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미래유산] 청진옥 이야기(영상) #1


82년 세월의 맛, 3대째 이어져...서울 해장국의 대명사로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아이뉴스24가 '글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와 손잡고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노포(老鋪)'들을 찾아 음식점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추진합니다.

서울시 미래유산 공모사업으로 추진되는 이번 작업은 기존의 단순한 자료 수집 방식에서 벗어나 박찬일 셰프의 인터뷰, 음식 문헌연구가인 고영 작가의 고증작업 등을 통해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2대, 3대를 이어 온 음식이 만들어진 배경과 이를 지켜오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맛있게' 펼쳐집니다. <편집자 주>

'노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곳' '서울시민들의 애환과 역사가 녹아든 곳'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청진옥은 단순한 해장국집이라기 보다는 '세월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청진옥은 지난 2011년 '미슐랭 가이드 한국편'에 소개됐으며,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의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청진옥 해장국은 지난 1937년 청진동 89번지 일대 시장에서 손맛 좋기로 소문한 이간난 할머니가 작은 솥을 하나 걸어놓고 국밥을 말아 팔던 것이 시초다. 예전 청진동 나무시장을 찾아 무악재를 밤새 넘어온 나무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 장국밥으로 청진옥의 역사가 시작됐다.

경성시가도 - 1924년 청진옥 일대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청진동은 광화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6조(曹)를 비롯해 의정부(議政府), 한성부(漢城府) 등이 위치했다. 이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관청가 다운 면모를 지내게 됐다.

피마동(避馬洞)길이기도 했던 이곳에는 고관대작의 행차를 피신한 서민이나 하위직 관리들이 주로 이용했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한 문안 목로집이 발달했다. 대감댁 곰국보다 잣다는 목로집 술국은 오가는 상인들의 시장기를 면해주는 요기로 유명세를 떨쳤다. 중학천변에 모여든 목로집으로 인해 청진동일대는 '청진옥'을 중심으로 해장국골목이라는 대명사까지 얻게 됐다.

청진옥 해장국의 의미는 단순 '음식' 또는 '식사' 그 이상이다. 청진옥은 지난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2000년대 광우병 사태, 2016년 촛불혁명이 열린 역사의 자리에 위치해있다. 청진옥에 모인 각기 다른 시대의 사람들은 다른 의견, 신분 차이, 반목과 갈등의 대립에서도 소주 한잔에, 따뜻한 청진옥 해장국 한 그릇에 마음을 녹였다.

현재 청진옥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종로에서 지난 1960년~1980년대 산업화 과정과 종로 일대 재개발사업을 거치면서 거대 오피스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귀퉁이로 자리를 옮겼지만 명목을 견고히 유지해 나가고 있다.

변화의 바람에도 청진옥의 명맥이 꾸준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현재 청진옥 3대 사장인 최준용 사장이 할머니와 아버지인 선대 사장들의 고객에 대한 '애정'과 '고집'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청진옥은 아직도 '토렴'을 지키고 있는 몇 안되는 해장국집이다.

청진옥 3대 최준용 사장

현 청진옥 사장인 최준용 3대 사장은 "손님들이 청진옥을 단순하게 배를 채우는 식당으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애착을 갖고 ㅇ대하시는 것 같다. 서울의 근현대 문화적 시대를 함께 겪어오면서 손님들과 함께 공통의 기억, 공통의 감성을 공유한 것 역시 오랜 시간 손님들로부터 사랑받게 된 이유"라며 "새벽부터 늦은밤까지 습관처럼 청진옥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24시간 영업을 고집하고 있다. 삼삼오오 모여 해장국 한 그릇에 반주를 곁들여 옛 추억을 안주삼아 이야기 하시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에 청진옥이 오래 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서온기자 summ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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