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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전화 20년 재조명-3] 기술종속국에서 '주도국'으로


 

'한국에 가면 통째로 이동전화 산업을 배울 수 있다'

KTF의 해외사업을 전담중인 글로벌전략팀의 박영규 팀장. 그의 노트에는 지구촌 곳곳에서 우리의 이동전화 산업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찾아온 해외 방문단들과의 미팅 약속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많게는 한달에 10건이 넘는다. 사흘에 한번꼴로 방문단을 만난다는 얘기다.

◆"한국 이동전화를 배우자"...세계 각국 방문

한국을 찾는 방문단의 국적도 가지각색이다. 태국,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대만,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 미국, 영국,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칠레, 베트남, 말세이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 이스라엘, 멕시코, 페루, 브루나이, 일본 등 5대양6대주를 망라해 일일히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

특히 무섭게 이동전화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는 이웃 중국의 경우에는 차이나유니콤, 모바일텔레콤 등 현지 주요 이동전화 업체들에서 두달에 한번꼴로 방문단을 보내고 있다. 한국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배우겠다는 뜻이다.

이 중 박팀장의 눈길을 끈 방문단은 지난 6월 한국을 찾은 영국 사절단이었다.

영국 통상산업부 관계자를 포함해 현지 유력 통신 사업자인 오렌지, 브리티시텔레콤 등 임직원을 비롯해 콘텐츠연합회 회원 등 총 16명이 한국을 무리지어 찾았다.

이 사절단을 만난 후 박 팀장은 "우리보다 무선통신 역사가 오히려 긴 영국에서 찾아온 것이어서 감회가 새로울 수 밖에 없었다"며 뿌듯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또한 "이 사절단을 비롯해 프랑스, 노르웨이 등 유럽에서 온 방문단들은 국내 무선인터넷 부문의 발전 속도를 보면서 다들 놀라워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해외 방문단과의 만남은 그저 '만남'으로 끝나지 않는다. 보통 10건 중에 2~3건의 수출 상담이 이어지는 데, 한번 계약이 성사되면 서비스 컨설팅 뿐 아니라, 망구축, 시스템, 솔루션, 콘텐츠 등이 통째로 수출된다고 보면 된다.

KTF는 작년 7월 인도네시아 PT모바일-8사와 1천300만달러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었으며, 별도로 450만달러 규모의 망관리 센터 구축키로 했다. PT모바일-8사가 2006년 6월까지 한국의 CDMA2000 1x, 무선인터넷 등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기를 강하게 희망한 것이다.

SK텔레콤은 작년 12월 17일부터 올 3월 23일까지 총 53일동안 7차례에 걸쳐 중국차이나유니콤 소속 165명을 대상으로 한국와 중국에서 위탁교육을 진행했다. 차이나유니콤이 SK텔레콤의 CDMA 네트워크 운용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케이스 스타디를 요청한 것이다.

SK텔레콤은 2001년에는 차이나유니콤의 IS-95A망 구축을 컨설팅해줬으며, 2002년 7월에는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위한 합작사를 설립했다.

그 뿐 아니다. SK텔레콤은 지난 7월 8일 태국 GSM 서비스 사업자인 TA오렌지에 자사의 무선인터넷 서비스, 솔루션, 콘텐츠 등의 플랫폼 일체를 2천만달러어치를 수출키로 했다.

TA오렌지가 SK텔레콤이 현재 구현하고 있는 네트워크 게임, 위치확인, 주문형비디오, 모바일커머스 등의 앞선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이식받길 원해 성사된 것이었다.

또한 SK텔레콤은 이스라엘 펠레폰, 대만 APBW 등에도 비슷한 규모의 무선인터넷 플랫폼을 공급한 바 있다.

또 SK텔레콤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싱가폴, 필리핀 등에 지금까지 총1천만달어 어치의 컬러링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발판삼아 미주, 남미, 중동 등으로 수출선을 확대해가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이미 우리나라 무선인터넷 수준은 세계 정상"이라며 "당연히 이 서비스를 가능케 한 솔루션, 콘텐츠 등의 경쟁력도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CDMA 백화점

이 처럼 한국은 지난 96년 세계 처음으로 CDMA 서비스를 상용화한 뒤 한국은 'CDMA 백화점'으로 통하고 있다. 많은 해외 방문단이 한국을 찾는 것도 이동전화 산업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CDMA 산업을 보면 단말기, 시스템뿐만 아니라 서비스, 솔루션, 콘텐츠 등도 잘 나가고 있다.

가장 극명하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모토로라의 몰락이다.

