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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모레퍼시픽의 '카인의 대답'


[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성경의 창세기 4장 9절에는 동생 아벨을 살해한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이 아벨의 행방을 묻는 야훼에게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며 잡아떼며 모른다는 대답을 한다.

이 구절은 지난 1987년 박종철 열사를 고문·살해했다는 의혹을 받던 공안당국이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라고 해명한 것을 작심 비판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당시 김 추기경은 "주님께서 너희 국민의 한 사람 박종철은 어디에 있느냐 물으시자 '(당국은) 탕 하고 책상을 치자 억 하고 쓰러졌으니 나는 모른다'며 잡아떼고 있다"며 "바로 이것이 '카인의 대답'"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아모레퍼시픽의 최근 행보는 흡사 이 '카인의 대답'을 연상케 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연말 저성과자와 고연차자를 대상으로 사실상 희망퇴직을 실시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별도의 사내 공지 및 경력별 기준은 없었고, 성과제에 따른 개별 면담을 통한 퇴사 권유의 형태였다. 이에 대상자 사이에서 회사와 상사의 자의적 기준에 인해 사실상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불만이 표출됐다.

이에 앞서 아모레퍼시픽 전임직 노동조합도 이달 초 진행된 '업무지원센터' 신설 반대 시위 현장에서 일반직 직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노조는 "회사는 서무지원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업무지원센터'를 신설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저성과자 평가 용이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결국 일반직 사원들을 대상으로 진행중인 권고사직(희망퇴직) 바람이 전임직까지 번져 사실상 저성과자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구조조정 논란'에 휘말렸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구조조정 논란'에 휘말렸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인사평가와 이동 철을 맞아 일부 직원에게 인사 관련 면담이 진행됐을 뿐 원하지 않는 이에게 퇴사를 종용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경우는 없었다"며 "아모레퍼시픽은 면직 발령 게재를 진행하고 있는데, 희망퇴직을 진행했다면 이 수치(퇴사자 수)가 엄청나게 올라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또 "지난해만 특별히 평가 면담을 통해 위로금을 지급하지도 않았으며, 인사평가제도에 따라 매년 동일하게 진행돼 온 사안"이라며 "대상자 분들의 불만이 있을 수 있고, 평가 과정에 압박을 느끼는 분도 있을 수 있는 만큼 인사담당자가 면밀히 소통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실상은 사측의 해명과 다른 모습이다. 익명의 아모레퍼시픽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아모레퍼시픽의 일반직 퇴사자는 총 33명이었다. 반면 지난 2018년 12월의 퇴사자는 13명이었으며, 2017년 12월은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사측의 입장과 달리 2년 만에 퇴사자의 수가 3배 늘어난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희망퇴직을 거부하자 업무와 무관한 직무로 전환배치될 것임을 통보받았다고 주장했다. 전환배치 후에는 업무를 주지 않고 상사로부터 퇴사를 종용하는 폭언을 듣곤 했다고 호소했다. 이와 함께 희망퇴직 대상자로 선정되기 직전의 인사 평가 결과가 이전 대비 나쁘게 나온 사례가 많았다며 '기획 퇴사'가 진행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실제 아모레퍼시픽 내부에서도 이 같은 회사의 해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희망퇴직을 거부한 팀장급 직원이 담당으로 격하되고 업무 배제를 겪고 있는 사례도 있다"며 "회사의 해명이 남은 애사심마저 흡집내고 있다"는 날선 비판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진의 가장 큰 목표는 '수익성'이다. 이를 위해서 때로는 인적·물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자'인 정규직 직원들의 처우를 아무런 사전 통지도 없이 은밀한 방식으로 결정하고, 논란이 되자 거짓 해명을 통해 상황을 회피하는 방식까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1987년 당시 공안당국의 '카인의 대답'은 서슬퍼런 제5공화국을 몰락시키는 단초가 됐다. 총과 칼을 앞세워 권력을 장악하고 10년 가까이 철권통치를 이어온 군사정권이었지만, 최소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단 하나의 '거짓말'로부터 불거진 국민의 대대적 저항까지는 버티지 못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불거진 논란에 대해 거짓 해명보다 내부 구성원과의 진심 어린 소통에 나서야 한다. 이들의 신뢰 없이 지어진 성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리 내부 정보를 통제하고, 외부에 정해진 멘트로 응대를 하더라도 '사실'을 이겨내는 '거짓말'은 없으니까 말이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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