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명절에 가족을 만나고,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명절에 일터로 나서는 삶이 면세점 노동자의 현실입니다. 이 같은 현실이 하루 빨리 바뀌어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4일 오전 10시 30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유통업 종사자의 건강권과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과 제도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인숙 부루벨코리아노동조합 조직국장은 이 같이 말했다.
온라인 시장의 확대 속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진 대형마트 업계가 추석을 맞아 의무휴업일 변경을 요구하고 나선 반면, 노동계에서는 유통업계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경제민주화실현을 위한 전국네트워크,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 등 단체와 우원식·이용득(더불어민주당), 김종훈(정의당) 의원 등은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유통업 종사자의 건강권과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과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들은 먼저 현재 한달 2회로 정해져 있는 대형 유통업체의 의무휴업일을 주 1회로 변경할 것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20대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다.
우 의원은 "지난 2012년 대형마트 의무휴업제가 도입됐지만 의무휴업제가 적용되지 않는 복합쇼핑몰 등 새로운 업태가 나타나 노동자의 쉴 권리가 사라지고 있다"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20대 국회 기간 내 반드시 통과돼야 노동자들의 권리를 돌려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규모 점포 의무휴업일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더불어 사는 상생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라며 "대기업에서도 자율적으로 상생안을 만들기 위해 나서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지난 2009년 대형 유통매장에 노동자를 위한 의자와 휴게시설이 마련됐고, 2011년에는 이 같은 사안이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삽입됐음에도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환경 개선이 더 이상 표어가 아닌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나윤서 록시땅코리아노동조합 위원장은 "휴게 관련 제도가 마련됐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서는 평균 9시간 동안 서서 근무해야 하는 등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며 "여전히 판매 노동자들에게 의자는 장식품이며, 화장실과 휴게실도 자유롭게 갈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기업은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인권위)가 제시한 '대규모 점포 등에 근무하는 유통업 종사자의 건강권 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 권고' 결정에 따라 판매 노동자들에게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돌려줄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 6월 인권위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내 근로자 휴게시설 설치 및 세부기준 이행 현황 점검 조항 신설 ▲대규모 점포 등 유통업 종사자의 근무실태를 확인해 서서 대기자세 유지, 고객용 화장실 이용 금지 등의 관행 개선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해 휴게시설 설치 및 세부기준을 마련하고 미 이행 시 과태료 등에 관한 사항 법제화 등을 골자로 하는 권고안을 산업부와 고용노동부에 제시한 바 있다.
이선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부위원장은 "인권위의 권고가 실질적 법 개정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할 것"이라며 "현장의 목소리를 잘 반영해 노동자가 행복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20대 국회가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대형 유통업체 의무휴업일 확장이 노동자에게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자, 인근의 전통시장에게는 대목 매출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와 결국 대형 유통업체와 소상공인 사이의 상생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김진철 한상총련 공동회장은 "김 공동회장은 "인근 대형 유통업체가 명절 전후 영업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매출이 절반 가까이 등락하곤 한다"며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전통시장의 대목마저 대형 유통업체가 침범하는 것은 소상공인들을 죽이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대형마트 3사 등이 명절 전 의무휴업일을 명절 당일 휴업으로 바꿔 달라는 요구한 것은 '뻔뻔한 요구' 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업계는 이 같은 노동계의 주장에 대해 노동환경 개선은 분명 필요하지만, 의무휴업일을 더 이상 확대하는 것은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히 통상 매출이 평일 대비 2배 이상 발생하는 일요일에 의무휴업을 단행하는 상황에 이를 두 배로 확대하게 되면 매출 타격이 너무 심해진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노동계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노동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는 공감하지만 대형 유통업체 의무휴업일 확대는 업계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매주 일요일이 휴업일로 정해지게 될 경우 매출 타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와 달리 온라인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해 대형 유통업체들의 상황도 매우 좋지 않다"며 "대형 유통업체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 시장 상황에도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상생과 거리가 먼 일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