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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5·18 북한군 개입설과 조사위원의 자격


[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지난달 14일이었다. 자유한국당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상임위원, 비상임위원으로 권태오 후보와 이동욱·차기환 후보를 각각 추천했다. 한국당 '진상규명조사위원 추천위원회' 명의로 발송한 보도자료에는 이들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 관련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균형되고 객관적으로 규명해 국민통합에 기여할 적임자로 판단된다"는 문구가 선명하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들은 5·18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국회의장과 여야 각 정당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 중 차기환 후보만을 진상규명조사위원으로 임명했다. 나머지 두 명에 대해선 반려했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입장에서 차기환 후보는 매우 탐탁치 않은 인물이다.

그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새누리당(현 한국당) 추천 인사였다.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유명한 고영주, 조대환, 황전원 위원 등과 함께 특조위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한 전력이 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규명 여론을 '정치 놀음'으로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위해 수없이 국회 기자회견장을 드나들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만원씨를 옹호, 문제가 된 김진태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가 전당대회 합동설회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만원씨를 옹호, 문제가 된 김진태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가 전당대회 합동설회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차기환 후보를 임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5·18 특별법상 자격 규정에 부합하는 인사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 없이 야당이 추천한 인사이기 때문에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럼 나머지 두 명은? 특별법 규정상 '자격 미달'이란 이유다. 5·18 특별법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한국당도 제1야당으로서 법안 심사에 참여한 결과 지난해 2월 제정됐다.

특별법상 자격 규정이란 이렇다. ▲판사·검사·군법무관 또는 변호사로 5년 이상 재직하거나 ▲대학에서 역사고증·군사안보 관련 분야, 정치·행정·법 관련 분야, 물리학·탄도학 등 자연과학 관련 분야의 교수, 부교수, 조교수직 5년 이상 근무자 ▲법의학 전공자로서 관련 업무 5년 이상 종사자 ▲역사고증·사료편찬 등 연구활동 5년 이상 ▲국내외 인권 분야 민간단체 5년 이상 근무자가 조사위원 후보로 해당된다.

한국당이 14일 이들을 추천하며 공개한 경력은 권태오 후보의 경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육군본부 8군단장(중장), 한미연합사 특수작전처장"이 전부다. 이동욱 후보의 경우 "도서출판 자유전선 대표, 한국갤럽 전문위원, 월간조선 기자"가 전부다. 차기환 후보는 제27회(1985) 사법시험 합격. 수원지법 판사, 우정합동법률사무소 공동대표"가 이력으로 소개됐다. 적어도 한국당이 지금까지 공개한 이력만으로 조사위원 자격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는 차기환 후보 정도다.

한국당은 청와대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여야 지도부가 방미 중인 상황에서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을 들어 "청와대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무례한 사례"라고 비난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조사위원 후보를 변경할 뜻이 없다", "자격 요건이 충분히 부합하는 인사로서 재추천"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똑같은 인물을 임명해달라고 다시 청와대에 추천안을 내밀겠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이번 전당대회가 치러지는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 아주 큰 곤욕을 치렀다.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만원씨를 옹호한 '3인방' 징계를 두고 당 지도부의 미적지근한 태도로 온갖 비난을 자초했다. 그런데 정작 5·18 특별법이 규정한, 진상규명조사위의 주요 조사 대상 중 하나가 북한군 개입설이다. 더구나 법 심사 과정에서 한국당 위원들의 요구로 관철됐다.

그렇다면 진실규명 차원에서도 조사위원들의 자격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 조사위원들의 법적 자격요건으로 논란을 빚는 것 자체가 궁색하다. 당 지도부를 비롯한 한국당 인사들은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이들을 비판하다가도 슬며시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의 자격을 문제삼고 있다.

수천명에 이르는 5·18 유공자들의 명단, 즉 이들의 인적사항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5·18의 무참한 과정 속에서 활동한 가해자들은 따로 있는데, 오히려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듯한 이상한 논리다.

그보다는 차라리 문제가 된 권재오, 이동욱 후보의 이력을 상세히 공개하는 게 순서다. 이들에 대한 추천이 특별법상 자격 규정에 부합한다면 그 관련 이력들을 공개하고 그것으로 청와대의 인사권을 문제 삼는 게 합리적이다. 북한군 개입설은 조사위가 가동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다.

지만원씨 등의 주장처럼 600명이나 되는 북한군이 1980년 5월 더러는 배편으로, 더러는 버스로 바리바리 장비를 챙겨 머나먼 광주까지 건너왔다는 것인지.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가, 북한군이 넘어와 작전을 마치고 그대로 북으로 건너가도록 마냥 지켜볼 정도로 군기가 빠져 있었는지. 5·18 진상규명조사위가 검증할 수 있도록 말이다.

조석근 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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