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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전화 20년 재조명-8] CDMA 영광이여, 다시 한번


 

지난 96년 4월. 세계 IT업계가 깜짝 놀랐다.

회의적이기만 했던 CDMA 시대를, 그것도 무선통신 역사가 일천한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을 시발점으로 해 퍼져 나간 CDMA는 이제 전세계 63개국의 178개 사업자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정도로 컸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위상도 확 달라졌다.

그전만해도 우리나라는 모토로라 등 외국기업에서 대부분의 장비와 단말기를 사다가 무선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던 '기술 종속국'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손으로 시스템과 단말기를 스스로 만들어 쓰는 자립국으로 탈바꿈했으며, 나아가 단말기의 경우에는 세계 시장의 22%를 장악할 만큼 주도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투자를 늦추면서 차기 서비스에서는 주도권을 상실할 우려가 있으며, 시스템 산업의 경쟁력도 서비스와 단말기의 광채에 비하면 초라한 실정이다. 부품 자립도도 더욱 높여야 한다. 이동전화 강국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 있다.

◆차기 서비스 주도권 상실 우려

우리나라가 CDMA 서비스의 최초 상용화로 그 프리미엄 효과를 만끽했지만, 차기 서비스인 WCDMA의 경우에는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정보통신부의 투자 독려에도 사업권을 쥔 SK텔레콤, KTF 등 당사자들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WCDMA 상용화'라는 화려한 간판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이들 두 사업자에 지금까지 납품한 단말기 대수는 총 2천500대에 불과하다.

때문에 시중에서 WCDMA 단말기 구매는 불가능하다. 빌려서 쓰는 것만 가능하다.

이처럼 SK텔레콤, KTF 등이 WCDMA 투자에 미온적인 것은 이미 서비스중인 CDMA2000 1x EV/DO 방식과 비교해서 전송속도나 서비스 내용면에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내년에도 변함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SK텔레콤, KTF 등은 초당 14메가를 지원하는 3.5세대 HSPDA 방식의 WCDMA 기술이 개발되어야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KTF 고위관계자는 "WCDMA 투자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본격 투자는 HSDPA 기술이 상용화되는 2006년 상반기나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SK텔레콤도 올해 2천500억원을 WCDMA에 투자할 뜻을 밝혔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각의 평가다.

여하튼, 우리나라는 두 사업자가 정부 눈치를 보느라 사실상 3세대 서비스인 EV/DO 투자도 맘껏 확대하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서비스 차별화 문제로 WCDMA 투자도 열심히 할 수 없는 묘한 '딜레마'에 발목이 잡혀 있는 셈이다.

반면, 올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WCDMA 투자가 활기를 띠고 있다.

WCDMA 서비스로 이동전화 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허치슨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 이미 국내 LG전자는 허치슨에 지난 2분기동안 100만대 이상의 WCDMA 단말기를 공급했으며, 연내 총 300만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그 뿐 아니다. 유럽 최대 이동전화 사업자인 보다폰도 올 연말에 WCDMA 상용 서비스를 시작할 방침이다.

삼성전자 무선사업을 총괄하는 이기태 사장은 올 8월말 제주도에서 개최한 4세대 포럼에서 "연말에 보다폰이 WCDMA 서비스를 시작하면 T모바일, 오렌지 등도 WCDMA 상용화에 가세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GSM 시장 중 3세대 격인 WCDMA 단말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게는 40%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WCDMA 단말기 시장을 놓고 우리를 비롯해 LG전자,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에릭슨, NEC, 샤프, 산요, 도시바 등이 관련 제품을 내놓고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전제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가 차기 서비스 투자에 소극적이어서, 더이상 내수가 차기 단말기 시장 개척에 지렛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시스템 산업, 갈수록 체력 떨어져

CDMA 상용화 이후 100% 수입에 의존했던 이동전화 시스템은 거의 대부분 국산으로 대체됐다. 기술 종속국의 멍에를 벗은 것이다.

하지만, 2002년부터 시스템 장비 사업은 조금씩 '정체' 상태를 띠기 시작한데 이어 작년부터는 사업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EV/DO, WCDMA 등 망 투자에 머뭇거리면서 시스템 산업을 지탱했던 내수라는 큰 축이 흔들렸고, 이는 시스템 장비 사업에 직격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해당 사업부는 사실상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향후 1~2년 동안에도 WCDMA 투자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시스템 사업 예산도 해마다 20~30%씩 줄고 있다.

또한 시스템 개발인력과 마케팅 인력을 단말기쪽으로 대거 재배치하고 있어 갈수록 기초체력은 약해지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시스템 개발 투자를 사실상 중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는 "시스템과 단말기 기술은 CDMA 기기 산업을 이루는 세트"라며 "그런데 최근 들어 시스템 장비 사업이 처지면서 우리나라 CDMA 기기 산업이 절름발이가 돼 가고 있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수출도 만만치 않다. 지난 해 4억달러 규모를 기록해 전무했던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미국 등 메이저 시장에는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모토로라, 루슨트, 노텔 등 세계적인 통신장비 업체들이 여전히 벽이 되고 있다.

◆부품 자립도, 아직 미흡해

휴대폰 부품수는 대략 200여종.

초기만해도 휴대폰의 부품 수입 의존도는 70% 이상에 달했다. 때문에 아무리 수출을 해봐야 부품을 그만큼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속빈 강정'이라는 지적을 줄곧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산화율이 높아지고 있어 좋은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 98년 부품 국산화율이 40% 이하에 그쳤지만, 현재는 70% 이상에 이른 것으로 자체 분석하고 있다.

특히 LCD, 메모리, 배터리, 모뎀칩, 카메라모듈 등 5대 핵심부품이 재료비의 약 60~70%를 차지하는 데, 이중 핵심부품 부문도 국산화가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

가장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LCD와 메모리로, 삼성SDI가 세계시장 1위(23.6%)를 점하고 있으며, 메모리 역시 삼성전자가 세계시장 1위(20.3%)를 차지하고 있다.

또 배터리는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2위 생산국이며, 카메라 모듈도 속속 국산화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통신칩은 말할 것도 없고, 정작 고부가가치 부품인 200만화소, 300만화소 카메라폰 등 첨단 단말기에 쓰이는 카메라 모듈, 이미지 센서, 멀티칩패키지(MCP) 메모리, 음원칩 등은 아직도 외산이 휩쓸고 있다.

때문에 첨단 단말기는 '수입품 덩어리'라는 우려의 소리도 높다.

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03년 정보통신의 기술무역 적자가 9억1천만달러에 달했으며, 주로 휴대전화기 포함된 전자부품, 통신장비 제조업, 반도체 등에서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SK텔레텍 고위관계자는 "휴대폰 산업이 잘되려면 전후방 산업이 튼튼해야 한다"며 "아직도 첨단 단말기에 쓰이는 핵심 부품은 상당부분 일본산이어서 우리나라 부품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튼, 예전의 CDMA 영광을 향후 이동통신 시장에서 재연해 보이기 위해서는 이 같은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풀고 가야 균형있고 속이 찬 이동전화 산업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이관범기자 bum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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