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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원봉에 '대한민국 만세' 외친 사람들이 누구?


[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2015년 8월 6일로 돌아가보자. 광복절 70주년을 앞두고 국회에서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1천만 관객을 기록한 흥행대작 <암살>이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보도자료는 김무성 당시 대표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전한다.

"이 영화는 1933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만약 현재 내가 그 시대를 살았더라면 '목숨을 걸고, 희생을 각오하고 독립운동을 했을 것인가' 자문해보기도 한다.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큰데, 우리 국민 모두의 애국심을 다시 한번 고취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그 시대로 돌아가 대한독립 만세를 불러보자."

"대한독립 만세!" 실제로 김무성 대표와 당 주요 인사들은 만세 삼창을 외쳤다. 영화 <암살>이 대중들에게 각별히 각인시킨 역사적 실존 인물이 있으니 자칭 '밀양사람' 김원봉이다. 특별출연한 배우 조승우가 연기한 인물로 극의 흐름을 전환시키는 중요한 역할이다.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 제국주의 일본 주요 기관의 파괴와 요인들에 대한 '암살'이 바로 의열단이 수행한 독립운동의 형태다.

2015년 8월 6일 영화 <암살> 국회 시사회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김무성 대표 등 주요 인사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보훈처를 둘러싼 정쟁이 김원봉의 이름을 다시 소환했다. 보훈처는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검토 중이다. 지난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은 김원봉을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며 피우진 처장을 비롯한 보훈처를 맹비난했다. 김원봉이 1948년 정부수립 전 북한으로 건너가 국가검열상, 노동상, 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지냈음을 부각한 것이다.

내심 '좌파 정권이 좌파 인사들에게 서훈을 내려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4년 전, 하필이면 광복 70주년에, 그것도 김원봉을 대중에 각인시킨 영화를 두고 당 지도부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것은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국가보안법 위반인가. 북한 고위인사에 대한 찬양·고무인가.

김원봉이 정말 공산주의자인지는 역사학자들이 따질 일이다. 그에 대한 서훈 여부도 전문가들의 면밀한 검토를 따를 일이다. 다만 김원봉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는 독립군의 요람인 만주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다. 그곳에서 군사학과 병기지식의 기초를 배웠다. 의열단은 동기생들과 주축이 되어 결성했다. 김원봉 21세 때였다. 본격적인 독립운동 인생의 시작이다.

일본 제국주의를 향한 처절한 투쟁 과정에서 많은 의열단원들이 죽었다. 김원봉은 살아남아서 중국 군벌과 일본군을 겨냥한 국민당의 북벌 전쟁에 참여했다. 중국 각지로 흩어진 독립운동가들의 통일전선도 추진했다. 독립군 조직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임시정부와의 협력을 모색하다 지금의 국방장관격인 군무부장에 취임한다. 광복군 부사령관도 맡았다. 김원봉은 때로는 좌익 공산주의자들과, 때로는 우익 민족주의자들과 협력했다. 그 일관된 목표는 일본 제국주의와의 전쟁이다. 그는 늘 최전선에 섰다.

그런 김원봉이 월북한 사연이 있다. 1947년 3월 미군정 아래서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노덕술에게 체포된다. 18일간의 구금 과정에서 가혹한 폭행과 고문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노덕술은 일제시대 고문경찰의 대명사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검거, 잔혹하게 처벌했다. 풀려난 김원봉이 사흘 밤낮을 통곡했다는 일화가 있다. 사실 그만의 비극은 아니다.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을 전후로 몽양 여운형, 백범 김구가 살해당했다. 해방된 조국에서, 좌우를 대표한 독립운동가들이 맞이한 슬픈 운명이다.

영화 <암살>의 말미에 반민족행위자특별위원회, 일명 '반민특위'의 재판 모습이 등장한다. 임시정부를 배반한 악역 '염석진'이 풀려나는 장면이다. 반민특위는 정부 수립 이후 곧바로 출범한 친일 반민족행위자 처벌기구다.

노덕술은 반민특위의 일급 처벌 대상이었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충성한 부류이기도 했다. 반민특위 요인들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정도로 거침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반민특위는 결국 출범 6개월만에 와해된다. 반민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간첩으로 몰려 체포되고 경찰이 특위를 습격해 실무자들을 연행, 고문했다. 결국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못했다.

반민특위는 우리나라 초대 국회, 즉 제헌국회 의원 10명이 위원으로, 대법원장이 특별재판부장으로, 검찰총장이 특별검찰부장으로 참여했다. 반민족행위자 처벌이라는 대의를 위해 입법·사법·행정이 하나로 모였다. 반민특위 구성의 근거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이다. 정부조직법, 대통령사면법에 이은 제헌국회 법률 제3호다. 우리 국회가 가장 먼저 만든 법이란 얘기다.

그것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게 당시 대통령 이승만을 필두로 한 최고위 권력이다. 지금의 제1야당 원내대표는 "반민특위가 국론의 분열"이었다고도 말했다. 그 누가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것인가.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유독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 9급 공무원들도 한국사는 시험과목으로 철저히 공부한다.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가 외울 게 가장 많다.

조석근 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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