95년 이전만해도 국내 휴대폰 시장은 모토로라가 70여%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모토로라의 휴대폰 브랜드인 스타택은 그야말로 '부의 상징'처럼 인식됐었다.

하지만, 이 같은 모토로라의 아성은 96년 4월 CDMA 서비스가 상용화되면서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 LG, 현대 등이 CDMA 단말기를 대거 쏟아내면서, 시장점유율을 급격하게 늘린 반면, 모토로라의 시장 점유율은 10% 이하로 가파르게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1호 국산휴대폰인 삼성전자의 SH-100 모델이 89년 등장한 후 국내 휴대폰 생산량은 2001년 5천만대, 2002년 8천만대를 거쳐 2003년에는 1억1천만대로 세계 총 생산량 5억1천만대 중 22%를 차지할만큼 큰 폭의 성장을 거듭했다.

◆휴대폰 수출 7년만에 2만7천배 증가

또 96년 처음으로 해외 시장을 처음 두드릴때만해도 47만달러에 불과했던 휴대폰 수출액은 지난 해 134억달러에 달해 7년만에 무려 2만7천여배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처음으로 CDMA를 상용화할 때만해도 전세계 이동전화 가입자 중 CDMA 가입자는 0.3%에 그쳤으나, CDMA 채택 사업자가 63개국 178개 업체로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CDMA 장비 산업은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 때문이다.

특히 CDMA 가입자 비중이 2002년말 12%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게 됐으며, 이를 발판삼아 GSM 시장으로 지배력을 빠르게 대해가고 있는 구도다.

외형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국내 업체들이 라이프사이클이 유난히 짧은 내수를 놓고 서로 신기술 적용 경쟁을 벌이다 보니까, 무게, 크기, 배터리 사용시간, 디자인 등의 측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월등하게 앞서나가고 있다.

CDMA 단말기가 GSM 단말기보다 보통 6개월 정도 먼저 신기술이 적용된다는 '공식'이 국제적으로 통용될 정도.

또한 초기만해도 70% 달하는 부품 수입의존도 때문에 취약점으로 늘상 지적됐던 '부품 자립도 문제'도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

휴대폰의 부품수는 약 200여종으로 LCD, 메모리, 배터리, 모뎀칩, 카메라 모듈등 5대 핵심부품이 재료비의 약 60~70%를 차지하는 데, 이중 핵심부품을 중심으로 국산화가 진척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부품수로 볼 때 규모의 경제성이 없는 약 10% 정도의 부품을 제외하고 국산화가 거의 완료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LCD는 삼성SDI가 세계시장 1위(23.6%)를 점하고 있으며, 메모리 역시 삼성전자가 세계시장 1위(20.3%)를 차지하고 있다. 배터리는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2위이며, 카메라 모듈도 속속 국산화되고 있다.

일본이 부품 경쟁력을 기반으로 휴대폰 산업을 강화해 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거꾸로 휴대폰 경쟁력을 부품산업으로 확대해 가는 있는 구도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휴대폰부품 산업은 2003년 9조원으로 3년전에 비해 26% 성장했다. 또 국산 휴대폰 부품 채용률은 원가기준으로 지난 98년에 40% 수준에서 현재 70여% 수준으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무선통신 시스템 부문의 국가 경쟁력도 몰라보게 향상된 분야 중 하나다.

아날로그 방식의 이동전화 시스템인 'AMPS'의 경우에는 우리나라는 모토로라, AT&T 등으로부터 100% 수입했었다. 무선호출기 시스템 역시 모토로라 등에 종속되긴 마찬가지.

즉, 종전만해도 한국의 무선통신 위상은 시스템 등의 장비를 전적으로 외국에서 사다 쓸 수 밖에 없는 '기술 종속국'에 불과했다.

극적인 계기는 99년에 있었다.

삼성전자가 호주 허치슨의 CDMA 장비 납품권을 루슨트, 모토로라 등 기라성같은 외산 장비업체들과 경쟁해 거머 쥔 것이다.

이는 CDMA 상용화와 함께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시스템 등이 국산 시스템을 보급하기 시작한 뒤 국제시장에서도 '메이드 인 코리아'가 제대로 인정받는 계기였다.

특히 96년 185만달러에 불과했던 CDMA 시스템 수출액은 2003년 4억1천만달러에 20배 이상 성장했다. 수출 지역은 중국, 홍콩 등 아시아 지역 중심에서 루마니아, 러시아 등 동유럽으로 확대되고 있다.

세계 무선통신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기술 종속국'을 탈피하고 '기술 주도국'으로 비상한 것이다.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 셈이다.

이관범기자 bum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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