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미래유산] 열차집 이야기(영상) #1

가난한 자의 성찬에서 '소울푸드'로 변신한 '빈대떡의 고향'


[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아이뉴스24가 '글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와 손잡고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노포(老鋪)'들을 찾아 음식점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추진합니다.

서울시 미래유산 공모사업으로 추진되는 이번 작업은 기존의 단순한 자료 수집 방식에서 벗어나 박찬일 셰프의 인터뷰, 음식 문헌연구가인 고영 작가의 고증작업 등을 통해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2대, 3대를 이어 온 음식이 만들어진 배경과 이를 지켜오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맛있게' 펼쳐집니다. <편집자 주>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한때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뒷골목에 자리잡았던 피맛골은 현대 서울의 '전설'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훗날 역사에 이름 석 자를 깊게 새기게 될 문인, 기업가 등 청년들이 지갑 속 지폐 한 두장을 들고 퇴근때마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던 공간이었고, 이들이 성장해 나감에 따라 이 곳은 '역사'가 깊게 새겨져 있는 골목으로 자리잡았다.

지금 종각역 제일은행 빌딩 뒷편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는 '열차집'은 이 같은 피맛골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온 '정통 서울식 빈대떡' 가게다. 경기도 용인에서 행상을 다니던 초대 사장 안덕인 씨 내외가 6·25전쟁이 한창일 때 빈대떡 장사를 시작했으니 어느새 70년에 달하는 역사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열차집은 수십년 동안 피맛골에 자리잡고 인근 직장인들의 '친구'로 자리잡았다. [사진=아이뉴스24DB]

안씨 내외는 1954년 무렵 현재의 종로소방서 인근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손님들은 남의 집 담벼락 사이에 판자로 막아 만든 자리가 꼭 열차 칸 같다며 이 곳을 '기차집'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는 얼마 되지 않아 가게의 비공식 이름이 됐다. 이후 1960년을 전후해 안씨 내외는 옛 피맛골로 자리를 옮겼고, 정식으로 '열차집'이라는 이름을 등록했다.

인근에 자리잡은 수많은 기업의 직원들과 문인, 언론인들의 명소로 자리잡던 열차집은 1977년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다. 당시 은퇴를 생각하던 안씨 내외는 근처에서 남편과 함께 작은가게를 하고 있던 우제은씨를 점찍고 가게를 종업원째 넘겨줌과 함께 빈대떡과 어리굴젓을 만드는 법을 전해주었다.

우씨는 안씨 내외에 이어 훌륭하게 가게를 경영해 나갔다. 시간은 흘렀고, 매일 밤 찾아와 고주망태가 돼 돌아가곤 했던 젊은이들은 어느새 한 기업의 중역 혹은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성장했고, 후배들을 이끌고 열차집에 찾아오는 '단골'이 됐다. 우씨는 늘 이 시절 찾아오곤 했던 이들에게처럼 지금의 손님들에게도 열차집이 좋은 가게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회상했다.

우씨는 "자식·손자의 손을 잡고 가게에 들어오시는 손님들에게는 늘 감사한 마음 뿐"이라며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찾아온 손님들에게도 열차집이 좋은 가게로 기억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며 웃었다.

우씨는 2003년 외아들 윤상건씨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당시 윤씨는 1990년대 중반 피맛골 열차집 매장 2층에 우리나라 최초의 PC방을 창업하고, 연매출 1억 원을 돌파시켜 각종 언론 매체와 책에도 이름이 오르내리곤 했던 유망한 청년 창업가였던 만큼 능력을 발휘해 열차집을 키워나갔다.

지난 2009년 서울시의 피맛골 재정비 사업과 함께 열차집은 자리를 잃었다. [사진=아이뉴스24DB]

시련이 닥친 것은 2009년 경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피맛골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열차집은 자리를 잃었고, 한동안 방황하다 2011년 경 피맛골과 비슷한 분위기의 현 위치에 자리잡았다. 가게 집기도 그대로 옮겨와 옛 열차집의 아이덴티티도 고스란히 살렸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인근 빌딩이 입주 요청을 보냈지만, 우씨는 빌딩에 갇힌 열차집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며 거절했다.

이전 후 2년 정도는 매출이 줄어들었다. '젊음의 거리'였던 종각에 빈대떡은 낯선 음식이었고, 오랜 시간 발길을 끊었던 옛 단골들은 열차집이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씨 모자는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고기빈대떡, 김치빈대떡 등의 신메뉴를 추가해 기어이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열차집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열차집은. 회사 근무 시간인 오후에는 과거의 추억을 간직한 중·장년층 단골 손님이 찾아 회포를 풀고, 저녁 시간에는 퇴근한 직장인들이 찾아오는 데 이어 늦은 밤에는 대학생과 2030세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모든 세대로부터 사랑받는 명소로 거듭났다. 최근에는 일본·중국 등 해외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2014년에는 서울시로부터 보존 가치가 있는 빈대떡 전문 식당으로 인정받아 '서울시 미래유산'에 지정됐다.

우씨 모자는 열차집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이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사진=아이뉴스24DB]

우씨 모자는 지금까지 열차집과 함께해 온 시간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앞으로도 더욱 행복한 기억이 이어지고, 이 기억들을 열차집을 찾아오는 손님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우씨는 "피맛골에서 나와야 할 때는 아쉬움이 컸고, 복원됐으면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니 이 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시간도 행복한 시간이었다"라며 "앞으로도 열차집이 아주 오랫동안 남아 손님들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가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현석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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