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바이러스 사라진 봄을 기다리며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기자가 사는 오피스텔 아래 층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소식을 접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슬쩍 걱정스럽다. 이미 소독을 다 끝냈다고 하지만 엘리베이터 버튼을 맨 손으로 누르기가 꺼림칙해서 팔꿈치를 사용했다.

다음 날에는 확진자의 동선을 알려주는 문자가 수시로 오고, 관리사무소는 시간마다 밀접 접촉자 안내와 신고를 독려하는 방송을 한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사람들이 몇 시 몇 분에 어느 층에서 타고 내렸는지를 CCTV 화면과 함께 공개한 전단도 엘리베이터에 붙었다. 밀접접촉자 중에는 입주자도 있지만 배달원들도 있다.

바이러스가 바로 옆까지 스쳐갔다는 사실이 실감된다. 안내문자나 전단을 보면서 방역당국의 신속하고 세밀한 조치에 대한 감사와 함께, 완벽한 방역은 사실상 어렵겠다는 걱정이 동시에 든다. 여기만 해도 1천세대가 넘는 오피스텔 입주자가 5대의 엘리베이터를 공유하고 있는데, 바이러스가 어디서 어디로 옮겨갔는지 어떻게 다 찾아낸단 말인가?

보건당국은 지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완벽한 승리를 보장하기 어려운 전염병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사실 코로나 사태 초기만해도 개인적으로는 우리 정부의 정보공개 정책이 너무 과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안전안내문자는 너무 과하지 않은지, 확진자 동선을 세세하게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지. 증상이 없는데도 환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14일간 격리하는 조치는 타당한지,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불안과 공포를 키우지 않을지….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매일 치솟는 확진자 수 그래프가 내 안전불감증을 꼬집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전염병보다 더 빠르게 번져나가는 루머와 혐오, 가짜뉴스(허위정보)의 범람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곧 정보와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오죽하면 세계보건기구(WHO)가 '인포데믹(infodemic)'을 경고하기까지 했을까.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제공이 최선의 방책'이다.

하필 총선을 앞둔 시기와도 맞물려 허위정보의 범람은 더 치열하고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뉴스 댓글부터 카톡 채팅창에 이르기까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는 인포데믹 현상은 이제 일상이 됐다. 정보전쟁에서 정규군이라 할 수 있는 언론도 오히려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진원지 취급을 당할 만큼 신뢰를 잃고 있다.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신종 전염병에 대한 공포만큼 언론의 좋은 먹이감은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해외 언론의 논조들이 화제다. 외신들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전략과 국민들의 차분한 행동에 대해 연일 엄지를 치켜세우는 중이다. 한국의 진단 능력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다. 한국의 확진자 수 증가를 우려하면서도, 그 이유로 한국 사회의 개방성과 투명성, 신뢰성, 민주주의, 언론의 자유 등을 꼽고 있다.

특히 '언론의 자유'를 거론한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Andray Abrahamian) 조지메이슨大 송도캠퍼스 방문교수의 타임紙 인터뷰가 자주 인용된다. 그는 "한국의 확진자 수가 많아 보이지만 이는 높은 진단 역량과 언론의 자유, 민주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이를 모두 갖추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 외에도 여러 외신들이 이와 비슷한 논조의 글을 잇달아 싣고 있다.

지금 이 판국에 '언론의 자유'를 높이 평가하다니. 설마 '근거 없는 정보 범람'을 '언론의 자유'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마 그것도 구분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외 언론이 '언론의 자유'를 치켜세우는 이유는 "이 지역에서 이를 모두 갖추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는 말에서 의미가 읽힌다. 중국과 일본을 에둘러 비판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빗대 한국 정부가 공개하는 데이터에 대한 신뢰를 함께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해외 언론들은 주변국과 달리 봉쇄와 정보통제 정책을 선택하지 않고, 있는대로 다 보여주며, 끝까지 방역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한국의 시도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모습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우리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높이 평가하는 것과 별개로, 실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가 투명성 만으로 좋아하고 있을 수 만은 없다. 결과까지 좋으면 그야말로 200점짜리 방역정책이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정부의 방역 전략 선택은 다양한 고려사항들 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내린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빨리 확진자들을 찾아내서 방역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한 한국 정부가 신천지라는 암초와 총선이라는 언덕, 경제위기의 산을 넘어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해외언론보다 우리가 더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지금은 정부의 권고사항에 협조하고 각자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요즘처럼 손을 열심히 씻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눈만 돌리면 어디서나 보이는 코로나19 예방수칙 포스터. 수시로 휴대폰을 울리는 안전 안내문자. 건강한 사람도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공중도덕이 된 사회 분위기. 메르스를 경험한 한국은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방역 시스템을 갖춘 나라가 됐다.

거기에다 개인사정을 뒤로 하고 대구로 달려가는 자원봉사 의료진, 입원시설이 부족한 타지 환자를 받아들이는 지역 주민, 이어지는 구호물자와 성금, 마스크 나눔에 동참하는 시민들은 무섭고 우울한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 중에서도 감동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청라언덕의 목련(2019년 3월18일 촬영) [독자 서수명씨 제공]

대구의 코로나 방역 최전선인 동산병원 뒷편에는 '동무생각'의 청라언덕이 있다. 청라언덕에 오르면 서쪽으로 동산병원과 서문시장이 보이고, 동쪽으로 대구 최초의 개신교회인 제일교회를 따라 3·1만세운동길을 내려가면 국채보상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계산성당이 있다. 대구시민들을 위해 청라언덕에 핀 목련 사진을 올려 보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해마다 봄이 오면 누군가는 꼭 써먹는 시구지만, 올해만큼 봄이 절실한 적도 없다. 어서 바이러스가 물러가고 봄이 오기를, 바이러스 사라진 청라언덕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최상국 기자 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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