약속한 증권사의 방임 때문이다.

ETN은 상장지수펀드(ETF)와 다르게 증권사가 약속한 기초지수의 수익률을 지급하는 파생상품이다. 원유 수익률이 원유 ETN의 수익률에 반영되는 식이다. 여기서 증권사는 유동성공급자(LP)로서 매수 또는 매도물량이 많아지면 그만큼 물량을 받아 시장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실제 증권사들은 최근 유가 변동성이 커지자 가격조정을 위한 ETN 물량을 추가로 상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증권사는 노력(?)했지만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괴리율이 사상 초유로 치솟았다는 게 그들의 반박 논리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유동성을 공급할 의무를 진 증권사가 물량을 충분하게 상장하지 않았단 뜻도 된다. LP의 유동성 공급 역할은 투자설명서에 '의무'로 명시돼 있는 데도 말이다.

금융시장을 감시·감독해야 할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이 대목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증권사들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원유 ETN 괴리율이 폭등해 투자자들은 '폭탄 돌리기' 상황에 놓였는데 금융감독원은 최고 수준의 소비자경보를 발령한 게 다였다. 그간 파생결합펀드(DLF) 원금손실과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태에서 금감원이 뒷북을 쳤단 비판이 이번 원유 ETN 손실에서도 등장하는 까닭이다.

코로나19로 실물경제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금융시장은 연일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다. 그렇다면 금융회사와 금융감독 당국도 그에 걸맞은 태세를 갖추고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당장 다시 거래가 중지된 원유 ETN 투자자들은 이번 황금연휴를 지옥 속에서 보낼 지도 모를 일이다.

한수연 기자 papyru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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